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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봄날에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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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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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셰프는 어떤 말도 안 되는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듭니다. 오래된 기왓장의 이끼를 긁어서 스프를 끓이는가 하면 소나무의 속껍질로도 떡을 만듭니다. 독성이 있으면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럴 땐 또 다른 상극의 식물들로 독을 다스립니다. 가히 전방위적인 식물의 속성을 알지 못하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요리에 대한 최고의 맛을 창조해내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남의 상에 숟가락 얻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요. 만들어 놓은 이미지나 이미 발견되어진 맛의 세계를 향해 열광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인간의 삶 자체와 그를 형성하고 있는 이 세상에 글의 소재는 무궁무진한데요. 원하는 방법도 다양해서 정면으로 돌파하기도 하지만 은유, 환유 등의 비유법으로 은근히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창의적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패러디나 일부러 왜곡시키거나 비틀어봄으로써 그 사물의 진실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레시피도 사용합니다.

특히 시는 언어 미학을 우선시하는 장르입니다. 그러므로 왜곡이나 절망적인 현실을 이야기할 때도 진정성 있는 깊이의 아름다움이 녹아들어야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시인들은 밤을 밝힐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어떤 인식의 세계에 대한 욕망에 목말라 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지요. 그야말로 사이다 같은, 죽비 같은 화들짝 정신이 들게 하는 단어가 없을까요?

해마다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에요 처음 아닌 게 없어요/ 싹도 가지도 사랑도 미움도/ 지금 막 시작되고 있어요/ 기왕 시작된 건 없습니다/ 죽음 이외엔/ 죽음 이외엔 아무 것도/ 자, 우리가 출발시켜야 해요/ 구름도 우리가 출발시키고 (구름이여 우리를 출발시켜다오)/ 바람도 시민도/ 나라도 늙은 희망도/ 우리가 출발시켜야 해요 (나라여 우리를 출발시켜라)/ 지금 막 출발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우리들의 이 끄떡도 하지 않는 바위/ 이름 부를 수 없는 쇳덩어리도/ 우리가 출발시키고/ 여러 하느님도 (하느님 우리를 출발시켜 주시옵)/ 우리가 출발시켜요/ 낙엽 한 장이나 말발굽 소리/ 한 다발 불꽃도 우리가 출발시켜요/ 여러 불꽃-석유의 불꽃 연탄의 불꽃노래의 불꽃 / 우리 얼굴의 불꽃 오 우리들 숨의 불꽃/ 한 다발 불꽃을 우리가 출발시켜도/ 우리가 우리의 것을 출발시켜야 해요’ (정현종의 시 ‘출발’ 전문)

‘시작’이라는 말보다 이 ‘출발’이라는 말 속엔 역동적인 에너지와 행동하는 자세가 내재되어 있어서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시인은 한 존재로서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위해 새싹도, 인생의 생사도, 구름과 바위와 무생물의 쇳덩어리까지도 창작의 도마 위에 올려둡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나라와 심지어 하느님까지도 소환합니다. (얼마나 출발의 마음이 다급하고 역동적이었으면 ‘하느님 우리를 출발시켜 주시옵’ 하면서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우리가 출발시켜요’ 하면서 강하게 메시지를 던졌을까요. 모든 계절의 이름 앞자리에 유일하게 새것이라는 의미를 붙여 마땅한 새봄, 겨우내 움츠렸던 검은 나뭇가지에서 새잎들이 튀어나오면서 소리칩니다. ‘출발’!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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