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풍수지리 연구가 노인영 박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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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5   |  발행일 2019-03-15 제35면   |  수정 2019-03-15
“미세먼지 문제, 자연·인간의 운기 갈등 암시…공생하는 풍수지리 알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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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맨에서 풍수지리 연구가로 변신한 노인영 박사. 그는 이론 중심의 풍수지리 관련 박사학위 범주에서 벗어나 경산, 청도 등 경북 도내 30개 지명을 토대로 한 풍수 형국과의 유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때 지역의 금융맨으로 1부 인생을 열심히 살았던 노인영씨. 그가 최근 대구한의대 동양사상학과에서 전통의례지리산업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제목은 ‘경북지방 지명과 풍수형국의 상관성 연구’였다. 그는 풍수지리학을 ‘종합생태환경학’이라고 명명했다. 그동안 국내에 이런저런 풍수지리학 관련 박사학위가 있었지만 다들 풍수지리학의 이론적 측면만을 다루고 있어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지명(地名)’이란 현실적 변수를 축으로 구성돼 이론풍수와 현실풍수의 양 측면을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풍수로 유명해져 보겠다거나 남의 명당을 찾아주기 위해 논문을 적은 건 아니다. 단지 한국 전통문화의 한 축이었던 풍수지리학이 어느 순간 길흉화복을 점치고 발복을 향한 명당찾기 수단으로 전락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 자신도 뭔가 새로운 인식을 정립해야겠다는 각오로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풍수지리학에는 한민족 특유의 민속·문화학적 인프라가 스며들어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풍수지리학은 현재도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건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북구 대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선비스럽게 살고 있는 그의 입춘은 입춘방(立春榜)을 붓으로 적어 현관과 거실 한쪽 벽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아한 방 한편 서가에는 청오경, 금낭경 등 중국발 정통 풍수지리학 원서 및 풍수 관련 전공서가 꽂혀 있다. 그는 요즘 이런저런 특강요청을 받고 있다. 강의를 준비할 때면 늘 ‘명당지상주의적 처세를 절대하지 말아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27년간 금융맨으로 산 이후 풍수지리학에 관심
경북 지역 마을 내력·산과 강의 모양 등 추적
조상묘·후손 출세 함수관계 절감 공부에 매진
풍수지리, 한민족 전통 문화 인프라 스며들어
中 위서도 많이 유통돼 일반인은 판별 어려움
박사 공부만으로도 모자라 풍수인문학도 익혀
산세 이합집산 원리 파악 ‘통맥법’전수 하기도
경산시 용관련 지명 많아 조형물 건립 좋을 듯
명당 잘 잡아주는 풍수지리가는 사양하고 싶어
우리민족과 동고동락한 전통문화 알리려 노력"

▶첫인상이 참 단아하고 뭐랄까, 학인(學人) 같다는 느낌이 든다. 풍수지리학 공부는 일반 학문과 달리 무속인이 되듯 어떤 운명, 계시 같은 게 있어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의 1부인생을 얘기해야 될 것 같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구로 왔다. 난 자수성가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모두 가난한 시절이었는데 우리 집은 그보다 한 차원 더 궁핍했다. 경상중 시절부터 주경야독을 해야만 했다. 태평로 수협 공판장에서 리어카 끄는 학동이었다. 가득 실린 생선을 끌고 방천시장까지 갖다줘야만 했다. 잠잘 틈도 없었다. 수업시간은 잠자는 시간이었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대구은행에 들어갔다. 이후 27년간 참 반듯하게 살았다. 2005년 3월에 정년퇴직을 하고 이후 경북신용보증재단 안동지점에서 일을 하면서 경북의 인문지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한문으로 적힌 지명을 보면서 그 마을의 내력과 산과 강의 모양, 그리고 마을의 분포 형태, 더 나아가 그 마을에 어떤 인물이 명멸했는가를 꼼꼼하게 추적해나가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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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의대 동양사상학과 전통의례지리산업학 전공 철학박사학위 논문인 ‘경북지방 지명과 풍수형국의 상관성 연구’와 그가 현장답사 때 사용하는 패철.

▶근무지역이 경북이니 자연스럽게 경북의 산세와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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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풍의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다가설 무렵, 노인영 박사는 지필묵을 꺼내 가족의 무사안녕을 위해 입춘방을 써 현관과 거실 벽에 붙이며 나름 조촐한 봄맞이 의식을 갖는다.

해졌겠다. 구체적으로 풍수학에 입문한 건 언제인가.

“경북에서 근무할 때 한 거래처 지인이 내게 한 권의 풍수 관련 서적을 선물했다. 그게 정암 김종철 선생이 지은 ‘명당 백문백답’이었다. 명당이 그렇게 다양한 인문학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 자연 명산은 뭔지, 명당은 왜 생겨나고 그게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풍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인터넷 풍수 관련 카페를 들락거리며 많은 알음알이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단체가 박대희 선생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 참풍수지리학회다.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나갔나.

“풍수라는 게 참 묘한 구석이 많다. 무슨 방정식의 해를 찾는 거라면 쉽게 답이 나오는데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주요 혈(穴)자리에 대한 포인트도 각기 달라진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무튼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풍수지리학의 요체를 개괄적으로 알겠다는 의욕이 컸다. 학회는 월1회 명당투어를 나선다. 2007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첫 투어 대상지는 강원도 평창군의 한 산이었다. 당시는 입문기라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전문가의 언설에 마구 흔들렸다. 한 번은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부모 묘소에서 사방 산세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뭔가 범상치 않은 산세가 묘와 기운을 주고받고 있었다. 조상의 묘가 후손의 출세와 성공에 함수관계가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유골을 품고 있는 음택이 주변 조산, 주산, 안산 등의 형세에 영향을 받고 그런 바탕에서 후손 혈족의 생로병사 운세를 간섭한다는 어떤 확신 같은 게 들었다. 이때부터 내 공부는 더 가열하게 진군한다.”

▶여러 풍수서를 많이 봤겠다.

“대표적인 게 주역, 금낭경(金囊經), 청낭경(靑囊經) 청오경(靑烏經), 황재내경, 회남자, 옥수진경(玉髓眞經), 산법전서, 명산론 등이다. 33권의 원전을 사전처럼 수시로 들여봐야만 했다. 그런데 학자가 참고할 수 있는 풍수 전문서가 국내판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중국에서 나돌던 위서(僞書)가 진서로 둔갑돼 유통되는 것들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풍수 진서 역사를 좀 알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풍수지리서는 일반인에겐 금서였다. 거의 황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후대 황소의 난, 안록산의 난 등 각종 민란때 황실 문고가 털리게 됐고 그래서 일반에 알려지게 됐다. 황제는 다급했다. 자신들의 전유물인 풍수비결을 민초까지 알면 곤란할 것 같아 서둘러 위서를 대량 유포시켰다. 아직도 그런 위서의 맥락에서 지식을 형성한 분들이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그걸 판별할 도리가 없다.”

▶박사 공부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을 것 같다.

“석사 과정은 1991년 경북대 경영대학원에서 했다. 박사과정은 2015년에 들어간다. 공부해보니 양에 차지 않았다. 당시 내 공부는 풍수 형기론에 집중돼 있었다. 더 자세한 걸 배우고 싶어 구미 금오공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자격증반에 들어갔다. 당시 함께 공부한 분들은 대다수 명당발복론에 경도돼 있었다. 명당을 스스로 찾아 집안을 다복한 가문으로 일으켜 보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풍수학은 크게 보면 드러난 형세의 본질을 판별하는 ‘형기법(形氣法)’과 형세의 근원을 움직이는 원천적 에너지의 본질을 밝히는 ‘이기법(理氣法)’으로 나눠져 있는데 명실상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이 두 섹터를 통습해야만 한다. 두 기운은 고기압과 저기압과 같다. 하나만 붙들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부분적 지식에 매몰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재차 산세 이합집산의 원리를 배우는 ‘통맥법(通脈法)’을 전수했다. 통맥법 현장교육 때는 특정 산의 주맥과 종맥, 그리고 지맥이 어떤 방식으로 명당 혈자리와 연결되는지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 점검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영감으로 명당을 찾는 생래적 풍수인과 과학적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공부가 깊어지면서 어떤 비판의식이 들었는가.

“풍수지리학은 상식의 연장이다.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양택, 그런 염원이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을 태동시킨다. 북풍한설 막아주는 큰산 자락, 그 앞에는 적잖은 강이 흐르면 크게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만연된 ‘동기감응(同氣感應)’ 풍수론에 할 말이 많다. ‘부모나 조상의 유해한 지기가 자식과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식의 ‘음택 풍수 신드롬’ 때문에 너도나도 명당찾기에 혈안돼 실학자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조선조 많은 송사도 풍수와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동기감응론은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금 알면 아는 것만 보이지만 많이 알면 모르는 게 더 많이 보여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오직 자신만이 진리라고 믿는 이도 적잖다. 그럼 풍수지리학이 아니라 ‘풍수지리교’로 추락해 버린다.”

▶풍수 형국과 지명은 어떤 상관성을 갖고 있는가.

“경북은 풍수 연구를 하기에 좋다. 백두대간 동남방에 있어 낙동정맥을 비롯한 많은 지맥이 있기 때문에 숱한 풍수 형국이 있어 연구 대상으로선 딱이다. 그동안 청도, 경산 등 도내 30곳의 지명을 이 논문을 위해 분석했다. 동물 관련 지명이 가장 많았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명 150여만개 중 용과 관련된 지명이 1천261개로 가장 많았다. 경산의 경우, 용성을 비롯해 용산, 용전리, 용천, 반룡사 등이 줄을 잇는다. 시 차원에서 세계적 용 관련 조형물을 이 언저리에 세우면 멋진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풍수지리학은 본인에겐 무엇인가.

“많은 이는 아직 풍수지리학을 우상으로 받들기도 한다. 하지만 풍수지리학은 과학정신이 들어간 전통문화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스마트폰·한글시대를 맞으면서 고래의 지명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거의 멸종되는 것 같다. 지명에는 선조의 문화의식이 지문처럼 찍혀있다. 그 지명을 아무렇게나 작명한 게 아니라 풍수 형국을 면밀히 살핀 뒤 지었다.”

▶요즘 사이코패스 사건 등 패륜적이고 흉측한 사건사고가 많이 발발하는데 이것도 풍수지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미세먼지. 이건 자연적 운기와 인간의 운기가 갈등하고 투쟁관계로 돌아섰다는 걸 암시한다. 예전에는 자연의 운행원리를 중시했다. 하지만 극단적 자본주의는 오직 인간의 이해득실을 위해 자연을 해체해 나갔다. 지구·달·태양이 서로를 품고 자전·공전하며 음력 24절기 시스템을 만들었다. 천지보다 인간의 형편만 중시하며 마구잡이로 산을 토막내 아파트를 세웠다. 자연은 인간의 만행에 대해 오래 침묵했지만 이젠 보복에 나선 것 같다. 그걸 경고하기 위해 논문을 적었다.”

▶향후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

“명당자리 봐주는 풍수지리가는 사양하고 싶다. 그냥 풍수지리와 동고동락한 한민족만의 전통문화를 후학에게 알려주고 싶다. 향후 경북도와 손을 잡고 경북의 지명인문학 강좌를 꾸려가고 싶다. 아울러 풍수지리학을 이용한 각종 관광상품 개발도 도와주고 싶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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