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의 감각수업] 욕망을 자극하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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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39면   |  수정 2019-06-21
기분 좋은 향취, 행복·치유의 공간 기억
[노희정의 감각수업] 욕망을 자극하는 향기
[노희정의 감각수업] 욕망을 자극하는 향기

1997년 11월의 어느 날, 세계적인 록밴드 인엑세스(INXS)의 리드싱어 마이클 허친스가 가죽 벨트로 목을 맨 채 호텔 방에서 발견되었다. 원인은 우울증. 큰 성공을 거두고 걱정이 없을 것 같던 그를 우울증으로 끌고 간 것은 무엇인지 논란이 되었다. 그 후 그의 죽음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 하나가 부각되었다. 1992년 교통사고로 인해 냄새와 맛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마이클은 사실 감각적인 쾌락주의자요, 자칭 퇴폐주의자였다. 말 그대로 호색한이자 식도락가였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더 이상 여자친구의 냄새를 느끼지 못하겠어!”

그는 연인의 체취,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되면서 자연의 향취와 추억, 그리움도 잃어버렸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겨버린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에 조금씩 젖어들었고, 스스로 자멸했다.

후각은 여타 감각에 비해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사실 우리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인류는 타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냄새를 사용했다. 이누이트족은 코를 부비는 것으로 인사를 나누고, 뉴기니의 한 부족은 헤어질 때 상대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쓰다듬는다. 인도에서 ‘키스’는 냄새를 뜻하는 말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나는 세상 어디에 있든 유칼리 냄새만 맡으면 잃어버린 아드로게 지역을 떠올릴 수 있다. 오늘날 그곳은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심금을 울리는 데는 모습이나 소리보다 냄새가 제격” 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나보코프, 보르헤스 등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냄새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얘기했다. 또한 후각은 안전과 직결된다. 사람들은 뭔가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 “뭔가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다. 산모와 신생아를 연결해주는 것도 체취다. 이렇듯 냄새는 사람과 사람 사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냄새는 거의 주관적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 냄새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 냄새를 아이들은 싫어한다. 또 미국인이 좋아하는 민트 향이 나는 노루발 풀을 영국인은 극도로 혐오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이 향이 진통제 연고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사탕이나 껌에 넣어서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향기는 인간의 두뇌에 매우 빨리 입력되어서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낮추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또한 심호흡을 하게 만들어 고통을 덜 느끼게 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향기마케팅의 목적은 브랜드 고유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후각적인 감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상상과 연상 등을 통해 인간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본능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단시간에 호감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불쾌감 또한 재빠르게 느껴질 수 있다. 향기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튀김 집의 황색 불빛과 노란 튀김들, 지글지글 소리(청각)를 내며 익어가는 튀김의 향기(후각)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멈춘다.

사람들은 기분 좋은 욕망을 자극하는 향기가 나는 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이것 역시 감각이 자본이 되는 ‘감각전략’이다. 추억과 감성, 배고픔을 연결하여 자본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늘 사람으로 붐비는 그곳은 단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고 감성을 끌어내는 곳이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만두와 떡볶이, 순대, 꼬치, 튀김…. 삶에 찌든 직장인들에게 행복한 맛과 향수, 치유의 공간(시간)을 제공해준다.

나도 시간이 있으면 분식집에 들르곤 한다. 그곳에 가면 왠지 20대 시절, 남편과 연애하면서 먹었던 매콤한 떡볶이와 꼬들꼬들한 라면이 자연스레 생각난다. 기분 좋은 향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향기는 바로 이런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분 좋은 욕망, 행복한 추억을 끌어내어 연상하도록 이끌어준다.

누구나 아름다운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맛있는 음식,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치유를 받는 ‘소확행’의 시대다.

인간 안에는 여러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기분 좋은 욕망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기분 좋은 인심’(人心, 인간의 마음)이다. 그것은 ‘치유’이자 ‘선물’이다. 욕망을 머리와 기술로만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 마라. 분명 머리와 기술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인심이라 강조하고 싶다.

아이엠 대표(계명문화대 패션마케팅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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