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키덜트(Kidult)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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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9   |  발행일 2019-08-09 제39면   |  수정 2020-09-08
아이같은 감성에서 구하는 어른들의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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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玩具)’란 흔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장난감을 통칭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엄마 젖꼭지를 빨고 자라나 세상에 눈을 뜨면서 맨 먼저 장난감을 통해 지혜를 익힌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감은 성장기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런 장난감을 어른들이 가지고 즐긴다는 것은 언감생심 금기시된 우리 고유의 생활 풍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탓일까. 최근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들이 플라스틱 조립식 장난감인 프라모델(Plamodel)을 이용한 조립 게임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즐기는 것처럼 중독성이 강해 프라모델 친구 삼기 동호인 클럽까지 생겨나고 있다. 주로 2030 밀레니얼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연령층에 관계없이 유년시절의 향수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일본의 사이버 게임기 ‘다마고치’를 즐기며 자란 30대는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를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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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이후 상실감 젖은 성인 위해 장난감 유통
어릴적 풍요로운 때 회귀하고픈 정서적 본능 분출
기억력·집중력 살려 치매예방 도움 7080까지 인기
인간 능력 테스트하는 과학놀이 ‘루빅 큐브’주목
단순한 즐거움 넘어 문화예술 아우르는 ‘프라모델’


하지만 삶이 팍팍한 요즘엔 무엇보다 세태를 반영하는 일종의 현실 도피성 오락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난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어른으로 살아가기 버겁거나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지면서 혼자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는 동화 속의 주인공 피터 팬(Peter Pan)을 닮고 싶은 충동적 욕구 탓이라고 했다. 이른바 ‘피터 팬 증후군’이다.

흔히 프라모델 장난감을 좋아하는 성인들을 ‘키덜트’(Toys for Kidults)라고 부른다. 어릴 적 풍요롭게 성장했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정서적 본능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각박한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쌓인 탓”이라며 이를 해소할 욕구가 디지털 문화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선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프라모델 장난감을 비롯해 의류, 액세서리 등 키덜트를 겨냥한 캐릭터가 영플라자(시장)를 형성하고 이러한 캐릭터를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고객 중에는 7080 노인들도 눈에 띈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되살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덜트 문화의 원조는 영국. 1936년 조그만 완구업체에서 개구리를 보고 자동차 식별용으로 착안한 ‘프로그(Frog)’라는 프라모델이 개발되었고, 이후 미국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모형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엔 상실감에 젖은 성인들의 취미생활을 위해 대량생산되고 공급망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런 연유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유명 관광지마다 키덜트 뮤지엄이 들어서고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1949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범재판이 열리고 있던 뉘른베르그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국민정서를 일깨우고 독일 재건을 위해 세계완구박람회(Spielwarenmesse)를 열었다. 연중행사로 키덜트 문화를 확산시킨 이 박람회는 올해로 70회째. 지난 2월에 열린 뉘른베르그 완구박람회엔 세계 132개국에서 총 71만여명의 바이어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종주국 영국에서 성인용 프라모델로 개발된 ‘루빅 큐브(Rubik’s Cube)’는 가로, 세로 각 1개씩 27개의 작은 육면체를 이리저리 돌려 하나의 큰 정육면체로 결합하는 게임이다. “수리(數理)로 자연을 다스린다”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수리 개념을 적용했다. 인간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과학놀이로 주목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수리 개념 이후 수학은 인류 문명이 진화할 때마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주도해왔다. 현대의 피타고라스로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학공법으로 낡은 파리 시가지를 최첨단 도시로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파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수학의 개념은 영혼 불멸과 윤회를 믿는 동양 상수학(象數學)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정육면체인 루빅 큐브와는 달리 둥근 지구와 우주 모형으로 나온 ‘루빅 360’이 21세기 버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루빅 360을 십진법(十進法) 수리로 보면 간합(間合)이 3+6=9가 되는 개념이다. 동양 상수학에서도 천지인(天地人)의 숫자 3·6·9를 민속신앙의 주술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 6과 9를 행운의 숫자로 보는 것도 같은 이치다. 때문에 루빅 큐브나 루빅 360 프라모델은 사뭇 과학적이면서도 샤머니즘적 이미지를 주고 있다. 특히 6의 숫자 개념은 ‘물’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을 비롯한 만휘군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소이다. 이른바 육각수(六角水)다. 하여 물에 붙여진 기호가 6이라고 했다. 행운의 숫자 6도 육각수의 버전에서 나왔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유럽 전역에 40℃ 이상의 폭염이 찾아오고 수년간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물을 찾아 내란까지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체내에 70% 이상 차지하는 물이 없으면 인류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사람의 건강을 유지해 주는 육각수, 즉 생명수는 분자 형태의 육각형 고리구조로 낳고 키우고 번식시키는 생성의 원소라 하여 ‘어머니의 물’이라는 개념도 붙여진 것이다.

프라모델은 이제 아이들의 전유물인 단순한 장난감 놀이가 아니라 문화예술까지 아우르고 어른들의 창의력을 구하는 창조의 원천으로 발전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과학계에서도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창의력을 개발하는 프라모델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어쩌면 키덜트 문화가 우리 생활 속 삶의 지혜로 깊숙이 뿌리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 참고 이미지 출처 △ https://www.spielwarenmesse.de/ △ 피규어전문샵 <피규어W> △ https://www.kidult-hobbylounge.kr/ △ https://www.spielwarenmesse.de/ △ https://www.campaign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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