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다양한 장르영화, 그속엔‘경계인으로의 삶’공통분모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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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31   |  발행일 2019-08-31 제16면   |  수정 2019-08-31
대만서 태어나 미국서 영화 공부했지만
中문화 뛰어나게 그려내 세계인에 어필
아웃사이더였기에 주류 될 수 있었던 삶
25년간 이뤄진 스무번의 인터뷰로 밝혀
이안의 다양한 장르영화, 그속엔‘경계인으로의 삶’공통분모
이안의 다양한 장르영화, 그속엔‘경계인으로의 삶’공통분모
이안//카를라 레이 풀러 지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304쪽/ 1만5천원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처음 봤을 때, 필자는 부러웠다. 1970∼80년대 학창시절 무협소설을 읽었던 청장년에게 이 영화는 ‘강호’와 ‘무림’ ‘장풍’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로 만들어주었다. 하늘거리는 대나무에 몸을 의지하고 겨루는 장면은 필자를 들뜨게 했다. 동양인인 필자가 그랬는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얼마나 더 놀라웠을까. 중국이 얼마나 더 거대하고 신비로운 세상으로 다가왔을까.

그가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임에도 중국의 문화를 영화에 그려내는 것은 어떤 중국이나 대만 감독 못지않다. 그는 어쩌면 서양인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우리 영화계도 이안처럼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영화를 더 많이 그려내고 알렸으면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안의 영화를 색으로 따진다면 인디 핑크나 아이보리처럼 수더분하다. 그가 가진 내면의 따뜻함이 영화적 색채로 만들어져 표현되기에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많은 경험이 주류가 아닌 비주류였고 아웃사이더에 대한 공감도 작용했으리라. 반대로 빨강·노랑·파랑 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들 색은 햇살아래서 다른 색깔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도드라지는데 그의 영화는 튀기보다는 모두를 아우르는 색감이다.

‘와호장룡’을 비롯해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음식남녀’는 깊은 산골 오두막집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등불처럼 따스한 인디핑크다.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다소 파격적이었던 19금 영화 ‘색, 계’에서도, 인도소년이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표류한다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마저도 이안의 색깔은 부드럽다. 그가 하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줘야 할 것만 같다.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주인공 이야기 ‘결혼 피로연’, 보수적인 미국 서부사회에서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온 게이 카우보이들의 사랑을 그린 ‘브로큰백 마운틴’, 억압적인 어머니 밑에서 성적인 자기혐오에 시달리다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연루되면서 주인공이 해방감을 맞는 ‘테이킹 우드스탁’ 등을 하나로 묶는 것은 아웃사이더다. 이안 자신이 미국 사회의 아웃사이더였기에 그들이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는 그를 가리켜 ‘영화적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들을 진행시키는 모습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너무나 도드라져 보이는 색은 보고 있으면 금세 지치게 만들지만, 인디핑크나 아이보리는 무난하게 교감하고 오래도록 두어도 실증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무엇이 이안을 이런 색채의 감독으로 만든 것인가. 그 해답을 신작 ‘이안, 경계를 넘는 스토리텔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는 1994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총 스무번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이안은 자신의 성장배경과 삶의 이야기, 영화적 화두와 창작 방법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대만의 명문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밑에서 자라 억압적인 가정분위기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다양한 장소에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영화를 배우기 위해 유학온 미국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능력을 갖게 됐다. 이런 경험들이 그의 영화적 색채를 빨강보다는 인디핑크로 만든 게 아닐까. 그가 주류사회의 리더이고 자유분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그의 색깔은 자극적인 원색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안은 인터뷰에서도 “내가 만드는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드라마다. 내 영화들은 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영화여야 한다. 스토리텔링과 드라마, 인간의 얼굴 이 모든 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했다. 치고 박고 터지고, 붉은 피가 흐르는 보다 더 자극적인 것들에 노출되고 심취하는 세상이기에, 사람들의 삶의 기본적인 것, 작지만 소중하고 섬세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안의 영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전영기자 younger@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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