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디스 크레이지 하트’ (마크 로테문트 감독·2017년·독일)

  • 임성수
  • |
  • 입력 2019-09-20   |  발행일 2019-09-20 제42면   |  수정 2020-09-08
사고뭉치 백수와 시한부 소년의 버킷리스트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디스 크레이지 하트’ (마크 로테문트 감독·2017년·독일)

재벌가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요즘은 특히 마약 관련 기사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부를 타고나는 것이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 영화 ‘디스 크레이지 하트’는 유명 의사 아버지를 둔 사고뭉치 백수 아들과 시한부 소년의 이야기다.

밤마다 클럽을 전전하며 놀기에 바쁜 백수 레니. 그는 심장병 소년을 돌봐주고 버킷리스트를 도와주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는다. 열다섯 소년 데이브는 아버지의 환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레니는 단칼에 거절하지만, 아버지가 막아놓은 신용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이브를 돌봐주게 된다. 그리고 그가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이루어간다.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데이브가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레니의 삶은 조금씩 변해간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선정한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 깊이 있는 성찰’이란 평을 들으며 독일 현지에서 200만 관객을 모았다. 스페인, 멕시코, 터키에서 리메이크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에 빛나는 ‘소피 솔의 마지막 날들’을 감독한 마크 로테문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역시 흥행 돌풍을 일으킨 ‘괴테스쿨의 사고뭉치들’의 배우 엘리아스 므바렉이 주인공 레니 역을 맡았다.

안하무인에 사고뭉치였던 레니가 조금씩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데이브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클럽에 가도 전처럼 즐겁지 않다. 영화는 이런 과정들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펼쳐나간다. 데이브가 약을 먹기 싫어하거나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모습, 즐겁게 지내다가도 금세 쓰러져 산소통을 찾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실화이기에 그럴 것이다.

영화의 중간쯤 레니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던 이유가 나온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데 대한 원망이 있다는 것. 일에만 매달려있던 아버지가 그를 빨리 데려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아버지는 뒤늦은 사과를 한다. 그러자 아들은 말한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고,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아버지와 화해한 아들은 방황을 끝내고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 나선다. 방황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디스 크레이지 하트’ (마크 로테문트 감독·2017년·독일)

영화를 보고나자 ‘나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다섯 소년 데이브의 버킷리스트는 ‘호텔에서 감자튀김, 콜라 실컷 먹기, 리무진 타기, 키스해 보기’ 등이다. 나의 경우, 가장 먼저 생각나는 버킷리스트는 여행이다. 호주, 캐나다, 그리스 등. 그렇다면 이런 버킷리스트는 어떨까. 다른 이의 버킷리스트를 도와주는 것. 영화의 주인공 레니처럼 말이다.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헬렌 켈러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장 행복해지는 버킷리스트일 것이다.

J. D. 샐린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말한다. 아이들이 드넓은 호밀밭에서 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달려가 붙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레니는 그처럼, 시한부 소년의 삶을 붙잡아주는 파수꾼이 되었다. 아니, 자신의 삶을 붙잡는 파수꾼이 되었다.

레니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마지막 장면, 레니와 데이브의 실제 모습이 나온다. 마치 친형제처럼 둘의 얼굴이 닮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선한 눈빛 때문에. 자막은, 얼마 못가 죽을 거라던 데이브가 스무 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버킷리스트를 남김없이 이루었을 것이다. 시인·심리상담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