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월여산(月如山 863m) 경남 거창군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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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  발행일 2019-10-11 제37면   |  수정 2020-09-08
슬픈 사랑의 눈물이 비로 내리는 山의 전설…촉촉한 솔숲엔 진한 송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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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군락지만 빼면 월여산 산행길은 대부분 솔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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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여산 2봉에서 본 3봉. 가까운 거리지만 안개로 가렸다 걷히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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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르고 피어난 철쭉.


맑은 날 다 두고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날에 산행 날을 잡았다. 바꿔 말하면 연이은 가을태풍에다 잦은 비로 산행계획을 잡은 날에 비가 내린 것이다. 모처럼 우중산행이니 등산화부터 비옷까지 방수에 신경을 써서 꼼꼼히 짐을 꾸린다.

원평마을 주차장 오른쪽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경운기가 지날 만큼 좁은 농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원만지 둑을 지나도록 길이 나있고, 직진방향으로 포장길을 따르면 오른쪽에 큰 느티나무 아래에 데크를 깔아 ‘느티나무 쉼터’를 만들어 둔 곳이 있다. 쉼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밤밭을 지나 사방댐을 건너면 ‘월여산 정상 2.1㎞’로 적은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가 된다. 이정표 바로 오른쪽에 놓인 계단을 오른다. 약한 빗줄기지만 비옷까지 입은 터라 시작부터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숨이 막힐 정도로 후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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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 흐드러지게 핀 쑥부쟁이.

옥황 아들·월여의 이루지 못한 사랑
가을비 내리는 산행 애잔한 마음 더해
바람에 출렁거리며 산 가득 덮은 안개
2·3봉 봉우리가 가렸다 보였다 반복
노란단풍 드는 은사시나무·철쭉 군락
길섶 흐드러지게 핀 쑥부쟁이·구절초


꾸준히 20분쯤 오르니 작은 봉우리에 봉분이 허물어진 무덤 한 기를 만난다. 무덤 뒤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 일곱 개 바위라 칠형제바위로 불리는 곳이다. 마땅히 비를 피할 공간이 없으니 선 채로 잠시 땀만 식히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에 ‘정상 2㎞’로 적은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들머리에서 2.1㎞로 적은 이정표에서 대략 700~800m는 올라온 것 같은데 어리둥절하다. 능선은 완만한 소나무숲길이다. 비에 촉촉이 젖은 솔숲을 걸으니 진한 송이버섯 향기가 나는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옷을 차려입은 노부부를 만났다. 약초를 캐는 곡괭이며 차림이 영락없이 버섯을 따러 올라온 모양이다. “좀 따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지금 막 올라오는 길입니더”라며 걸터앉은 바위에 같이 앉자고 자리를 내어주며 비가 이렇게 오는데 등산을 왔나, 어디까지 가는지, 이곳이 고향이라 한번씩 와 본다며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조곤조곤 말을 붙여온다. 잠시 쉬었다가 서로 빗길에 조심하라며 인사를 나누고 노부부는 숲으로, 일행은 다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모공원 2.4㎞’ ‘월여산 1.1㎞’로 적은 이정표를 만난다. 조금 전 2㎞로 적은 이정표에서 약 30m쯤 지난 지점이다. 솔숲이다가 바윗길이 반복되는 능선에 안개가 가득 밀려와 사방 시야를 막는다.

길게 놓인 계단을 한번 올라서니 왼쪽으로 안개사이로 바위능선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만물상 능선이다. 맑은 날이면 만물상 능선에 올랐다가 되돌아 올 수도 있겠지만 안개가 껴있어 그냥 지나기로 한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정상이 가까워지자 경사가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진다. 노간주나무가 손잡이가 되는 바위구간을 한번 올라서니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올랐던 길과 하산방향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삼각점이 놓여있다. 숲에 가리기도 하고 안개가 껴있어 조망은 어렵지만 북으로는 감악산, 동으로는 악견산·금성산, 남으로는 황매산·모산재가 둘러있고, 서쪽으로 갈전산과 바랑산이 둘러싸여 있다. 월여산은 정상부가 3개의 봉우리라 삼봉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옛날에는 달맞이를 하던 산이라 해서 월영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하여 월여산이라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가뭄이 드는 해에는 동네사람들이 밝은 달빛 아래서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또 옥황의 아들이 월여를 짝사랑하게 되었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눈물을 짓고,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렸단다. 기우제는 이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전설을 접하게 되니 애잔하기까지 하다. 하산은 ‘소야마을·신기마을 3.9㎞’ 이정표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계단을 내려서면서 마주 보이는 바위봉우리에 계단이 놓인 것이 보인다. 정상이 세 봉우리 중 1봉이라면 2봉이 되는 봉우리다. 안부에 한번 내려섰다가 긴 계단을 오르면 지나온 정상과 진행할 3봉이 서로 마주 보인다. 안개가 바람에 출렁거리며 봉우리가 가렸다 보이기를 반복한다. 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봉우리라도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다행이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사진 한 컷 찍기도 쉽지 않다. 차례로 3봉까지 올랐다가 계단을 내려서는데 오른쪽 아래는 안개가 밀려난다. 노랗게 단풍이 들고 있는 은사시나무군락과 철쭉군락이 발아래에 깔렸다. 계단을 다 내려서서 평지에 가까운 안부에 내려서니 어른 키 높이의 철쭉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가운데 ‘월여산 면민안녕기원제단’이라고 적힌 제단이 놓여있다. 산 아래 거창군 신원면에서 매년 철쭉 개화기에 맞춰 철쭉제 및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곳이다. ‘소야마을 3.6㎞, 신기마을 4.0㎞’ 이정표 삼거리에서 신기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는데,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이정표를 따라 정면으로 가면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폭이 넓은 길은 철쭉군락지에서 오른쪽 아래로 휘어지며 크게 돌아 신기마을을 지나 원평마을로 가는 길이고, 정면으로 철쭉과 억새가 자라는 희미하고 좁은 길로 가야 들머리인 느티나무 쉼터로 바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는 따로 없고 소나무 두 그루 아래에 벤치가 놓인 앞을 지나야 정상적인 방향이다. 한동안은 무성히 자란 풀이 길을 막아 헤치듯 지나야하는데 쑥부쟁이며 구절초가 지천이다. 10분정도 희미한 길을 지나면 능선을 만나면서 분명한 솔숲 길을 만난다. 능선을 따라 500m쯤 가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 방향의 신기마을 3.0㎞와 오른쪽의 신기마을 3.4㎞의 이정표다.

직진방향의 길을 따라야 느티나무 쉼터를 지나 바로 원평마을로 가는 길이다. 완만한 내리막 능선 길을 따르는데 오른쪽으로 철망을 두르고 그 내부에 전기울타리까지 설치해뒀다. 염소를 방목해 키우는 농장의 울타리라는데 비가 내리는 중이라 울타리가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무덤 한 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골짜기 길이다. 20분쯤 내려서니 사방댐이 설치된 계곡 옆길을 걷게 된다. 밤나무 밭 사이를 지나는데 이미 수확을 마쳤지만 간혹 알밤을 품은 밤송이가 바닥에 뒹군다. 밤 밭을 지나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전에 올랐던 들머리가 사방댐 건너에 보인다. 이후는 느티나무 쉼터를 지나 농로를 따라 원평마을 주차장까지는 15분정도면 닿을 수 있다. 우중산행을 마무리하고도 사랑의 눈물이 비로 내린다는 전설의 월여산은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원평마을 주차장 -(20분)- 느티나무 쉼터 -(20분)- 칠형제바위 -(15분)- 추모공원 갈림길 -(30분)- 만물상 전망대 -(25분)- 정상 -(8분)- 2봉 -(7분)- 3봉 -(15분)- 철쭉군락지 -(20분)- 신기마을 삼거리 -(50분)- 느티나무 쉼터 -(15분)-원평마을 주차장



월여산은 대부분 소나무숲길을 걷게 되지만 정상부는 바위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보이는 주변의 풍경이 일품인 산이다. 철쭉이 피어나는 5월을 제외하면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이다. 소개한 코스는 약 7㎞로 3시간30분정도 소요되고, 능선을 따라 신기마을을 돌아 내려오면 약 9㎞로 4시간30분정도 소요된다.

☞ 교통

광주대구고속도로 거창IC에서 내려 회전교차로에서 좌회전으로 합천방향 24번 국도를 따른다. 약 4.5㎞지점에 산청방향 일원교를 건너 1089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9㎞를 가면 양지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으로 약 1.5㎞지점 삼거리에서 좌회전으로 진입하면 원평마을 주차장이 나온다.

☞ 내비게이션: 경남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1079-1 (원평마을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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