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반려견 엘레지(Elegie)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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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  발행일 2019-10-11 제40면   |  수정 2020-09-08
야생으로 내몰린 반려견…들개의 DNA가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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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유기견.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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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의 들녘은 볏더미가 쓰러진 채 물에 잠겨 황량한 모습을 드러내고 산비탈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다. 잇단 가을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TV 영상이 비춰준 정경이다. 예년 이맘때엔 오곡백과가 풍성했으나 올해는 야생 열매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썰렁한 산야(山野)를 떠돌던 멧돼지와 들개들이 먹이를 찾아 주택가나 도심지에 출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도 굶주린 들개 떼가 출몰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119 구조대가 포획에 나서고 있지만 늑대만 한 개체수가 워낙 많아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들개 떼는 대부분 반려견으로 자라다 버려진 유기견이 야성(野性)으로 변신했다는 것. 어쩌면 인간에 의해 버림받고 옛 조상인 늑대의 태생적 DNA가 되살아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이스트(KAIST) 김대식 교수(뇌과학)의 브레인 스토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길들여 가축화에 성공하였기에 지구촌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야생 늑대는 약 1만5천년 전에 가축화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대 인류가 어린 늑대 새끼를 가축으로 거두었다는 설과 굶주린 늑대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인간을 따르게 되었다는 두 가지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사나운 늑대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복종하며 반려견으로 진화해온 연유다.


고대 인류, 야생늑대 거둬 가축화
사나움 버리고 복종·충직함 진화
매년 버려지는 유기견만 십만마리
행실이 나쁠 경우 ‘개’섞인 욕설
힘 없는 약자 얕잡아 보는 우월감

집 주변서 떠도는 장애견·노령견
소중한 생명체 차마 외면하지 못해
하나 둘 데려오다 열 세마리와 동거
情으로 함께 반려하는 인간애 절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뭇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필자는 본란(6월28일자)을 통해 반려견은 물론 어린 자녀까지 끔찍하게 학대하고 살해한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번엔 자연재해로 삶터를 잃어버린 유기견이 사나운 들개로 변신한 과정을 추적해 봤다. 인간은 흔히들 행실이 나쁜 자를 가리켜 “개 같은 인간!” 또는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거침없이 내뱉고 일상에서도 “개 같은…”이란 욕설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무덤덤하게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개를 너무 얕잡아 보는 우월감 탓이다.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도 개를 보신탕용으로 길러 잡아먹는 나쁜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인간은 걸핏하면 충직한 개를 욕중지존(辱中至尊)으로 삼아 욕설을 내뱉기 일쑤다. 이럴 때면 인간과 개를 풍자한 최영재 시인의 ‘개 같은 인간’이라는 동시가 떠오른다.

“개는 무조건 주인을 좋아하지. 개는 남을 속일 줄 몰라. 개는 괜히 남을 미워하거나 발톱만치도 속이려 들지 않아. 그러니 개 같은 인간이라면 아주 괜찮은 사람 아니겠니?”

시인은 어미 개와 강아지의 대화를 통해 사악한 인간들에게 역설적으로 “개를 함부로 모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새삼 반려견의 표정을 살펴보니 눈빛이 너무도 맑고 선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개는 숙명적으로 버림받게 돼 있는 동물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인간의 교활한 속성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는 현재 반려견 13마리를 거두고 있다. 이 중 절반이 유기견이나 장애견, 노령견(老齡犬)이다. 얼마 전에도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두 마리를 거둬 들였다. 유기견을 발견한 주민들이 정작 거둘 생각은 않고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앞섰지만 오갈 데 없는 소중한 생명체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

뼈가 앙상한 녀석들을 목욕부터 시키고 보니 흙탕물을 토해내고 설사가 그치질 않아 동물병원에 데려가 종합검진을 받았다. 생후 3개월밖에 안 된 것들이 길가에 고인 흙탕물만 먹고 줄곧 굶주렸다고 했다. 예방접종부터 하고 영양식을 먹이며 2주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오가는 동안 애틋한 정이 들어 가슴에 품었다. 양육비가 수월찮게 들지만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도 그동안 반려해 온 노령견을 셋이나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또 어린 새 식구가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노령견은 면역력이 약해 치명적인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고 입원할 경우 월급을 몽땅 털어넣어도 모자란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지만 버림받지 않겠다며 꼬리를 살랑거리고 엉너리를 부릴 땐 으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어쩌면 반려견의 생사관이 이다지도 인간과 같을 수 있을까.

특히 장애견이나 노령견이 병원을 오가며 고통을 겪다가 제 명대로 못 살고 이승을 뜰 때엔 한동안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해 정신적인 방황을 되풀이할 때도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불쌍한 것들을 비정하게 내다버린단 말인가. 반려견 인구 천만 시대에 함부로 버려지는 유기견이 연간 십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유기견보호소를 운영하고 있으나 개체수가 워낙 많아 종전 한 달간씩 수용하던 것을 최근엔 견주(犬主)나 입양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주일 만에 안락사시켜버린다고 했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세상에 유기견이 크게 늘어난 탓이라고 한다. 때문에 들개로 변한 유기견들이 먹이를 찾아 곳곳에서 떼로 출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개를 버려도 개는 절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동시의 반려견 엘레지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휴, 개 같은 인간!”

길가던 사람이 화난 얼굴로 혼잣말처럼 욕설을 내뱉자 엿들은 강아지가 궁금증이 동해 어미개에게 묻는다. “엄마, 저 말이 칭찬인가요?” “아무렴 개 같은 인간이라면 좋은 사람이지.”

개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속일 줄 모르는 정직한 동물이다. 하지만 개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면 돌아서서 주인을 문다는 말이 있다. 충견이 광견으로 돌변하는 까닭이다. 버려진 개 한 마리라도 정으로 거둬들여 반려하며 살아갈 인간애가 절실한 계절이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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