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배낭 메고 중미를 가다] 멕시코 팔렝케(Palenque)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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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37면   |  수정 2020-09-08
푸른 정글 속 잠들어 있는 색바랜 神의 도시

◆산토도밍고 델 팔렝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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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올라 팔렝케의 모습을 발아래 펼쳐 놓으니 그 모습이 장관이다. 폐허가 된 궁전광장에서는 끔찍한 사람 공양 피의 의식이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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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렝케의 성당은 이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로, 때마침 장례미사가 시작되어 성당외부까지 사람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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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상징물과 시간이 지배하는 석기 시대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조각품들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과테말라의 플로레스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한 미니밴이 과테말라와 멕시코 간 국경에서 출입국신고를 하고 작은 배를 타고 두 나라 사이를 흐르는 강을 건넜다. 멕시코 측에서 나와 기다리는 차를 타고 팔렝케 유적지의 전진기지인 산토도밍고 델 팔렝케로 향한다. 키 낮은 차에서 171㎞의 거리를 여유있게 4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지옥 같은 미니밴은 물결에 춤추듯 기우뚱거리면서 6시간이나 걸렸다.

멕시코 치아파스주 정글 지대에 둘러싸인 산토도밍고 델 팔렝케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호텔에 배낭을 풀고 시내 구경과 팔렝케 유적지 여행예약을 하러 나갔다. 거리는 사람과 건물 등 소박한 마야의 냄새가 물씬 난다. 시장에는 많은 열대과일을 파는 가게와 성당 그리고 여행사들이 보인다. 시내 인근에도 바로 밀림이라 도로에서 한 발짝만 들어가면 열대 거목들이 빼곡히 들어서있고, 밭을 일군 곳에서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도시 인근 열대 거목이 빼곡한 밀림
정글속 숨어 있던 고대 신전의 모습
마야의 시간이 지배하는 3대 유적지

피라미드 왕의 분묘 ‘비문의 신전’
묘비에는 600자 넘는 마야 문자 적혀
석관 뚜껑 우주선 같이 조각된 문양
‘팔렝케 우주인설’ 나온 신비스러움

물줄기 굉음과 옥색 물빛 폭포 두곳
우거진 나무들과 조화 한폭의 그림
천연 버블탕에 발 담그면 천국 온듯


◆마야문명 황금기때 세운 숨겨진 도시 팔렝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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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의 정점에 있는 파칼왕 묘실의 천장은 마야 아치로 돼 있고, 이곳의 석관 안에서 가면을 비롯해 온통 비취로 가득한 파칼 왕의 미라가 발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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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를 기다려준 동행자에게 하회탈을 감사의 뜻으로 선물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며 정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아침에 호텔에 온 미니밴에는 멋쟁이 서양 여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내 몇명 더 타서 모두 8명이 함께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팔렝케 유적과 미솔 하(Misol-Ha) 폭포, 아구아 아술(Agua Azul) 계곡을 묶어서 하루에 다녀오는 1일 투어를 신청했다. 별도로 차를 찾아 타지 않아도 되고 투어가 끝나는 저녁 시간에 맞춰서 다음 도시로 떠나는 야간버스를 탈 수도 있어 좋다. 시내에서 팔렝케 유적까지는 차로 20여분. 유적지로 들어가는 정글 사이로 숨어 있던 고대신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숲속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가면을 쓴 마야인들이 뛰쳐나올 것 같았다.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나무숲 사이의 광장주위로 탈색된 건축물들이 나타났다. 팔렝케는 고대마야 유적지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세계최대 유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과테말라의 티칼(Tikal), 온두라스의 코판(Copan)과 함께 3대 마야 유적지로 불린다. 1784년 발견되기 전까지 숲속에 잠들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사원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건 두개골 사원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건 사원 기둥에 해골을 묘사한 조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허리춤에 채찍을 차고 담뱃대를 꼬나문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으로 계단을 올랐다. 보기에도 아찔한 경사의 계단은 습기에 젖어 미끈거리기까지 했다. 뾰족한 신전의 측면에는 마야인이 조각한 해골 장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로 들어가는 좁은 문 속은 온통 축축하다.

이 팔렝케 유적이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은 ‘비문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피라미드 지하통로에서 왕의 분묘가 발견되면서부터다. 9층 피라미드 위에 건축된 이 신전은 피라미드의 밑변 길이가 65m이며, 높이는 신전을 포함하여 21m이다. 신전에는 파칼왕의 묘실이 있다. 묘실은 신전에서 지하로 27m 내려간 곳에 위치하며, 정확히 피라미드의 중앙 아래가 된다. 이 묘실에는 길이 3.8m, 너비 2.2m, 두께 25㎝인 묘비가 남아 있다. 이 묘비에는 600자가 넘는 마야 문자가 적혀 있다. 이 문자들은 약 200년에 걸친 팔렝카 왕가의 역사를 담고 있어 마야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손꼽힌다. 비문의 신전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묘비 아래는 파칼왕의 무덤으로, 발굴 당시 붉은 수의로 감싼 유골이 나왔다. 파칼왕의 얼굴에는 비취를 모자이크로 짜맞춘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현재 멕시코의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나 정작 세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석관의 뚜껑에 조각돼 있는 문양이다. 5t이나 되는 석판에 인간, 신, 식물 및 마야 문자가 빈틈없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문양의 전체 흐름이 우주선 내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마야의 신관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 문양으로 인해서 ‘팔렝케의 우주인설’이 나왔고, 마야문명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비문의 신전 앞에는 4단 타워의 궁전이 있다. 많이 훼손되었지만 안뜰, 회랑, 방, 미로 같은 통로들이 있다. 안뜰과 건물 외곽 기둥에는 조각과 회반죽 장식들을 볼 수 있다. 팔렝케는 이 밖에도 궁전 옆에 나있는 다리를 건너면 4개의 신전인 태양신전, 나뭇잎 십자가 신전, 십자가 신전, 템플신전에 닿는다. 이들 신전들에는 상형 문자와 회반죽 조각들이 공통적으로 있다. 가장 잘 보존된 태양신전은 지붕위에 거대한 조각 석판의 지붕 빗이 인상적이다. 나뭇잎 십자가 신전은 세모형 입구와 나뭇잎 모양의 창이 특징이고, 십자가 신전의 매력은 정상에 올라 비문의 신전과 궁전의 전경을 보는 것이다.

궁전이 있는 메인광장을 둘러본 후 울창한 밀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거진 숲속을 10여 분 걸어 들어가니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신전들이 나타났다. 이 밀림 곳곳에도 수십 수백 개의 신전과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이 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곳 유적이 17.7㎢의 넓은 밀림에 흩어져 있다. 이곳에 있었던 건축물이 5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아직 5%밖에 발굴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신전들을 높은 곳에서 한 눈에 보니 푸르른 밀림속 색 바랜 신전들의 모습이 눈에 시리다. 화려한 붉은 색 신전 도시였을 이곳의 예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곳 밀림을 탐방하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길을 잃어 동행자들에게 큰 실수를 안긴 팔렝케 밀림속의 방황은 잊을수 없다. 길 잃어버려 더 신비로운 풍경이다. 팔렝케 유적은 내게 새로운 추억을 안겨 주었다.

◆옥빛 물의 폭포 미솔 하(Misol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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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35m나 되는 웅장한 미솔 하 폭포가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팔렝케 마야 유적을 무더위와 싸워가며 탐방을 마치고, 팔렝케에서 약 7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폭포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폭포와 옥빛 물색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솔 파~ 미솔 파~ 실로폰 소리가 날 것 같은 귀여운 이름과 달리 어마어마한 크기의 폭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엄청난 소리는 천지를 흔드는 듯하다. 높이가 35m나 되는 웅장한 폭포로서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히고 봐야 했다. 폭포 가까이에 갈수록 물이 엄청 튀어서 옷이 다 젖을 정도다. 얼마나 수량이 많고 힘이 센지 폭포수의 물보라가 마치 흩뿌리는 비 같아서 장관이다. 땀에 범벅이 되어 팔렝케 유적들에 빠져있던 내 앞에 보이는 거대한 폭포는 탄산음료를 한숨에 들이켜는 숨막히는 짜릿함이다.

팔렝케 투어의 또다른 백미는 물구경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대륙의 높은 산과 나무와 숲이 오랜 시간 정화해 맑고 깨끗한 물이 말 그대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온다. 압도하는 절경의 크기는 한 눈에 담기 어렵다. 물보라가 만드는 무지개를 보고, 폭포 바로 뒤쪽으로 들어가 떨어지는 물을 코앞에서 바라본다.

◆푸른물의 웅장한 물줄기 아구아 아술(Agua Azul) 폭포

미솔 하 폭포의 굉음을 뒤로하고 푸른 물이라는 뜻을 가진 시원한 정글의 계곡 아구아 아술을 향해서 위로 올라갔다. 하나로 나 있는 길은 자꾸만 더 깊은 녹음지대로 빨려 들어간다. 저 쪽에 푸른 물이라는 뜻의 ‘아구아 아술’이 보이는 듯하다. 대형 폭포 공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구아 아술은 실제로 유독 푸른빛을 띠는데, 이는 이 지역 암반층에 석회질과 여러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단일 폭포가 아닌 산을 타고 이어진 계곡이다. 폭포가 폭포를 만나 다른 폭포로 이어지고 바위를 타고 굽이굽이 흐른다. 눈길을 사로잡는 폭포의 웅장한 물줄기와 물보라는 무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시원하다. 터키석을 닮은 물빛위로 새하얀 포말이 부서지면서 엄청난 양의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5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폭포가 층층이 쏟아져 내리는 바위와 우거진 나무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한다.

서둘러 계곡을 더 거슬러 올라갔다. 넓고 깊은 계곡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들의 웅장함과 다양한 형태의 폭포와 물보라에 탄성이 절로 난다. 이곳에서 준비해간 수영복을 입고 동행한 미인들과 물속으로 들어갔다. 보글보글 천연 버블탕에 발을 담근채 눈을 감고 한참 물소리를 들었다. 천국이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 주변은 공원같이 자연 정글조경이 잘 되어 있다. 광활한 폭포에 넋이 빠져 있다가 강과 폭포를 따라 산책을 하고 석양을 등지고 팔렝케 시내로 귀환하여 야간버스로 낭만과 예술이 넘치는 도시 메리다로 향했다.

자유여행가·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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