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독일 퓌센의 루트비히 2세 고성(古城)

  • 임성수
  • |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37면   |  수정 2020-09-08
백조가 날아오르는 듯 우아한 성채…王의 슬픔 깃든 ‘백조의 성’
20191101
마리엔 다리에서 바라본 노이슈반슈타인성.
20191101
린더호프성
20191101
호엔슈방가우성
20191101
벽화가 인상적인 오버아머가우 마을.
20191101
퓌센의 여유로운 거리 풍경.

스피드광은 아니다. 하지만 운전을 즐기는 나에게 아우토반의 속도무제한은 ‘설렘 무제한’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곳곳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이 부록으로 붙어 있다. 그 길 위를 달리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독일의 로만틱 가도 이야기이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메르겐트하임, 로텐부르크, 딩켈스뵐, 아우구스부르크를 거쳐 퓌센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은 마치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자동차를 타고 중세 지역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실제 이 길은 중세 시대에 독일과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개발이 뒤처져 옛날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을 독일 정부가 관광 도로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니 ‘로만틱’의 의미도 우리에게 익숙한 ‘낭만’이 아니라 ‘로마로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은 운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아름다운 로만틱 가도를 달리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한가롭게 놀고 있는 양떼들, 그리고 그 사이에 홀연히 끼어드는 고적한 중세 분위기의 성채, 색 바랜 지붕과 담장을 두르고 있는 집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리고 그 끝에 아름답고 슬픈 루트비히 2세의 고성들이 기다리고 있다.

넓은 초원 양떼, 색바랜 지붕의 집
고풍스러움이 매력적인 시골 마을
아름답고 슬픈 국왕의 삶 닮은 고성
도심에서 4㎞ 떨어진 숲속에 자리

왕이 어린시절 보낸 호엔슈방가우성
그림 같은 알프제 호수·알프스 풍광
생전 유일하게 완성한 린더 호프성
궁이 완공된 해 쫓겨나 비운의 죽음


그 고성들 주변의 중심 도시는 로만틱 가도의 종착지인 퓌센(Fussen)이다. 알프스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독일 바이에른(바바리아)주에 속하며, 인구가 1만5천명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있으며, 알게우알프스 산맥 동쪽 끝의 레히강 연안에 있다. 옛 로마제국의 국경초소가 있던 지역으로서, 628년에 세워진 성 마그누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사실 퓌센은 지나가는 여행지이다. 보통은 뮌헨에서 시간을 보내다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을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퓌센은 나에게 의외의 선물이었다. 시골마을의 고즈넉함과 여유, 쾌적한 공기와 산, 물, 그리고 주변의 고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단정하게 늘어선 거리는 한가롭게 미적거려도 될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이 거리에만 내리는 듯한 나른한 햇살을 받으려고 노천카페에 앉았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숲과 겹쳐진 산들이 푸른 가을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목적지를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나같이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자락을 이렇게 잡고 있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루트비히 2세도 그랬으리라. 그의 환상을 구현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도심에서 4㎞ 떨어진 슈반가우 숲에 있었다.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은 ‘새로운 백조의 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보통 ‘백조의 성’으로 불린다. 이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가 백조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 그린’에 등장하는 백조에 영감을 받아 지은 성이라고 한다. 바그너를 무척이나 아꼈던 그는 성 안에 공연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성은 미완성이다. 1869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나 1886년 루트비히 2세의 죽음으로 중단됐다. 그는 17년 동안 짓고 102일밖에 이곳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성 말고도 아름다운 린더호프성(Schloss Linderhof), 헤렌킴제성(Schloss Herrenchiemsee)을 건축했다. 이 중 린더호프성만 완성했고, 두 개의 성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루트비히 2세는 ‘백조의 성’이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수라고 했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은 최고의 관광지가 돼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월트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지을 때 모델로 삼기까지 했단다.

퓌센의 한적함을 뒤로 하고 백조의 성을 찾았다. 성이 가까워지면서 끊임없는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한참 만에 주차를 하고 입장권을 사려고 보니 그곳도 긴 줄이 늘어섰다. 성 내부 관람은 깔끔히 포기하고 대신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다리(Marienbrucke)로 향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숲속 길을 10분 남짓 오르니 또 다시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마리엔다리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좁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철제 다리는 한꺼번에 400명이 올라갈 수 있단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를 막고서 웨딩 촬영을 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시 기분이 언짢았다. 웨딩촬영 팀이 철수하자 곧바로 다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의 언짢았던 기분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한 마리 백조가 날아오르는 듯한 우아한 성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동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던 그림 속의 성이 눈앞에 있었다. 주위의 푸른 숲과 성 위의 파란 하늘이 하얀색의 백조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성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천천히 숲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가까이서 본 백조의 성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리엔다리 위에서 바라본 성이 비상하는 백조의 모습이라면 가까이서 본 모습은 아직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새끼’처럼 조금은 생경했다. 성도 주인을 닮은 걸까. 마치 ‘광인왕(Mad king)’과 ‘동화왕(Fairy Tale King)’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별명을 가진 루트비히 2세처럼 전혀 다른 이미지가 포착되었다.

루트비히 2세는 300여 개의 연방국가 가운데 비교적 큰 세력이었던 바이에른(Bayern) 왕국의 왕이었다. 살아서는 출중한 외모와 복잡하면서도 기이한 사생활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고, 죽을 때도 호수의 변사체로 발견되어 풀리지 않는 죽음의 수수께끼를 남긴 왕이었다. 그의 이러한 삶의 근저에는 애정결핍과 그로 인한 우울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예술과 낭만, 심미적 취향에 경도하게 만들었고, 결국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성의 건축에 몰두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쩌면 광인왕의 모습에서 동화왕을 지향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름다운 백조의 성을 통해서 동화왕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는지. 미완성의 이 성은 그의 미완성 삶처럼 아름답고 슬프다.

백조의 성 맞은편 언덕에는 루트비히 2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호엔슈방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이 있다. 노란 색의 이 성은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버려져 있던 성을 1832년에 사서 네오 고딕양식으로 개축한 것이다. 이 성에서 바라보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또 비상하기 위해 숲에 웅크린 백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루트비히 2세가 이곳에서 자라면서 보았을 매력적인 경관은 바로 알프제(Alpsee) 호수와 그 너머의 알프스 산자락 풍광인 것 같았다. 이러한 환경이 그의 꿈과 환상을 키웠을 것이고, 왕이 된 후 그 꿈을 구현한 것이 바로 백조의 성이었을 것이다. 현재 이 성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보관돼 있으며, 3층에는 왕이 작곡가 빌헬름 바그너와 함께 연주했던 피아노가 전시돼 있다.

호엔슈방가우성을 내려와 성에서 보았던 그림 같은 호수 알프제를 찾았다. 백조들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호수 위로 알프스 설산이 투영되고 있었다. 어린 루트비히 2세가 백조를 희롱하며 이 호숫가 오솔길을 따라 달렸을 것이다. 나도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어둡기 전에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완성을 보았던 린더호프성(Schloss Linderhof)을 찾았다. 린더호프궁이 있는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는 인구 5천여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뤼프틀말레라이 라고 하는 벽화예술과 함께 그리스도 수난극 공연으로 유명하다. 1633년 페스트가 창궐할 때 주민들은 고통에서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 10년에 한 번씩 수난극을 공연하겠다고 서약했고, 그 서약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1871년에는 국왕 루트비히 2세를 기념하여 수난극의 특별공연이 이루어졌는데, 국왕도 감격하여 십자가 처형 장면을 묘사한 대리석 조각을 이 마을에 선물하였다.

린더호프성은 바로 이 마을 가까이에 있다. 깊은 숲속에 자리잡은 이 성은 루트비히 2세가 은둔하기 위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만든 세 개의 성 가운데 유일하게 생전에 완공을 본 성이다. 하지만 이 궁이 완공된 해인 1886년에 권좌에서 쫓겨나고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 궁은 화려한 로코코 풍의 실내장식과 개인적인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했다는 여러 가지 장치가 특징이다. 특히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위해 만들었다는 비너스동굴(Venus Grotto)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린더호프성은 루트비히 2세가 지은 세 개의 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그러나 주변 산세와 궁전 앞에 배치한 정원과의 조화는 단연 돋보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태양왕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서있고, 천장에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과 태양의 불꽃으로 장식한 루이 14세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절대왕정의 끝을 붙잡고 있었던 루트비히 2세의 마지막 몸부림인 듯 안쓰럽다.

대구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