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전문성 강화” VS “지방자치법 개정이 먼저”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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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2   |  발행일 2019-11-22 제3면   |  수정 2019-11-22
경북도의회 정책보좌관제 도입 논란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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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4일 경북도 공무원노조가 도청 브리핑룸에서 정책보좌관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왼쪽). 의정활동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정책보좌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경북도의회가 지난 6일 제312회 제2차 정례회를 열고 있다. (경북도 제공)

9명과 0명.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보좌인력 수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1인당 4급 상당 2명을 비롯해 총 9명의 유급 보좌관을 둘 수 있다. 반면 지방의원은 유급 보좌인력을 둘 수 없다. 전문적 보좌진이 없는 지방의회 의정활동이 국회보다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뒤 30여년간 지방의원은 의정활동을 공무원 조직에 의존해 왔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 분권’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지방의회의 독립성이 크게 떨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서울시의회 등 12개 광역의회에서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해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 있다. 경북도의회도 지난달 정책보좌관 30명 채용을 위한 예산 편성을 요구했으나 도청 공무원 노조 등의 반발로 12명의 인력만을 채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도의회는 의정활동의 질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정책보좌관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도청 공무원노조 등은 일련의 도입 추진과정을 ‘졸속 행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전문인력 쓰는 他 시·도의회 조례발의 더 많아
편법·선심·중복예산 걸러내 예산절감 효과도”
경북도의회


경북도의회는 내년 4월을 목표로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방의원 유급 보좌인력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의정활동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서다. 도의회는 우선 시간선택제 임기제공무원(다급) 형식으로 정책보좌관을 채용한 뒤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유급 보좌인력 채용 절차를 새롭게 진행할 방침이다. 정책보좌관 대우를 ‘다’급 상당으로 한 건 석·박사급 전문인력의 보수 수준 등을 고려한 조치다. 통상적으로 시간선택제 ‘가’급은 일반행정공무원 5급(사무관) 상당, ‘나’급은 일반행정공무원 6급(주사) 상당, ‘다’급은 7급(주사보)상당, ‘라’급은 8급(서기) 상당, ‘마’급은 9급(서기보) 상당의 대우를 받는다.

앞으로 채용될 정책지원 전문인력 12명은 6개 상임위원회에 2명씩 배치돼 의정활동을 지원한다. 이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15명 전원(라급 상당)을 5개 상임위별로 3명씩 채용한 인천시의회와 유사하다. 서울시의회는 운영위원회에 시간선택제 공무원 2명(다급 상당)을 채용하고 나머지 50명(라급 상당)은 전문위원실에 배치해 의정활동을 지원하게 하고 있다. 도의회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시·도의회 가운데 경북·경남·전북·울산·세종을 제외한 12개 시·도의회에서 ‘시간선택제 공무원’ 161명을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이 52명(다급 2명, 라급 5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충남 21명(나급 1명, 다급 2명, 라급 18명), 광주 17명(나급 1명, 다급 1명, 라급 15명), 전남 16명(전원 라급) 순이다. 대구시의회는 4명(전원 마급)을 채용해 전문위원실(교육·운영 제외)에 배치했다.

도 의회는 정책보좌관 채용이 의정활동 만족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경식 의장은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시·도의회는 이를 운영하지 않는 의회에 비해 조례발의 건수가 지난 1년간 40% 이상 높았다”며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채용에 드는 예산으로 집행부의 편법성·선심성·중복 예산 등을 걸러내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大法, 유급 보좌인력 채용 취소처분 적법 판시
석·박사급 17명이 도의회서 의정활동 지원 중”
공무원노조


경북도청 공무원노조는 정책보좌관 제도가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정책보좌관 관련 예산안이 최종 편성되는 시점에 맞춰 감사원 감사의뢰, 행정처분 정지명령 청구 소송 등에 나설 계획이다. 노조는 위법성의 근거로 2017년 3월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당시 서울시의회가 시간선택제 임기제공무원(라급)을 채용하려고 하자 서울시는 시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방의원에 대해 유급 보좌인력을 두는 것은 지방의원의 신분·지위 및 그 처우에 관한 현행 법령상의 제도에 중대한 변경을 초래하는 것으로 국회의 법률로 규정해야 할 입법사항”이라고 판단하고 “서울시의회 유급 보좌인력 채용에 대한 직권 취소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노조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보좌관 제도 도입은 위법이라고 강조한다. 법 개정 이후 사전 연구용역 등을 거친 뒤 채용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 현재 법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노조가 정책보좌관 채용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력 중복이다. 의정활동 지원을 위해 도의회 전문위원실에 석·박사급 전문인력 17명이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정책보좌관을 도입하는 건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또 경남·전남도의회 등 의석수가 경북과 유사한 타 시·도의회보다 더 많은 전문직이 근무하는 점도 정책보좌관 채용을 반대하는 이유다.

노조는 정책보좌관이 채용되면 인건비 총액 등 예산부족으로 정작 필요인력을 채용할 수 없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준일 노조 사무총장은 “정책보좌관 제도 도입에 대한 연구나 도민 공감대 형성 없이 도의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도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이 편법·위법을 저지르는 모양새다. 유급 보좌관은 지방자치법이 개정된 뒤에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시의회는 16명 채용…서울에서는 ‘무위로’
타지역 사례

인천시의회는 지난 8월 정책지원 전문인력(정책지원관) 16명을 채용했다. 채용에는 40명이 응시해 필기·서류·면접 등을 거쳤다. 시간선택제 라급(8급 상당)을 채용한 인천시는 라급 1인당 수당 포함 최대 4천70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연간 7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하지만 도입을 두고 인천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은 거셌다. 인천부패척결운동본부는 “지방의회가 과중한 업무를 빗대 유급보좌관제를 요구하는 건 국회의원과 똑같다. 시의원이 솔선수범해 예산을 절약하고 알뜰히 정책을 감시해야 함에도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회는 대법원 판결 이후 정책지원관의 추가 채용 없이 전문위원실에 있는 기존 인력(52명)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8월 한 정책지원관이 시의원으로부터 지역행사 참석, 민원인 응대, 당원명부 작성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의원 110명 가운데 일부 의원이 정책지원관 제도 취지를 잘못 이해해 발생한 예외적 상황으로 보인다”며 “사적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 지원관을 채용하지 않았다. 지원관은 상임위에 속해 의정 활동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보좌관제를 바라보는 일반의 시각도 차이가 난다. 하세헌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수도권 광역의회를 제외하고 경북도의회 규모가 가장 크다”며 “정책보좌관 제도를 도입해 의원 전문성을 살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50만명이 넘는 도민 대표자로서 조례 발의 등 입법활동이나 예산 심사 등에 도의원 60명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의회 전문성 향상을 위해서는 정책보좌관 제도 도입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정책보좌관 12명이 도의원 60명을 공동으로 보좌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우려하는 개인비서 역할 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도의원들이 개인 보좌관제 효과를 얻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는 정책보좌관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의회 사무처에 입법정책관, 전문위원 등 충분히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전문인력이 존재함에도 주민들이 의정활동 만족도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 강서구 안동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도의회가 자신들을 보좌하는 인력을 늘리기 이전에 의정활동 성과를 스스로 되짚어봐야 한다”며 “노조가 주장하는 위법 사항에 대한 지적도 도의회가 쉽게 외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 17개 광역시·도의회 시간선택제 운영현황
구분 의석수 운영현황 인원 등급
서울 110 운영위원회, 전문위원실 배치 52명 다급 2명, 
라급 50명
부산 47 전문위원실(운영위원회 제외) 6명 라급 6명
대구 30 전문위원실(교육·운영위원회 제외) 4명 마급 4명
인천 37 5개 상임위원회별 각 3명씩 16명 라급 16명
광주 23 4개 전문위원실 각 3명씩, 의회운영위원회 4명, 장애인담당 1명 17명 나급 1명, 다급 1명, 라급 15명
대전 22 총무담당관실 공보실 1명 다급 1명
경기 142 12개 상임위원회별 각 1명씩 12명 라급 12명
강원 46 홍보담당관실 1명, 수석전문위원실 2명, 경제건설위원회 1명 4명 라급 4명
충북 32 전문위원실별 소속, 라급은 공보팀에 소속 5명 가급 3명, 나급 1명, 라급 1명
충남 42 입법예산정책담당관실 소속(각 전문위원실별 배치) 21명 나급 1명, 다급 2명, 라급 18명
전남 58 전문위원실별 2~3명, 특별위원회 1명 16명 라급 16명
제주 43 전문위원실 7명, 민원홍보담당관실 1명 8명 가급 3명, 나급 3명, 다급 2명
*경북·경남·전북·울산·세종 시간선택제 미운영 <경북도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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