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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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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윤 정부의 2022 세밑 풍광
#블랙 코미디 같은 무인기 파동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무인기 파동 말이다. 탐지부터 요격까지 총체적 부실이었다. 북의 무인기가 5시간 동안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녀도 우리 군은 헛발질로 일관했다. 허접한 변명도 가관이다. "북 무인기가 소형이라 격추하기 어려웠다." 보잉747쯤 되는 대형 항공기라야 격추 가능하단 얘긴가. "민가 피해 우려 때문에 사격에 제약이 있었다." 전투기·경공격기·공격헬기 다 띄우고 100여 발 사격했다는 건 서사가 아니었나. 경공격기는 이륙 직후 추락했고, 지난 27일엔 새떼를 무인기로 착각해서 28일 새벽엔 풍선을 무인기로 오인해 전투기가 출격했다. 개망신이 따로 없다. 군은 뒤늦게 "격추 못 해 송구하다"며 꼬리를 내렸다.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왜 열지 않았나. 열 상황도 아니었고 열 필요도 없었다고? 수도권 방공망이 뚫렸다면 북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날릴 때보다 더 실질적 위기상황 아닌가. 선제타격하겠다더니 적기 침공에도 속수무책이라니. 보수 정권이 안보까지 무능하다면 어디서 점수를 딸 작정인가.'전 정부 탓' 고질도 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7년부터 드론 대응 훈련이 전무했다"며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전가했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2019년 도입한 드론 테러 방어용 레이더와 주파수 무력화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정권이 바뀐 후 7개월 동안은 뭐 했나.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부진한 성적으로 물러난 어느 야구 감독은 "사실 선수들이 못했다"고 말했다. 못난 변명이다. 여자배구 현대건설의 강성형 감독은 꼴찌팀을 1년 만에 압도적 1위팀으로 조련했다. 반전(反轉) 키워드는 감독의 능력이다.'남 탓' 데자뷔는 또 있다. 2020년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2014년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70%로 높이며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건 맞다. 하지만 아파트 급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부동산을 잡을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는데 23번 깔짝거리면서 시장의 내성만 키웠다.#'형평' 실종된 사면지난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을 대거 사면하며 정부가 낸 메시지는 국민통합이다. 보수정권이 국민통합하려면 진보세력을 껴안아야 한다. 한데 이번 사면 대상은 주로 보수진영 쪽이다. MB를 비롯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봉근·정호성·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형이 면제되거나 복권됐다. 야권 인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신계륜 전 국회의원 정도다. 게다가 MB 사면에 대한 국민 여론은 반대가 더 많다. 국민통합이라고? 의구심이 증폭한다.MB는 15년 잔여 형기와 벌금 82억원까지 면제해 줬다. 김경수 전 도지사는 복권 없는 5개월 형 집행정지다. 누가 보더라도 한쪽으로 경도된 사면이다. 사면·복권의 원칙과 기준이 뭔지 아리송하다. 민주당은 "적폐·부패 세력을 풀어준 묻지 마 대방출"이라고 성토했다.'내 편 챙기기'는 경찰 인사에서도 불거졌다. 정부는 28일 프락치 의혹의 김순호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을 경찰대학장으로 보임했다. 치안감 승진 6개월 만에 치안정감이라? 초고속 승진의 신기원이자 파격적 행상(行賞)이다. 어쩌면 공직자에게 던지는 은유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충성하라는.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황금비율
황금비율은 짧은 것과 긴 것의 비율이 1대 1.618인 것을 말한다. 시각적으로도 가장 안정감을 주는 이상적인 비율이다. 황금비율은 BC 5세기 고대 이집트에서 축조된 피라미드의 높이와 밑변의 길이가 황금비율과 근사(近似)한 데서 유래됐다. 황금비율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신이 내린 비율'이란 말도 파르테논 신전의 황금비율에서 비롯됐다. 르네상스 시대엔 황금비율이 조각상, 그림에도 폭넓게 원용될 만큼 불문율이었다. 황금비율은 가로·세로의 비율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조직 내 주류와 비주류의 세력 분포나 잡곡밥을 지을 때의 잡곡 비율 따위를 아우른다. 황금비율은 '얼짱'이나 '몸짱'의 절대조건이기도 하다. 이념 성향 구도는 보수·중도·진보 3대 4대 3 분할이 황금비율에 가깝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6대 4가 이상적이지만 우리나라는 지방세 비중이 30%가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폭탄주를 제조(?)할 때도 황금비율을 따진다. 소맥의 대세는 3대 7이 아닌가 싶다. 세금에도 황금률(黃金率)이 있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는 "세율 인상이 적정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세수가 늘지만 세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세수가 되레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래퍼의 법칙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의 경우 OECD 국가 평균 등을 감안하면 25% 세율이 임계점이며 적정 세율은 22%에서 25%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에 총력 대응해야 하는 만큼 법인세율을 인하할 적기는 아니다. 여당의 주장대로 3%포인트 인하하면 연간 6조원의 재정지출 요인이 발생한다. 시중 유동성이 사실상 증가한다는 의미다. 정당의 전당대회 룰도 황금비율을 적용할 수 있겠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지난 19일 당원 투표 100%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당심 100%는 황금비율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현행 7대 3이 황금비율에 근접한다. 결선투표제도 친윤 후보에 절대 유리하다. 정당은 당원이 주인이며 당 대표 선출은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당연하단 논리는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당의 실질적 주주는 국민이다. 정당 재정이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과 군인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당심만으론 민심을 폭넓게 아우를 수 없고 외려 민심을 왜곡할 소지가 다분하다. 당심 100%는 '총선 승리 방정식'과도 괴리가 크다. 중도 확장성에 함정이 있어서다. 국민여론조사를 통한 컨벤션 효과도 누릴 수 없다. 어쨌거나 국민의힘 전대 룰은 당원 투표 100%로 굳어졌다. 한나라당이 2004년 도입한 국민 여론 반영 규정이 18년 만에 사라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석에서 "당원 투표 100%로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데 '용산'을 경배하는 여당 지도부의 충심이 애틋하다. 정치 평론가들은 민주정당의 주류와 비주류의 황금비율을 6대 4로 판단한다. 하지만 친윤 그룹 '국민 공감' 출범과 함께 국민의힘의 세력 판도는 급격히 친윤 쪽으로 기울고 있다. 목하 황금비율 궤도에서 이탈 중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국민 공감'이 아니라 '윤심 공감'"이라고 비꼬았다. 친윤의 세력 확장이 총선엔 어떤 파장을 낳을까. 당내 세력 구도와 선거 승패의 함수관계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법하다. 친윤 당권 주자는 이제 당심 100%란 무기를 장착했다. 하지만 친윤 후보들은 하나같이 지지율이 미미하다. '진짜' 친윤 명패를 단 대표가 탄생할 수 있을까. '당심=윤심' 등식의 작동 여부가 최대 변수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법불아귀'는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오른손엔 칼, 왼손엔 천칭을 들고 있다. 변호사 배지에도 천칭이 그려져 있다. 천칭은 형평과 균형을 상징한다. 변호사를 비롯한 사법부, 검찰 등 법조삼륜이 지향해야 할 덕목이 형평이며, 형평이 곧 정의라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공정"이라고 했으니 정의, 공정, 형평을 동의어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한비자에 나오는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도 법의 형평을 반추한 말일 게다. 하지만 요즘 검찰엔 도무지 '형평'이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수사는 강공 일변도다. 성남FC 후원업체에 대한 저인망식 압수수색에다 쌍방울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대장동·백현동·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까지. 전방위적으로 전선을 확장한다. 검찰의 드센 화공(火攻)이 먹혔을까. 이 대표의 최측근 두 사람이 구속됐다. 한데 검찰의 이재명 포획용 대장동 수사는 지나치게 남욱 변호사의 진술에만 의존한다. 진술은 대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들었다"는 '카더라 통신'이다. 남 변호사는 "이재명 씨알도 안 먹혀"란 과거 발언에 대해선 "김만배가 회유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남욱의 검찰 진술 조서엔 "윤 대통령 밑에 있는 검사들 중에 김만배 돈을 받은 검사들이 워낙 많아서 이 사건(대장동) 수사 못할 거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남욱의 진술,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검찰은 대장동 개발의 '검은 돈'이 이재명에게 흘러갔다는 물증은 제시하지 못한다. 이재명 대표가 작심 반발하는 배경이다. "검찰이 남욱에게 연기 지도를 한다. 그런데 연기가 어설프다. 단 1원도 사적 이익 취하지 않았다. 탈탈 털어봐라". 이 대표는 '50억 클럽'을 겨냥해 "돈을 받은 자가 범인"이라고도 했다. 남욱 변호사는 "'천화동인 1호'에 이재명측 지분이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다.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를 밝혀내는 게 검찰 수사의 홍심이다. 검찰의 이재명 수사를 보는 국민의 시선도 흥미롭다.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는 '이재명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48.3%, '검찰을 더 신뢰한다' 39.8%였다. 오죽하면 검찰과 여권이 범죄자로 지목하는 이 대표의 말을 더 믿을까. 과거 검찰은 작위적으로라도 최소한의 형평을 지켰다. 야당 의원들을 수사하면 여당 의원도 같이 수사 선상에 올려 구색을 맞추는 식이다. 지금은 그런 도식(圖式)마저 사라졌다. 대놓고 편향의 티를 낸다. 예컨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수사는 아예 엔진이 꺼진 상태다. 검찰 공소장엔 김 여사 계좌 6개가 주가 조작에 이용됐다는 사실이 적시돼있다. 최근엔 소위 '선수'들이 날린 "8만주 때려 달라" "매도하라 하셈" 문자 메시지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가 매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통정매매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쩐주' 김건희 여사를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 조사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주가 조작에 연루된 혐의자들이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도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은 1년 넘게 미루고 있다. 검사의 법적 권력 '기소 편의주의'의 아주 나쁜 표본이다. '법불아귀'와 '춘풍추상'은 어디 갔나. 객관적 잣대라면 기소하는 게 온당하다. 살아있는 권력이든 야권이든 형평의 잣대, 같은 강도로 수사한다면 누가 감히 '정치 보복'이란 말을 입에 올릴까. 야당 대표 자리가 방탄의 갑옷이 될 순 없다. 외려 더 가혹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다만 물증과 법리로 범죄혐의를 소명해야 한다. 특정인의 진술로만 연기를 피우는 여론몰이는 경계해야 한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취임사에서 "오로지 법리와 증거만으로 검찰권을 행사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공정한 검찰이라면 이재명 대표 주변만 헤집을 게 아니라 '50억 클럽' 내막과 박영수 전 특검에 제기되는 여러 구설도 수사로 밝혀야 한다. 김만배 누나가 윤석열 대통령 부친 집을 매입한 의혹 역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런 우연은 포커에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잡을 확률보다 낮다. 검찰의 현란한 압색 신공은 뒀다 뭐하나. 집을 매매한 부동산중개소 등 몇 곳만 털면 경위가 명명백백히 밝혀질 텐데. '검찰 신디케이트'의 셀프 방탄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9일 국민통합위원회 초청 오찬에서도 "모든 분야서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법과 원칙'은 노동자나 야권 인사들에만 적용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한동훈 카드' 언제 쓰일까
자못 의미심장하다. "당권 주자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 총선을 이끌기엔 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구경북중견언론인모임 '아시아포럼21' 초청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주 원내대표는 "수도권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하고 MZ세대에 호소력이 강하며 공천에 잡음이 없어야 한다"는 차기 당 대표의 적합성도 제시했다. 발언의 맥락을 짚어 의역해봤다. "이미 패를 깐 카드는 다들 고만고만하다. 히든카드를 써야 하지 않겠나".여권의 히든카드? 아마도 한동훈 장관 아닐까. 수도권 인지도, MZ세대 소구력이란 요건에도 엔간히 부합한다. 호사가들은 지난주의 윤석열 대통령과 주호영 원내대표 독대를 주목한다. 이 자리에서 차기 당 대표감에 대해 교감했을 것이란 판단이다.하지만 7일 당사자와 윤핵관이 선을 그으면서 '한동훈 차출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지금은 법무부 장관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뿐"(한동훈), "윤 대통령은 그런 생각하지 않을 것"(장제원), "차출론은 극히 일부 주장"(권성동). 주호영 원내대표도 한발 물러섰다. "특정인 염두에 둔 것 아니다. 일반론적 조건 얘기했을 뿐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한 수 거들었다. "MZ세대와 수도권 지지받는 후보 나밖에 더 있나".윤석열 대통령 복심(腹心) 속의 차기 당 대표는 일단 '친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송광수 검찰총장 기용,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이 어떤 결과로 치달았는지를 몸소 터득한 윤 대통령 아닌가. 그 경험칙이 한동훈과 이상민을 실세 장관으로 중용한 배경이다. 2024 총선 공천권을 쥔 국민의힘 대표로 '비윤'이 등극한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가장 배척하는 시나리오다. '비윤 불가론'이 점차 힘을 얻는 이유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윤 대통령에게 전당대회와 총선은 당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려면 공천권을 오롯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동훈 대표 체제라면 그게 가능해진다.때맞춰 복선(伏線)이 깔린다. 친윤계 공부 모임 '국민공감'이 7일 출범했고, 전당대회 룰 개정도 슬슬 군불이 지펴진다. '국민공감'은 수적으로나 뒷배로 보나 당내 최강 파워그룹이다. 친윤 대오(隊伍)는 더 끈끈하고 강해질 게 자명하다. 전대 룰도 당원 투표 90%, 국민여론 10%로 조정될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대 룰 변경에 대해 당원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당원 의견? 결론은 뻔할 뻔 자다. 전대 룰 개정하고 '국민공감'이 득세하면 '친윤' 아니곤 대표에 오를 재간이 없다.하지만 한동훈 대표 체제가 총선 승리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중도 확장성엔 의문부호가 달린다. 윤핵관에 대한 국민정서가 호의적이지 않고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게 변수다. 한 장관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보수층엔 열광하는 찐팬이 많지만 진보층에선 비호감도가 높다. '윤석열 따까리'라 조롱하고 가발 쓴다는 낭설을 퍼뜨린다. 당내 비윤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2말3초 전당대회는 '정치인 한동훈'으로 변신하기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한동훈 장관이 참신한 재목이지만 경험 없이 당을 이끈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진단했다.한동훈 장관의 총선 출마는 확고부동하다. 하지만 지역구 출마만으론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 '더 큰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게 한동훈 조기 등판론의 진원(震源)이다. 대선 지지율 10%, 보수 후보 1위는 한 장관의 자산이다. 여권은 '한동훈 카드'를 언제 내밀까. 흥미로운 이슈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황색 정치' vs '좁쌀 정치'
"ㅇㅇㅇ이도 왔어?" "응, 첼로 반주로 '동백아가씨' 불렀어" "미친~". 한 달여 정치판을 달군 '청담동 술판' 해프닝은 한 여성 첼리스트가 꾸민 신파였다. 거짓이 들통난 뒤 공개된 남자친구의 멘트는 녹취록이 전부 허구라는 사실을 응축한다. "야, 이 뻥쟁아."문제는 공당(公黨)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거짓말에 올라탔다는 거다. 김의겸 의원은 통화 녹취록 폭로에만 급급했을 뿐 진위 확인엔 소홀했다. 정권의 1인자와 1호 실세가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다? 그것도 김앤장 변호사들과 어울려. 민주당은 "제2의 국정농단"이라며 판을 키울 기세였다. 하지만 허접한 폭로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의혹 제기가 아니라 거짓말 중계"를 한 셈이다.블랙 코미디 '청담동 술판' 사건은 좀스러워진 여의도 정치의 민낯을 투영한다. '황색 저널리즘'이란 말을 원용하면 소위 '황색 정치'다. 관음증을 자극하는 '황색 정치'는 대개 황당한 결말로 귀결된다. '빈곤 포르노' 공방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포르노' 대목에만 매몰했고, 김건희 여사는 14살이나 된 아이를 안고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를 했다. 오버한 거다. 하지만 지엽적 사안에 집착한 장경태 의원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조명 설치 여부가 뭔 대수인가. 윤희숙 전 의원이 제대로 짚었다. "우리 정치판이 온통 '선데이 서울' 같은 느낌"이라고. '선데이 서울'은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성인용 주간 잡지다.민주당이 '황색 정치'로 헛발질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좁쌀 정치'로 점수를 까먹었다. 슬리퍼와 팔짱은 갈등의 본령이 아니다. 기자가 언성을 좀 높였다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한다? 쪼잔하고 감정적 대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김영삼 전 대통령 7주기를 맞아 국립현충원에서 YS 묘소를 참배하고 "거산의 큰 정치를 되새길 때"라는 방문록을 남겼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행보는 '큰 정치'보단 '협량 정치'에 가깝다. 지난달 25일 여당 지도부를 한남동 관저로 초대했고, 22일엔 '윤핵관' 4인방을 부부동반으로 불러 만찬을 가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은 기피하면서. "친한 사람 불러다가 밥 먹는 거 동네 계모임 회장도 그렇게는 안 한다."(박용진 민주당 의원) "윤 대통령이 이재명 인간 자체가 싫어 안 만난다고 들었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필벌(必罰)의 칼날도 내 편에겐 무디다. 여당 내에서 이상민 장관 경질론이 불거지자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 같은 소리를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 장관의 든든한 뒷배를 눈치챘던 걸까. 특별수사본부의 행안부 압수수색도 장관 집무실은 예외였다. 158명이 생명을 잃었는데 책임지는 고위층이 없다? 언어도단이다. 왜 공무원 노조원 83%가 이상민 장관 파면에 찬성했을까.여야의 '적대적 대치'는 계속된다. 정치 시계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예산안 처리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마저 넘길 공산이 크다. '거짓공갈당' '패륜 예산' 따위의 독기 서린 말싸움만 이어진다. 국민의 피로감도 쌓여간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64%)과 민주당(59%)의 비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권력구조 개편, 지방분권 개헌, 지역주의 완화 같은 '거시 정치' 논의는 실종됐다. 오직 선거를 겨냥한 정치공학에만 천착한다. 경제에 비유하자면 미시 현안에 집착해 정작 중요한 물가, 환율, 성장률 같은 거시 경제를 팽개치는 꼴이다. 상대를 흠집 내려는 '황색 정치', 관용 없는 '좁쌀 정치'론 표심(票心)을 얻지 못한다. 좀스러운 정치에 감응(感應)할 국민은 없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핵무기의 절대방패
북한이 불꽃놀이 하듯 미사일을 쏘아 댄다. 지난 18일엔 미국 본토 사정(射程)이 가능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날렸다. 대북 확장억제 논란도 분출한다.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적 핵무장론이 핵심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좀 더 현실적이긴 하나 주한미군이 운용한다. 독자 핵무장은 '핵 독립'이란 점에서 소구력이 높다. 북한이 핵 무력을 행사할 때 미국이 자국의 위험을 무릅쓰고 핵우산을 확실히 펼쳐줄지가 핵무장론의 출발점이다. 이제 북은 노골적으로 '핵 무력 본색'을 드러낸다. 아예 핵 무력 사용을 법제화함으로써 적의 핵 공격 징후만으로도 선제공격할 빌미를 만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먼저 핵을 포기 않겠다? 미국이 비핵화하면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놓고 '북한 비핵화 불가'를 언명한 것이다. 이런데도 우리만 '한반도 비핵화' 허상을 좇는 게 현실적 판단일까.핵이 북의 자위용을 넘어 한국을 겨냥하는 파괴적 도구로 진화했다면 우리도 당연히 대응할 방패를 가져야 한다. 한데 방패가 마땅찮다. 스텔스 전투기? 전략폭격기? 미사일 방어망? 어떤 첨단전략자산도 어떤 방공망도 핵을 완벽히 제어할 순 없다. 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대량응징보복의 '3축 체계' 역시 절대방패는 아니다. 핵의 절대방패는 오직 핵뿐이다.핵의 전쟁 억지 능력은 이미 실증되지 않았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1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2차 대전 종식 후엔 80년 가까이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왜일까. 군사학자들은 핵무기의 전쟁 억지력 때문이라는데 동의한다. 핵전쟁은 공멸이니까.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핵 보유국이었으나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에 안전과 주권 보장을 약속받고 핵탄두를 모두 러시아에 넘겼다. 이른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다. 그런데 어찌 됐나. 우크라이나가 대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러시아가 침공했을까. 한반도 주변 정세도 야릇하다. 일본의 '핵 보유 본능'이 꿈틀거린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 '비핵 3원칙'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한데 일본이 최근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혼합한 산화물연료(MOX)를 프랑스에서 대량 수입했다. 때맞춰 일본 정계에선 '비핵 3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은 '핵 근육질'을 으쓱댄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16일 개막한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연설에서 "강대한 전략 위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핵 운반수단을 확장하고 핵탄두를 증강하겠다는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다.휴지조각이 된 '부다페스트 각서'는 씁쓸한 학습효과를 남긴다.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겹쳐진다. 북한이 한국에 핵 공격을 하면 미국이 선선히 핵우산을 펼쳐줄까. 필자는 가능성을 50% 정도로 판단한다. 나머지 50%의 공백은? 우리가 스스로 채울 수밖에. 이 대목에서 원용해야 할 철언(哲言)이 있다. 미국의 반대와 독일의 견제를 뿌리치고 기어이 프랑스를 핵보유국 반열에 올린 드골의 어록이다. "미국이 파리를 지키려고 뉴욕을 포기할까."(1957년)독자 핵무장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이에 따른 유엔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경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형극의 길이다. 섣불리 핵무장을 실행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북의 핵 위협을 막을 절대방패는 핵뿐이니…. 우리의 딜레마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선택적 자유, 선택적 문책
#"언론 탄압" 외신 부정적 보도대통령실의 MBC 전용기 탑승 배제는 휘발성이 강했다. 언론계와 정치권이 언론 탄압 논쟁으로 들썩였다. 외신의 관심도 비상했다. 논조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트럼프조차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를 배제하지 않았다"(워싱턴 포스트), "전용기 탑승 거부는 언론 탄압의 한 형태"(CNN), "싫어하는 방송 취재진을 해외 순방에서 배제하는 것이 윤 대통령이 말한 글로벌 이미지인가"(BBC), "북한을 닮았다"(NK뉴스).윤석열 대통령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국익을 위한 해외순방"이라고 답했다.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MBC를 배제했다는 은유법으로 갈음한 셈이다. 기실 MBC는 맨 먼저 보도한 죄밖에 없다. 모든 언론이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쓰지 않았나. 그런데도 MBC에만 '허위 보도' 재갈을 물리고 면박했다. 국익 훼손? 오히려 MBC 취재진에 대한 전용기 탑승 불허나 대통령의 욕설이 국격과 국익을 훼손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대통령실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 현장을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았다. 명백한 취재 제한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자유'를 언급했다. 유엔 총회 연설서도 21번씩이나 '자유'를 읊었다. 그런데 웬걸. 정작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굴레를 씌웠다. 자유 전도사답지 않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자유란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했다. 오웰이 직시한 자유는 윤 대통령의 자유와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대통령이 반복해 외친 자유의 실체가 궁금하다. 혹시 취재 거부의 자유?#"당이 장관 한 명도 방어 못 하나"윤 대통령이 "당(국민의힘)이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나. 장관 한 명도 방어 못 하나"며 짜증을 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두호(斗護)하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때맞춰 추임새를 뿜어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꾸라는 건 후진적이다." 항간에 나도는 '경찰 독박' 복선(伏線)이 허무맹랑한 뜬소문이 아니라는 증좌다.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 대응과 안전 정책의 총괄 조정자이다. 경찰과 소방도 행안부 소속이다. 이태원 참사에 직접 책임이 있는 주무부서다. 경찰을 강하게 질책한 대통령이 경찰을 지휘하는 행안부 장관을 감싼다? 이율배반이다. 대통령 최측근이란 이유만으로 문책에서 제외한다? 뜨악하고 용렬하다. 국민정서에도 배치된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 70%가 "정부 수습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꼬리 자르기' 우려가 투영된 결과다. 국가 안전망 부실로 158명이 생명을 잃었는데 책임지는 고관대작이 없다? 이게 민주공화국에서 가당한 일인가. 이 와중에 이상민 장관은 "낸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싶지 않겠느냐"며 염장을 질렀다. 폼 나게? 진짜 웃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평소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을 강조했다. 한데 막상 사건이 터지니 공식 사과조차 인색했다. 분향소만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The buck stops here.' 트루먼 대통령의 어록이다. 트루먼은 이 문구를 적은 팻말을 집무실 책상 위에 뒀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지겠다니. 국정 최고책임자의 무한책임 의지가 오롯이 느껴진다. 이태원 참사는 누구 책임이 가장 클까. 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어긋난 추모
#'한국형 능상능하'의 실패 5년마다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차기 지도부 인선이다. 어김없이 칠상팔하(七上八下)의 불문율이 적용됐다. 68세 이상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정치국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는 의미다. 장쩌민 집권 때 만들어졌으나 지난달 열린 20차 당 대회에선 이 원칙이 깨졌다. 대신 내세운 잣대가 능상능하(能上能下)다. 나이에 관계 없이 능력만 있으면 가능하단 뜻이다. 한데 능력은 정량평가가 어렵다. 시진핑 3기 중국 최고 지도부는 시 주석 친위부대로 채워졌다. '시진핑 라인'이면 누구든 능력자로 둔갑한 까닭이다.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은 다양성을 훼손했다. 19명 중 16명이 남성, 10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호남 출신은 1명뿐이었다. 미국의 바이든 1기 내각은 여성이 46%이며 인종별로는 백인 50%, 흑인 23%, 라틴계 15%, 아시아계 11%다. 윤 정부는 다양성보단 능력주의를 표방했다. 이를테면 '한국형 능상능하'다. 그런데 겪어보니 능력도 꽝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판사 출신의 이 장관은 '행정'과 '안전' 업무 경험이 전무하다. 부적격자가 행안부 장관 자리를 꿰찼으니 재난안전 시스템인들 온전히 작동할 리 없다. 거기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면피성 발언까지. 공감능력도 빵점이다.#현실인식 동떨어진 난독증정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권고했다. 희생자란 표현이 그리 못마땅했나. 중대본은 사망자가 중립적 용어라고 해명했다. 중립적 용어? 생뚱맞은 구실이다. 156명이 생명을 잃은 대형 참사를 사고라고? 현실인식과 동떨어진 난독증이다. 행안부 간부의 비굴한 부연(敷衍)이 더 처연했다. 이태원이 관광지여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랬다나.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패용 리본에 근조 글씨를 못 쓰게 한 것 역시 블랙 코미디다.남 탓과 막말 고질도 다시 도졌다. "이태원 참사는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 세월호 후 안전 시스템 마련하지 않고 뭐 했나."(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부모도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 못 막아놓고"(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 "구청이 할 일은 다했다"(박희영 용산구청장) "엄청난 기회다.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해야지 세계가 우리를 돌아본다"(천공 스승) "웃기고 있네"(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국감 중 메모).#윤 대통령의 오버이태원 참사 후 윤석열 대통령은 여섯 차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영국에서의 조문 불발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SNS엔 천공 스승의 조언을 실천한다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조문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나 상식적이진 않다. 외려 그로테스크하다. 추모의 크기와 깊이는 조문 횟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추모한다면 막말한 자를 질책하고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해임하는 게 도리다.국민 73%가 "이태원 참사는 정부 책임"이라는 여론이다. 외신은 "정부 관리 소홀이 빚은 인재"로 규정했다. 정부의 허술한 안전망과 경찰의 총체적 부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추궁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고? 역대급 궤변이다. 추모하면 추궁은 못 하나. 낱낱이 추궁해 진상을 규명하고 엄혹히 문책해야 한다. 그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그나마 홀연히 스러진 청춘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다.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양당 독과점 정치 끝내자
정권이 바뀐 후 첫 번째 국정감사는 비이성의 난장(亂場)이었다. 폭언과 막말, 고성이 난무했다. "혀 깨물고 죽지 뭐 하러 그런 짓 하냐" "니(너)나 가만히 계세요" "뻘짓거리" "버르장머리가 없잖아". 선량들의 입이 오염된 탓일까.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망치같이 둔탁하고 자객의 칼날처럼 섬뜩하다.'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공동저자 애쓰모글루 MIT 교수는 "한국의 진짜 문제는 정치 분열"이라고 진단했다. 정곡을 찔렀다. 애쓰모글루 교수에 화답하듯 작금의 우리 정치는 '분열의 끝판왕'을 시전한다. 초유의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이 여야 극한대립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정치는 절제와 조율의 예술이라 했거늘 국민의힘과 민주당엔 싸움의 기술만 축적되는 형국이다. 협상도 밀당도 없는 '강 대 강' 정쟁의 연속이다. 독일의 최장수 총리(16년 재임)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 노하우는 '협상·타협·인내'였다.고(故)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한 게 27년 전인데 정치는 굳건히 '4류 본색'을 고수한다. 드라마서 유행하는 타임 슬립이 여의도에도 번진 건가. 메타버스, 휴머노이드 시대에 유독 정치판만 1980년대식 구각 행색이 물씬하다. 보스정치, 계파정치, 정파적 이익 매몰, 폐쇄적 정당 운영은 여야가 다르지 않다. 이태원 참사도 정략적 잣대로만 재단한다.정당의 사당화도 심각하다. 민주당의 '이재명 방탄'은 공당의 준거를 한참 벗어난다. 국민의힘은 "선을 넘지 말라"며 법원까지 겁박했다. 오만의 극치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가 공천권을 전횡하는 관행도 독재시대의 유산 아닌가. 신조어 '윤위병'(윤석열+홍위병)은 공천을 향한 충성경쟁이 빚은 신파다.'4류 정치'를 업그레이드할 방도는 없을까. 우선 국힘·민주 양당 독과점 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카카오의 독과점이 쓰나미급 민폐를 끼쳤듯 우린 거대 양당의 독선과 몽니와 아집을 목도하고 있다. 양당체제에선 완충지대가 없다. 조정자,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제3당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중소정당, 지역정당을 키워야 한다. 현행 정당법은 야비하달 만큼 자본주의적이다. 부익부 빈익빈, 약육강식의 내용이 그득하다. 신생정당이 착근하기 어려운 구조다. 5개 지역에 시·도당 사무실을 두도록 해 전국정당을 못 박았다. 지역정당 탄생은 아예 불가능하다. 정당법 개정이 화급하다.정치자금법도 마찬가지다. 법을 고쳐 소수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늘려야 한다. 국회법을 개정해 원내 교섭단체 기준을 의석 20석에서 10석으로 완화하는 게 옳다. 공직선거법 개정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를 현행 6개월에서 대폭 늘려야 마땅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다당제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정당은 디지털 환경에 걸맞은 개방정당·민주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스템 공천의 제도화도 시급하다.정치인의 광대무변한 파급력을 감안하면 홍익인간형이 바람직한 정치인상이다. 한데 여의도엔 후안무치형, 시정잡배형이 득시글하다. 양당 카르텔과 보스정치가 낳은 나쁜 결과다. 일찌감치 시스템 공천이 정착됐다면 국회는 훨씬 양질의 의원들로 채워졌을 개연성이 크다.'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이다. 인생이 통속할진대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야 오죽하랴. 하지만 통속한 정치는 민생을 피폐하게 한다. 반드시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무능의 죗값은 쓰다
#원로원이 유능한 황제 옹립로마제국의 전성기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이른바 5현제(賢帝)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서기 96년에서 180년 사이다. 5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현세에도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5현제 재위 때 '팍스 로마나' 시대가 열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5현제는 모두 세습 황제가 아니었다. 원로원이 중심이 돼 당대에 가장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했다.#대처 흉내 냈던 트러스 전 총리영국이 지난달 23일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계획을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세율(20%→19%)과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45%→40%)을 인하한다는 게 골자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고조되고 영란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 경제의 ABC를 뭉갠 해괴한 엇박자 정책이다. 재정 부담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과 이에 따른 시중 유동성 증가를 예상하지 못했나.최악의 뻘짓에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영국 채권가격이 급락했다. 국제신용평가사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들끓는 여론에 감세계획을 철회했지만 추락한 트러스 내각의 지지율은 요지부동. 트러스는 취임 44일 만에 퇴장하며 최단기 총리의 불명예를 떠안았다. 물빛 모르고 대처 흉내를 낸 트러스표(標) '폭망 경제정책'의 전말이다.#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재앙"노무현 정부의 이상은 원대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다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해 했던 말이다. 한데 문 정부 5년을 반추해 보면 아마추어 정부로 폄훼됐던 '노무현 정부 시즌2'다. 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은 그대로 빼다 박았다. 어설픈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린 것, 뒤늦게 공급대책을 마련한 것, 실패로 귀결된 것까지. 부동산값이 잡히지 않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안정은 정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에 대한 겁박이자 무능 고백서였다.#대통령제 지지율 무관 임기 보장 지도자의 능력이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유능'은 번영의 젖과 꿀을 양산했고 '무능'은 경제파탄과 민폐로 귀결됐다. 한데 지도자의 무능에 대한 대응방식은 내각제와 대통령제가 판이하다. 내각제는 총리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물러나야 한다. 트러스도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44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일본은 총리 지지율이 30% 안팎이면 '위험 수역', 20% 안팎이면 '퇴진 수역'이다. 하지만 대통령제는 지지율이 꼬꾸라져도, 정책 실패가 잇따라도 임기가 보장된다. 대통령제의 맹점이다. 예컨대 무능했던 문재인 정부가 2년 단명으로 끝났다면 부동산 폭등이 없었을지 모른다. 무능의 죗값은 쓰다. 그 덤터기는 고스란히 국민이 덮어쓴다. 지금은 미증유의 복합경제위기 상황. 거기다 시민사회까지 찢어졌다. 한쪽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또 한쪽은 '문재인·이재명 구속'을 압박한다.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움)이 국면 타개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내부총질 할 자유는 없나
'자유'를 언설하려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비켜가긴 어렵다. 밀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을 비판하며 소수자를 억압하는 '다수의 횡포'를 특히 경계했다. 자유의 최상위에 '개인의 자유'를 올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한 책임도 강조했다. 밀은 "아무리 그릇된 견해라 할지라도 그 견해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비판적 의견을 형성함으로써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60년 전의 저술이 극단적 진영논리와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작금의 상황에 절묘하게 이입된다.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헌사'란 상찬이 아깝지 않다. '자유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함께 서양 정치철학의 3대 필독서로 꼽힌다.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명저 '사회계약론'도 자유 해독서(解讀書)에 속한다.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난다'는 첫 구절이 책의 백미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고 말한 정치학자 토크빌의 자유 논지(論旨)는 짧지만 강렬하다. 신자유주의 전도사이자 통화주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랄 만큼 시장의 자유에 집착했다.'자유'라면 윤석열 대통령도 한가락 하는, 자유 예찬론자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언급했고 유엔 총회 연설서도 21번씩이나 '자유'를 읊었다. 마치 자유 세례식이라도 하듯. 우리 국민과 세계 시민에게 자유의 가치의 재인식을 주문했으나 자유가 촉진할 번영과 평화, 양극화 해소, 기술혁신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진 못했다. 하긴 자유가 내포한 광막한 행간을 굳이 현학적 수사(修辭)로 채울 이유는 없다. 그 여백이 차라리 리터러시와 상상력을 자극할지 모른다.대통령이 외쳤던 자유가 파토스(pathos)면 어떠랴. 자유 전도사 윤 대통령 덕분에 시나브로 '자유'는 대한민국 국정철학의 대표 화두로 자리매김할 조짐이다. 어느새 민주·평등·정의·공정·소득·분배 따위의 상위 개념으로 정립되는 모양새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규제개혁이나 금산분리 완화도 경제적 자유의 발현 아닌가. 그런데 묘하다. 존 스튜어트 밀이 주창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의 자유는 외려 역주행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카툰 '윤석열차' 소동도 그 연장 선상이다. 정치적 편향을 문제 삼아 문체부가 경고를 하고 심사과정까지 들여다보며 윽박질렀다. 웃자고 한 풍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다. 대통령이 그토록 자유 세례를 퍼부었건만.내부총질 혐의가 씌워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어찌 됐나. '6개월+1년' 당원권 정지란 중징계를 받지 않았나. 이준석 추가 징계에 대해 허은아 의원은 "보수의 자유가 무너졌다"며 탄식했다. 내부총질? 누구에겐 내부총질이지만 누구에겐 쓴소리다. 유신독재 시대의 언어 '일사불란(一絲不亂)'을 바라는가. 민주정당이라면 내부총질 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 '양두구육'이 언제부터 금기어가 됐나. 소수 의견을 '이단' 취급하며 조리돌림 하는 풍조는 온당치 않다. 지록위마 무리수의 유치찬란한 '윤비어천가'는 자유의 소리가 아니다. 유승민 전 의원의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코미디 중단하라"는 일갈이 차라리 자유에 부합한다.윤 대통령이 오지랖 넓게 자유를 강조했다지만 '주가조작의 자유'까지 포함했을 리 없고, 국민의힘 당명이 자유당으로 바뀌는 생뚱맞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 그러니 상식적인 자유가 옹위되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릴 자유면 족하지 않겠는가.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닥공'과 공피고아
'닥공(닥치고 공격)'의 원조는 프로축구 전북이다. 전북은 2009년 사상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원동력이 '닥공'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7번 정상에 올랐는데 2015년(57골)을 제외하곤 6회 모두 리그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2018년엔 무려 75골을 폭발시켰다.위기십결(圍棋十訣)은 당나라 현종 때 바둑 고수 왕적신이 정리한 열 가지 바둑 요결(要訣)이다. 부득탐승(不得貪勝·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면 이루지 못한다), 공피고아(攻彼顧我·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펴라), 사소취대(捨小就大·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같은 금쪽같은 경구가 담겼다. 반상(盤上)의 세계에선 부득탐승을 위기십결의 으뜸으로 치지만 공피고아도 그에 못잖다.전북의 7번 우승은 '닥공'만의 결실이 아니다.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됐기에 '우승 군단'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다. 공피고아에 충실한 '닥공'이었다는 의미다. 요즘 정부·여당의 행보도 '닥공'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비속어 발언 대응이 그랬다. 확전을 택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자막을 조작했다며 MBC를 고발하고, '이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응수했다. 한데 엠브레인퍼블릭 등의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64%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을 '외교적 참사'로 본 반면, '언론의 왜곡'이란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선 국민 63%가 MBC 사태를 '부당한 언론탄압'으로 판단했다. 또 '날리면'보다 '바이든'으로 들었다는 국민이 훨씬 많았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않은 '닥공'의 황망한 결과다. 대통령이 사과했으면 일단락됐을 일이다. 침잠했어야 할 '×× 이슈'는 국정감사에서 재점화했다. 논란이 이어질수록 누가 더 쪽팔릴까.감사원 역시 '닥공' 스타일이다. 감사원의 타깃은 문재인 정부 정책 과오 들추기와 친문 기관장 쫓아내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권 전위부대를 자처하며 온 공공기관을 들쑤시고 있으나 성과는 신통찮은 모양이다. 요란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감사는 감사기간을 두 번씩이나 연장하고도 건진 게 없다니. 표적감사 티를 너무 내는 데다 사정역량도 정교하지 못하다. 하수(下手) 행색이 물씬하다. 유병호 사무총장이 대통령실과 내통하는 정황이 언론에 포착되며 망신살까지 뻗쳤다. 이러고도 독립된 헌법기관? 흑역사 이력도 만만찮다. 4차례의 4대강 사업 감사보고서는 정권 입맛에 따라 내용이 오락가락했다.집권세력의 국정 추동 2대 동력은 지지율과 여당 의석이다. 애꿎게도 윤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은 고작 20%대를 맴돌고 국회에선 169석의 민주당이 눈을 부라린다. 하니 국면전환이 필요한 상황. 그래서 '닥공'을 택했을까. 하지만 공피고아에 기반하지 않은 '닥공'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중도층이 일거에 등을 돌릴 수 있어서다. 23전 23승.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전과(戰果)다. 전승의 이면엔 아주 간단한 비책이 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책'이란 훈계와 맥락이 관통한다.정부·여당의 '닥공'은 좀 어설프다. 승패 불문하고 마구 들이대는 건 아닌지. 혹시 못 먹어도 고(Go)? 지지율과 국회 의석이 변변찮은 윤 정부다. '닥공'보단 공피고아가 제격이다. 권력은 절제할수록 무게감이 커진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절제를 덕목으로 여기는 대목이 나온다.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 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보수·진보 유전자 섞어 '중용적 정책' 펼쳐라
흔히 중용(中庸)은 막연히 '중간' '중립' 정도의 말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유학(儒學)에서의 중용엔 좀 더 내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중용을 간명하게 풀이하면 '언제나 도리에 딱 들어맞게 행한다'는 뜻이다. 중용의 중(中)은 도리에 맞게 희로애락을 행할 마음이 준비된 상태를 이르고, 용(庸)은 중의 자세를 항구 불변하게 유지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 49편 중 31편이었으나 송나라 때 주자가 성리학을 집대성하면서 당당히 사서(四書)의 반열에 올랐다.필자는 '사마천의 慧眼, 文 정부의 愚案'(영남일보 2020년 10월16일자)이란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 정책을 비판했다. '산업혁명에 앞장선 국가는 예외 없이 세계사의 주역이 됐고 그 과정에서 개방과 혁신은 불가결한 요소였다. 우리도 '상시적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웬만한 건 그냥 시장기능에 맡기는 게 낫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한다'(영남일보 2011년 8월1일자)는 칼럼을 썼다. '경제의 글로벌화 진전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과 주주 이윤 극대화로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국가나 지역사회로 환원되지 않고 있다. 도를 넘은 시장주의는 승자 독식, 경제 양극화를 풀무질한다.'진보 정권에선 반시장 정책을 도마 위에 올렸고, 보수 정권 땐 과도한 시장친화 정책을 비판했다. 진보든 보수든 정부 정책이 한쪽으로 경도됐다는 의미다. '중용(中庸)'이 결여됐다는 뜻이다. 수요 억제책에만 매달렸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정책을 외면하면서 실패했다. '다주택자 징벌주의' 같은 경직된 세제도 아쉬웠다. 윤석열 정부에선 확연히 달라졌다. 종부세 과표를 주택 수가 아닌 가격 기준으로 조정하고 재산세도 완화했다.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고 근로자의 소득세 부담도 덜어준다. 하지만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굳이 25%에서 22%로 낮춰야 하는지 의문이다. 광범위한 감면에 따른 실효세율을 살펴봤는지 궁금하다. 부동산 보유세를 일거에 허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MB정부의 '부자감세 시즌2'가 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친족 범위를 사촌 이내로 축소한다는데 재벌의 오랜 병폐인 내부거래가 확산될 소지가 다분하다. 4대강 정책 유턴이나 국공유지 매각도 신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을 급변침하는 건 금물이다. 세월호도 급변침하다 침몰하지 않았나. 완곡하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진보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은 신학이 아니다"고 했다. 보수 정권이 새겨야 할 고언이다. 새뮤얼슨의 말처럼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필자는 칼럼을 쓰면서 늘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의 정책을 믹싱하면 최적화된 답안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부 정책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중용적 정책'은 그냥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 되는 정책이 아니다. 중용의 심오한 의미가 '도리에 맞는 언행'이듯 중용적 정책은 현실과 환경에 최적화된 정책을 일컫는다.부동산 정책이라면 징벌적 과세는 하지 않되 불로소득과 투기엔 물샐 틈 없는 방호벽을 치는 게 중용에 부합한다. 혼합과 융합이 대세인 하이브리드, 퓨전시대다. 유전자도 잡종이 더 강하다. 정책도 진보와 보수 유전자를 섞어야 효율적으로 진화한다. "보드라인에 걸치는 볼 같은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투수의 전설'들이 말하는 황금률이다. 정부 정책도 '볼 같은 스트라이크'가 최상이다.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누가 윤 정부의 X맨인가
뜬금없는 '이 ××들' 한 마디가 지각을 흔들었다. 정치권은 블랙홀에 빠졌고 언론도 이 비속어로 도배했다. 외신은 '××들'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블룸버그와 워싱턴 포스트는 'idiots'를 썼다. 원어보다 다소 강도가 낮고 뉘앙스가 살짝 다르다. AFP와 CNN은 'these fxxxers'로 표현했다. '이 ××들'보다 더 원색적이다. 진짜 욕설 '×××'이 이에 해당한다.야당이 '빈손 순방'과 '비속어 사용'을 세트로 묶어 공세의 고삐를 죄자 대통령실과 여당이 방어전선을 구축했다. 한데 주군의 실책을 윤색하려는 성심은 가상하나 도무지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화만 키우는 형국이다.김은혜 홍보수석은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는 원문을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으로 수정했다. 수정문에선 '바이든'이란 주어가 사라지고 '쪽팔린다'는 술어만 남는다. 누구 '쪽'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쪽은 얼굴의 속어다. 정리하면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내가)(한국이) 쪽팔려서 어떡하나"가 된다. 음성 분석가까지 동원했지만 진실게임은 오리무중이다. 김 수석의 방어전략은 너무 굼떴다. 처음엔 "사적 발언"이라고 해명했다가 10시간이 지나서야 내용을 수정했다. 이미 온 세상에 원문대로 알려진 뒤였다.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한술 더 뜬다. "이 ××들"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라고 우긴다. 김은혜 수석이 "이 ××들"이라고 확인했는데도. 국민을 얼마나 낮잡아 봤으면 이따위 우격다짐을 벌일까. 김학의 동영상을 판별 불가로 판단한 검찰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니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장본인 진나라 조고의 언행에 더 부합한다. 충정은 눈물겨우나 도를 넘으면 되레 주군에 누를 끼친다. 이들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X맨이 아닐까 싶다. 차라리 홍준표 대구시장이 제시한 해법이 명쾌하다.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 정면 돌파하라.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하라."'외교 참사'라는 비판도 인정해야 한다. 한미 48초 환담과 한일 30분 약식회담이 우리의 빈곤한 외교력을 웅변한다. 기시다 총리를 찾아가 애걸복걸하다시피 회담을 해야 할 이유가 뭔가. 그 순간 한일은 갑을 관계가 되고 만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한일 간 난맥이 해소되고 새 장이 열리진 않는다. 성과에 집착하면 나쁜 그림만 남는다.섣부른 정상회담 발표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였다. 김태효 대통령실 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미국과 일본이 흔쾌히 정상회담에 응했다"고 밝혔다. 양국 공동발표 관례를 깼다. 일본이 한일정상회담을 꺼리는 배경을 간파하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30% 언저리까지 떨어져 보수층의 표심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일방적 발표라니. 기시다 총리가 격앙했다는 후문이다.바이든과는 기껏 48초 동안 환담해놓고는 '플랜 B'를 가동했다고 호들갑이다. 리셉션에서 두 번의 만남은 인사치레 정도였다. 통역 있는 48초는 사실상 24초다. 바이든 12초, 윤 대통령 12초다. 그 짧은 시간에 인플레 감축법 우려를 전하고 금융 안정화 협력, 대북 확장 억제까지 협의를 했다고? 외교 프로토콜의 혼돈이다. 물빛 모르는 외교라인 역시 윤 정부의 X맨으로 손색이 없다.참모들이 부실하다고 윤 대통령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X맨은 대통령 본인일지 모른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석열의 '운칠기삼'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이 저술한 '요재지이'란 단편소설집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백발이 성성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가 탄식한다. "변변치 못한 자들도 급제해 입신양명하거늘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는가." 급기야 선비는 옥황상제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 내기를 시킨다. 정의의 신이 석 잔, 운명의 신이 일곱 잔을 마시자 옥황상제는 세상사의 7푼이 운명의 장난에 따라 행해지되 3푼은 이치에 따라 행해짐을 선비에게 일러준다. 과연 세상은 '운칠기삼'의 원칙이 작동할까. 일본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운칠기삼'에 동의한다. 그는 '뛰는 놈 나는 놈 위에 운 좋은 놈 있다'는 저서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이 유효한 것처럼 운 있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편다. 정치인에겐 선거운이 절대적이다. 정치인의 명운이 오롯이 선거에 함몰되는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운발은 '운칠기삼'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대권 쟁취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박빙 판세의 긴장이 있었고 예고 없는 반전이 있었으나 승리의 여신은 윤석열 후보 편이었다. 김건희의 허위 이력 파문이 윤 후보 지지율을 까먹을 즈음 김혜경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지는 식이었다. 정치 입문 1년 만에 권좌에 등극했으니 거의 전인미답의 경지다. 이게 대운 없이 가능할까. 하지만 통치는 운발에만 의존할 수 없다. 비르투가 필요하다. 비르투는 마키아벨리의 용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또 다른 명저 '로마사 논고'에서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조명했다. 이탈리아어 비르투(virtu·덕)의 어원은 vir(남성)이다. 강한 남성의 힘 virtu는 덕(德)의 속성이다. 포르투나(fortun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으로 어원은 fortune(운)이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 즉 운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군주는 강력한 비르투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덕성·능력·결단력·용맹에 더해 심지어 사악함까지 비르투의 범주로 봤다. 윤 대통령은 포르투나에 비해 비르투가 약하다. 비르투의 핵심이랄 수 있는 덕과 능력이 아쉽다. 지인을 지나치게 편애하고 포용력이 부족하다. 검찰 출신을 중용했으며 '사적 채용' 논란을 야기했고 '내부 총질' 문자로 윤핵관·이준석 파동을 증폭했다. 극우 유튜버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하고 추석 선물을 보내 '통합 대통령' 이미지를 구겼다. 영빈관 신축 해프닝은 코미디에 가깝다. 하루 만에 뒤집으며 조령모개의 진수를 시전했다. 결정 과정도 묘연하다. 총리도 대통령실 수석들도 몰랐다니 말이다. 영국으로 날아간 윤 대통령은 조문 스케줄이 꼬여 야당의 입길에 올랐다. 대통령실의 사전 조율이 미숙했다는 방증이다. 한때 윤석열의 시그니처였던 '공정과 상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복합 경제위기를 무탈하게 극복해 낼지도 미지수다. 정치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을 겨냥한 검경과 감사원의 칼날이 표독하다.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 맞불로 반전을 노린다. 민생이 스며들 공간은 좁디좁다. 윤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줄곧 '자유'의 오지랖을 강조했다. 하지만 통합·협치·관용도 자유 못잖은 통치 언어다. '운칠기삼'이 선거엔 타당할 수 있겠다. 5년간 이어지는 국정 운영은 다르다. 운이 작동할 여지가 적으니 '운삼기칠'이 적절하다. 그러자면 부족한 비르투를 채워야 한다. 통치자로서의 도량을 넓히고 이념과 인재 등용의 경계를 허물며 사정정국을 지양해야 한다. 내치에도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논설위원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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