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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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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文의 몽상가 리더십, 미몽의 5년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 '정치 9단'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아포리즘이다. 국정운영도 다르지 않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업 프렌들리' 이명박 정부가 서생의 문제의식이 부족했다면 '노조 편향' 문재인 정부는 상인의 현실감각이 모자랐다. 문 정부의 현실감각 결여엔 문재인 대통령의 몽상가 리더십이 깔려 있다. # 현실과의 괴리감흔히 몽상가를 얘기할 때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를 원용한다. 그리그의 그 유명한 '솔베이그의 노래'도 '페르귄트 모음곡' 중 하나다. '페르귄트'가 없었다면 작곡가 그리그도 양명(揚名)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다. 취임 초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결심하고, 분배를 강조한 장하성 교수의 저서에 꽂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들 북한의 비핵화를 믿지 않는데도 계속 종전선언에 매달린 걸 봐도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랬지만 종전선언은 결코 북한 비핵화의 입구가 될 수 없다. 외려 북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할 빌미만 제공한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병행해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주엔 "김정은이 매우 솔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52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전력을 강화해온 북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의아하다. 미몽을 헤매는 건가. # 의뭉스러운 건가 눙치기 인가 부동산 실패에 대한 시각도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서울 강남 아파트가 5년간 두 배나 올랐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승폭이 작다"는 변명이 나올까. 3·9 대선을 두고선 "링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패배를 얘기 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의뭉스러운 건지 눙치기 인지 종잡을 수 없다. 선거법상 대통령은 링에 오를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윤석열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을 딱 한 명만 지목하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문 전 대통령을 꼽겠다. 부동산 폭등으로 서울 표심이 돌아선 게 민주당의 패인이어서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보다 토론을 더 잘 했고 정책능력도 더 어필했다. 높은 정권교체지수에 발목이 잡혔던 거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몽상의 발로로 여겨진다. 코로나19 발생 후 문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에만 이 말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런데 2022년 5월에도 여전히 터널의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탈원전 도그마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비중만 높여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탄소중립엔 에너지 환경기술이 필수다.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ESS(에너지 저장장치),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까진 원자력과 동행해야 한다. 더욱이 SMR(소형모듈원자로)은 원전 강국 한국의 미래 먹거리 아닌가. # 口頭禪 리더십문 전 대통령은 실천보다 말이 앞섰다.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국가 구현' '광화문 집무실 시대'란 대선 후보 때의 공약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취임사의 백미는 '내로남불'에 쓸려나갔다. "저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던 탕평 의지는 코드 인사에 매몰됐다. 취임 초 인천공항공사에서 호기롭게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되레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명으로 사상 처음 800만명을 돌파했고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비정규직 비중은 38.4%로 높아졌다. 이벤트 정치의 허망한 귀결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선하지만 무능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 '무능' 속엔 '허황하다'는 함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재임 기간은 미몽(迷夢)과 방만의 5년이었다. 부동산 폭등하고 국가부채는 급증했다. 대중·대북 굴종의 시간이기도 했다. 문득 떠오르는 경구가 있다. '국민 입장에선 사악해도 유능한 지도자가 차라리 낫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지론이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은근히 닮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검수완박'
지금 정치권엔 두 개의 블랙홀이 있다. 용산 블랙홀과 여의도 블랙홀, 즉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검수완박'이다. 두 현안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그런데도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시간에 쫓겨 밀어붙인 행태가 영락없는 데칼코마니다. '검수완박' 법안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공포해야 시행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로 넘어가면 대통령 거부권에 막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속도전은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의 '그로테스크한 신념'의 산물이다.둘 다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 55% 안팎의 국민이 반대한다. 공론화 과정을 뛰어넘은 것도 판박이다. 집무실 이전이나 '검수완박'은 국가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한 사안이다. 여론을 수렴하고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토론을 거쳐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게 순리다. 한데 집무실 이전은 윤 당선인의 일방통행에, '검수완박'은 민주당의 폭주에 절차적 정당성이 뭉개졌다. 공론화에 부칠 경우 여론의 벽에 막혀 추진동력이 떨어질 게 자명하다.졸속 추진엔 혼란이 따르기 마련. 대선 후보 시절 광화문 집무실 공약은 졸지에 용산 국방부 청사로 바뀌었고, 대통령 관저는 육참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급변침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은 공간이 넓고 입지와 전망이 탁월하다. 우리나라 공관 중 제일 멋진 곳을 윤 당선인 부부가 낙점한 거다. 이제 외교사절 초청 행사는 어디서 해야 하나. 공관을 둘러본 김건희 여사가 "저 나무는 베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데 '남산 뷰'를 가렸던 방해물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공관의 나무를 마음대로 솎아내겠다는 발상이 놀랍다.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치러야 할 기회비용도 만만찮다. 쪼개져 옮겨지는 국방부와 연쇄 이전의 합참이 감내해야 할 고충, 국가 지휘부와 군사 지휘부의 집결에 따른 안보 위험, 대통령 출퇴근으로 인한 시민불편 등 계량화할 수 없는 부담과 손실이 발생한다.'검수완박' 법안 역시 부실하고 어설프다. 위장탈당, 회기 쪼개기 등 온갖 꼼수 속에 국회 문턱을 넘은 '검수완박' 수정안은 누더기 법이 되고 말았다. 공직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아 권력형 비리를 두호했고, 경찰수사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을 차단해 약자 배려를 외면했다. 동일한 사건을 검찰과 경찰이 나눠 수사한다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중수청 설립은 오리무중이다.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만 1~2년이 필요한 국가 대사다. 영국은 3년 넘게 숙의하고 나서야 중대범죄수사청(SFO)을 설립했다. 어쭙잖은 속전속결이 어찌 후과가 없으랴. 여야의 공방과 대치는 덤으로 치러야 할 에너지 낭비다. 민주당의 어깃장도 생뚱맞다.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다시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호언했다. 집무실 이전 파장의 지속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검수완박' 논란 또한 단기간 내 침잠할 가능성은 제로다. 새 정부는 검경수사협의체를 구성해 '검수완박'에 맞불을 놓을 태세다. 대검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일부 외신은 윤 당선인을 '독자적인 사람'을 뜻하는 maverick으로 표현했다.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검찰총장 출신 이력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maverick은 독불장군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 강행과 내각 인선에서 이미 독불장군 기질을 발현했다. 임대차 3법에 이은 '검수완박' 폭주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웅변한다. 독불장군과 완력적 민주당의 동행은 가능할까. 윤석열 정부 5년이 순탄치 않을 듯하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검수완박' 뽀개기
요즘 언론을 달구는 핫한 사자성어가 있다. 여의도 블랙홀 '검수완박'이다.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던 국민의힘이 다시 이를 거부했고 민주당은 밀어붙이기에 들어갔다. 정치권이 온통 '검수완박' 심연에 빠진 형국이다. '검수완박' 법안은 입법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검수완박'을 둘러싼 논란은 가히 백가쟁명이다. 홍준표 의원도 일갈했다. "검수완박은 정치검찰의 자업자득이다." 홍 의원이 날린 직설(直說)의 행간엔 검찰 흑역사가 어른거린다. 제 식구 감싸기(김학의 수사), 과잉·별건·먼지떨이 수사(조국 가족 수사), 편파·부실 수사(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관련 수사) 등등….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정범과 상당한 연루성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검찰의 소환은 언감생심. 검건희는 대선 때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3·9 대선일 이전엔 응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윤석열 후보 시절에도 속수무책이었던 검찰이 영부인을 소환할 결기가 있겠나. 이제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거대 권력 앞에 쫄보가 되는 한국 검찰의 민낯이다.검찰의 주장대로 공소 유지는 수사한 검사가 하는 게 효율적이다. 월등한 수사능력도 인정한다. 경찰은 아직 족탈불급이다. 민주당은 검찰의 능력을 폄훼했지만. "한동훈 폰 비번도 풀지 못했으면서…"(김용민 의원). 70여 년 축적해온 검찰의 수사 역량과 노하우를 사장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검수완박' 후 중수청 신설 때까지의 수사 공백, 수사 총량 감소도 국민에게 이롭지 않다. 하지만 검찰의 흑역사 속에 까발려진 자의적(恣意的) 수사, 선택적 기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군부 정권 땐 육사가 권력의 산실이었다. 여당 원내총무·중앙정보부장 같은 권력 명당엔 어김없이 육사 출신이 포진했다. 양념 들어가듯 법조인이 섞여 있었다. 그 시절의 여당을 '육법당'이라 한 이유다. 문민정부에선 검찰이 '권력 공룡'으로 떴다.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직접 수사권, 영장 청구권, 기소권이란 갑옷을 입은 검찰은 무소불위였다.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는 검사의 재량을 한껏 고양했다. 공수처가 수사권·기소권을 갖지만 사실상 검찰 독점체제다. 검찰 견제하라고 만든 공수처는 지금까지 달랑 한 건 기소한 게 전부다. 등신이 따로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에도 검찰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검수완박' 역시 분권, 균형, 권력기관 간 견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검찰의 힘을 일정 부분 빼는 건 온당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폭주처럼 며칠 만에 후딱 해치울 일은 아니다. 국민여론을 수렴하며 내용을 더 정치(精緻)하게 다듬어야 한다. 제한적이나마 직접 수사권은 유지하는 게 옳다.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경찰 통제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일성·동일성을 이유로 보완수사권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 공직자·선거범죄를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셀프 보호막'을 친 정치권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회의원들은 이번에도 오랜 기간 축적한 입법 이기주의 내공을 발현했다. 민주당은 혹여 '검수완박'이면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안전할 거란 착각은 말기 바란다. 새로 생기는 중수청도 윤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장악할 것이고, 중수청은 특수부 출신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주도할 개연성이 크다. 더 신산(辛酸)한 시간이 올지 모른다. '검수완박'이든 아니든 완벽한 제도,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 정부의 '과거회귀형' 내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나의 최애 클래식 탑10 안에 드는 곡이다. 아마도 1천번은 족히 들었을 법 하다. 같은 '황제'라도 연주자에 따라 음감이 다르다. '황제'에 관한한 환상의 조합은 크리스티안 짐머만과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이 아닐까 싶다. 필자도 주로 이들의 협연 동영상을 보며 감상한다. 이 음반이 녹음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 한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전원 백인 남성이라는 게 놀랍다. 2022년의 뉴욕 필하모닉 구성원을 보자. 흑인·히스패닉·아시아인이 어우러져 컬러풀한데다 현악기 파트는 여성 천지다. 30여년의 시간이 빚어낸 '다양성'의 진화다. '다양성'은 시대의 조류다. 조직의 다양성 부재는 과거회귀의 징표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이 딱 그렇다. 19명 중 16명이 남성, 10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호남 출신은 1명뿐이다. 평균 연령은 60.6세. 49세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가 최연소다. 미국의 바이든 1기 내각은 여성이 46%이며 인종별로는 백인 50%, 흑인 23%, 라틴계 15%, 아시아계 11%다.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이라는 건 윤 정부에 잠재된 '엘리트주의'의 발로일 수 있다. 엘리트주의를 능력주의로 순화할 수도 있겠다. 능력주의는 일견 공정한 듯 비치지만 정의의 대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진단은 "그렇지 않다"다. 좋은 집안에 태어난 아이가 훨씬 수월하게 능력과 실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측근을 실세 장관에 기용하는 행태 역시 과거회귀 정권의 루틴이다. 윤 정부의 법무부 장관은 폐지되는 민정수석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검찰의 예산·인사권도 갖는다. "민정수석 겸하는 법무장관이다. 저는 이렇게 본다. 왕장관이 되는 거죠"(조응천 민주당 의원). 선배 기수 고검장·지검장들이 수두룩한데 사법연수원 27기를 법무장관으로 끌어올린다? 상식과 질서의 파괴다. 그럼에도 윤석열 당선인은 한동훈을 일찌감치 점지했다. 어떤 복선(伏線)이 깔렸을까. 행안부 장관은 선거를 관할하고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여하며 정부조직 개편을 주무한다. 행안부 장관에 내정된 이상민 후보는 윤 당선인의 충암고 4년 후배이자 서울법대 후배다. 한 후보는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이"라 할 정도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대응도 불씨만 키우는 형국이다. 정 후보에겐 '윤 당선인의 40년 지기'라는 수식이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윤 당선인 측이 뒤늦게 40년 지기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돌연 두 사람의 관계를 이격(離隔)하려는 속내가 뭔지 아리송하고 생뚱맞다. '40년 지기'가 장관 발탁의 동인(動因)은 아닐진대 내세울 만한 '아우라'도 보이지 않는다. 실력·능력은 정량평가가 애매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경북대병원장 재임 3년간 내리 적자를 기록한 '실적'은 어떡할 건가. 자녀 문제는 더 심각하다. 조국 가족이 구사했던 꼼수와 편법 냄새가 물씬 난다. 의대 편입학은 의대 입학이나 의전원 입학보다 훨씬 어렵다. 그 바늘구멍을 딸과 아들이 연이어 통과했으니 놀라운 신공이다. 소셜 미디어엔 '로또 편입학'이란 말이 나돈다. 여러 의혹이 불거진 만큼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조국 사태 땐 아들이 원서만 낸 대학원까지 압수수색하지 않았나. 고무줄 잣대는 공정의 과거회귀다. 참신성도 부족하다. 윤 정부 내각을 보면 '이명박 정부 시즌2'가 어른거린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그대로 다 돌아왔다. 각성의 세례는 없었다"(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과거 정부의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다. 드라이하고 고루한 조직이 미래지향적이며 신박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 버린다"고 일갈했다. AI휴먼 시대의 화두 '커넥처'는 connect와 future의 합성어다. 즉 미래로의 연결이다. 윤 정부 1기 내각은 '커넥처 플랫폼 정부'가 정답이다. 한데 과거회귀형 정부라니. 오답 노트를 쓴 거다. 그래서 못내 아쉽다. 아니 난삽하고 뜨악하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윤 정부, 과거 정권의 실패에서 배워라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실패학' 창시자다. 실패의 경험에서 성공 공식을 찾아내는 실패학 전문가다. 저서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이 지난 2000년·2001년 2년 연속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실패학 신드롬에 불을 댕겼다.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이 실패의 속성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했다면 2016년에 출간한 '써먹는 실패학'은 누구나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실용서에 가깝다. 하타무라가 말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도전과 발전의 방식을 도출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성공방정식도 과거 정권의 실패에 답이 있다. 지난 정부의 실패 DNA에 대한 분석이 그래서 중요하다. 실패한 정권의 공통 DNA가 하나 있다. 뭘까. '일방통행'이다. 계륵이 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만 해도 그렇다. 국민 공감대가 없는 일방적 추진이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 수질 문제가 거론되자 '로봇 물고기'로 수질악화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형 수조에서 '로봇 물고기'를 시연하며 국민여론을 현혹했다. 지난달 말 낙동강 물을 사용해 재배한 쌀에서 녹조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다량 검출됐다. 4대강 보(洑) 건설 이후 녹조현상이 심해진 결과다. '녹조 라떼'가 밥상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의 망상적 아집과 불통의 덤터기를 왜 국민이 덮어써야 하나. 환경영향평가를 꼼꼼히 하고 수량(水量)에 목말랐던 영산강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했더라면 상황이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까. 수질 감시 첨병이라던 '로봇 물고기'는 어찌 됐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도 4대강 사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방통행에다 너무 서두른다는 점이 닮은꼴이다. 청와대보단 용산 집무실이 소통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실 이전은 백년대계의 역사(役事)다. 새로운 국정 공간의 창출이다. 대통령실 청사엔 대한민국의 정체성, 국정 컨트롤타워의 상징성, 국격이 녹아 있어야 한다. 각진 콘크리트 건물의 국방부 청사는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집무실은 물론 영빈관, 관저, 외국정상의 환영행사 공간의 효용성까지 살려야 한다. 용산공원을 활용하는 중장기 플랜이 필요하다. '5년 한시' 대통령이 날림으로 해치울 일이 아니다. 임대차 3법 역시 '날림'의 폐해를 방증한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입법 독재의 상징이다. 국민경제에 파장이 큰 입법사안은 사회적 파장, 체계의 정합성, 시장의 수용성 등을 고루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은 축조심의(逐條審議)도 거치지 않고 사흘 만에 졸속 처리했다. 전세 매물 품귀, 전셋값 폭등의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됐다. 공론화와 절차적 정당성을 방기한 정부정책의 참담한 귀결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기실 인사와 정책의 실패다. 이념에 경도된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는 능력 있는 전문가 등용을 제약했다. 부동산 정책 헛발질도 인사 실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친노동 정책은 기업의 손발을 묶었고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을 왜곡했다. 정부조직을 지나치게 비대화했으며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훼손했다. 나랏빚은 '빛의 속도'로 늘었다. 연금충당부채를 포함한 국가부채는 2천196조원(2021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 문 정부에서 763조원 급증했다. 5년간 지속된 확장재정의 후과(後果)다. 문 정부의 실패를 복기(復棋)하면 윤 정부의 성공 퍼즐이 맞춰진다. 일단 지긋지긋했던 '내로남불'의 재현이 없어야 한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중용하며 주요 정책 수립엔 국민동의가 필수다. 무리한 관제정책으로 시장의 물꼬를 막는 건 금물이다. 공영방송 장악이나 공공기관장 낙하산 투하 따위의 나쁜 관행을 답습해선 곤란하다. 공직을 전리품처럼 나누는 엽관(獵官)도 버려야 할 구태다. 검찰총장 등 권력기관장엔 윤 당선인 측근 기용을 배척해야 마땅하다. 정치적 셈법에 의한 국민 편 가르기도 종식시켜야 한다. 실패한 과거 정권이 윤석열 정부엔 반면교사다. 성공신화는 실패의 학습에서 시발 된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대구경북, 이번엔 푯값 받을 수 있을까
#1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원형 버전이다. 포항은 1994년 구축한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2016년 완공한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를 운용해온 곳이다. 30년 가까이 가속기 설계와 구축, 운용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숙련된 엔지니어·연구원 등 전문 인력만 300여 명이다. 전후방 산업과 장비 역시 포항이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부지는 청주로 결정됐다. 왜 문재인 정부는 집적효과를 외면하면서까지 불모지 청주를 낙점했을까.#2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도 데칼코마니였다. 영남지역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대선 공약으로 채택한 것부터 백지화 수순을 밟은 궤적이 흡사하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글자 그대로 백지화였고, 박근혜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으로 미봉(彌縫)했다.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입지 청주 낙점과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의 공통점은 뭘까.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야 그렇다손치더라도 선거 때마다 몰표로 화답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 대구경북을 홀대했으니…. 상훈(賞勳)은커녕 여러 지자체에서 손사래 친 사드까지 성주에 떠안겼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대구가 더 높은 평점을 받고도 두 군데로 쪼개졌다. 첨복단지가 양분되지 않았다면 충북 오송에 둥지를 튼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 정부기관은 물론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대구로 왔으리라.20대 대선서도 대구경북은 보수 후보에 경도된 루틴을 답습했다. 대구 75.14%, 경북 72.76%의 압도적 지지. 0.73%포인트 박빙 승부에서 대구경북은 윤석열 후보의 구세주였다. 당당히 푯값 청구서를 내밀만 한 전공(戰功)이다. 그렇다면 굵직한 지역 숙원 몇 개만 추려보자. 대구경북신공항 건설비 국비 지원, 영일만대교 예타 면제, 경부선 대구 도심구간 지하화, SMR(소형 모듈 원자로) 특화산업단지 경북 조성 등이다. '충성도 높은' 표심의 대가치곤 과분하지 않다. 윤 정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공약 마지노선이다.그래도 실행 여부에 대한 의구심은 남는다. 지난 보수 정부의 '공약 어음' 부도 경험칙 때문이다. 대구경북신공항 국비 지원은 기부 대 양여 방식을 명시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협조가 관건이다. 경부선 대구 도심구간 지하화는 8조원이라는 사업비가 부담이다. 하지만 이런 핑곗거리가 푯값 묵살의 구실이 될 순 없다. 민주당에 빌든 협박을 하든 딜을 하든 군공항 특별법 개정을 관철하라. 국채를 찍든 지출 구조조정을 하든 8조원을 마련하라.윤 후보의 공약이 실행되면 대구경북민은 오랜만에 '내 한 표의 정치 효능감'을 체감할 것이다. 이번에도 푯값을 받지 못한다면? 대구경북은 또 한 번 혹독한 배신감에 휩싸일 게 뻔하다. '집토끼 홀대론'은 더 확고부동한 명제로 뿌리내릴 것이다. 진보 진영에선 "그렇게 당하고도 또 표를 몰아주더니 꼴좋다"고 조롱할지 모른다. '표심의 황금분할'로 캐스팅 보터를 자처한 충청도는 국책사업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GRDP(지역내총생산)도 부쩍 늘었다. '일편단심 민들레' 대구경북은 애꿎게도 불이익이 다반사였다. 푯값 왜곡 현상이다. 이제 대구경북 주민들도 '투표 효능감' 좀 누려야 하지 않겠나. 윤 정부는 대구경북에 깊은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푯값을 정산할 수 있을 테니까.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정치개혁의 키워드 '분권'
스테디셀러 '총, 균, 쇠' '문명의 붕괴'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압도적인 지적 근력을 자랑한다. 지식 흡입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생리학, 지리학, 문화인류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 처음 이름을 알린 저서가 '제3의 침팬지'란 점도 흥미롭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며 한글을 극찬한 인물이기도 하다.그가 유럽의 비교우위를 '분권'이란 키워드로 풀어냈다. 다이아몬드다운 통찰력이다. 오늘날 50여 개국의 유럽은 과거 수백 개의 정치 단위가 할거했다. 구조적 경쟁체제였다. 그 결과 정치제도·과학·산업·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른 대륙보다 앞선 발전을 일궈냈다. 르네상스·산업혁명은 유럽 융창(隆昌)의 상징이다. 다이아몬드는 유럽의 분열과 분권이 경쟁을 추동했다고 분석한다.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민주정치의 모델 국가로 주저없이 덴마크를 꼽는다.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민주적이며 안전하고 부패가 적은 국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후쿠야마는 10개가 넘는 다당제 체제에서 타협과 합의의 문화가 이뤄낸 덴마크식 협치에 주목한다. 독일도 다당제를 바탕으로 한 연립정부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나라다. 정치권력 분권에 따른 조화로운 결과다. 반면 양당체제가 강고한 우리나라에선 팬덤의 비위만 맞추는 '직거래 정치'를 선호한다. 극우·극좌의 자력(磁力)이 강해지고 중립지대는 약화되는 구도다. 당연히 여야의 공통분모 도출이 어려워진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말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며,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다당제의 밑자리를 깐다는 점에서 옳은 방향이다. 기실 현행 헌법에 명시된 '책임총리제'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게 우리 현실 아니었나.정당 민주화도 시급하다. 전성철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은 "정당 민주주의를 좀먹는 흉측한 제도"라며 하향식 공천과 당론제를 강력 비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당론을 받들면 의원 개개인의 정체성과 주체성, 독자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러고서도 국회의원이 헌법기관? 언어도단이다. 민주 정당이라면 '일사불란'을 배격해야 한다.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정책이 쏟아지고 다채로운 목소리가 분출돼야 정상이다. 하향식 공천은 보스정치·계파정치의 폐해다. '진박 감별사'란 우스꽝스러운 조어는 하향식 공천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하고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는 개방·분권의 디지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중앙당이 아예 없다. 당 대표도 없다. 원내대표뿐이다. 우리도 중앙당 폐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거대 정당만 살찌우는 정당법 개정도 필연이다. 결국 정치개혁의 요체는 '분권'이다. 청와대 집권(集權)을 완화하고 양대 정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중앙당의 힘을 이완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조직 축소 방침은 분권이란 기제에 부합한다. 유럽의 분열과 분권이 유럽의 번영을 추동했다면 정치권력 나누기가 정치발전의 추진동력이 된다는 공식도 유효하다.무릇 어떤 개혁이든 힘이 빠지는 정권 말기엔 불가능하다. 지금 정치개혁의 얼개를 짜야 한다. 기업은 일류 반열에 올랐는데 정치만 4류 언저리에 침잠해있다면 궤도 이탈 아닌가. 이제 업그레이드할 때도 되지 않았나.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賢君(현군)의 소통법
'정관(貞觀)의 치(治)'로 웅변되는 태평성대를 열었던 당 태종은 소통의 군주였다. 당 태종은 즉위 후 간관(諫官)의 수를 늘리고 간관의 역할을 강화했다. 간관은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고 백관(百官)의 비행을 규탄하는 벼슬아치다. 요즘의 언론 역할도 담당했다. 하여 언관(言官)이라고도 한다. 당 태종이 질릴 정도로 쓴 소리를 많이 했던 충신 위징의 직책도 간의대부(諫議大夫)였다. 당태종은 신하들을 사우(師友)로 예우하며 충언을 독려했다. 스스로 언로(言路)를 열어 민심을 헤아렸다. 당 태종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수양제다. 수양제는 간관의 씨를 말려 언로를 막았고 수나라는 2대 왕조의 짧은 역사로 마감했다. 수양제는 부친 수문제의 후궁을 겁탈하고 수문제를 죽인 패륜군주다. 현군(賢君)과 암군(暗君)의 명암이 '소통'과 '불통'으로 엇갈리는 모양새다.굳이 귀납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소통'은 성군과 혼군(昏君)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법하다. 세종과 정조에겐 경연(經筵)마저 소통의 장(場)이었다. 신하들과 경전 강론은 물론 정책·현안 토론을 치열하게 벌이며 세론(世論)을 수렴했다. 압도적 경연 횟수는 두 현군의 소통 의지를 가감 없이 노정한다. 연산군·광해군 재위 땐 조정에 경연 열리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와 코모두스 역시 불통 군주였다. 당태종 諫官 늘려 민심 수렴세종 經筵서 현안·정책 토론尹 집무실 이전은 일방통행시간 두고 국민동의 얻어야회견·온라인 소통방법 다양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제후 간의 전쟁을 직접 겪은 손자가 다양한 실례와 역사적 기록, 본인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엮은 '전쟁 방법론'이자 '전략 실용서'다. 마오쩌둥과 나폴레옹이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책, 세계 리더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고전이다. '손자병법'의 저류(底流)에도 '소통'이란 화두가 흐른다. 이를테면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상책(上策) 중의 상책으로 꼽았다. 한데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적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손자는 전장(戰場)에서의 소통법도 피력했다. 군마가 뒤엉켜 피아(彼我) 구분이 어려운 만큼 북과 징으로 군사들의 청각을 통일하고, 깃발과 신호로 시각적 소통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 이전지로 확정했다. 집무실 이전의 명분은 '국민소통'.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복안엔 이설을 달 이유가 없다. 하지만 소통을 강조하는 윤 당선인의 결정에 정작 국민적 컨센서스는 없었다. 일방통행에다 속전속결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가정집 이사도 대개는 6개월~1년 정도의 사전 포석과 계획에 의해 실행된다. 청와대만 옮기는 것도 아니다. 안보의 심장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전이 불가피하다. 이걸 한 두 달 만에 군사작전 하듯 후딱 밀어붙이는 건 온당치 않다. 이전 비용도 만만찮다. 대통령 인수위는 496억원의 정부 예비비를 요구했지만 여기엔 합참 이전 예산과 방호시설·통신망 구축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 일각에선 이전 비용을 5천억원으로 추산한다. 어쨌거나 윤 당선인 측의 집무실 이전 당위성은 '국민소통'이다. 한데 거미줄처럼 촘촘해진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미디어 전성시대다. 공간적 이격(離隔)이 불통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집무실 인근에서 시민 몇 사람 만나는 게 과연 효율적 소통 방법일까. 그 시간에 더 많은 국민을 온라인에서 집단 응대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자주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갖고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더 많이 하고 대통령 직접 브리핑을 정례화하는 게 국민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방책 아닐까.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면 청와대를 시민 친화적으로 재설계하고, 참모들과 밀착 근무를 원한다면 청와대 업무공간을 재조정할 수도 있다. 집무실을 옮기더라도 시간을 두고 국민을 설득해가며 안보 공백 없이 완벽하게 진행하는 게 순리다. 위정자의 진정한 소통은 민의를 제때 파악하고 정부 정책에 민심을 오롯이 녹여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국민과의 이심전심 통로가 상시 열려 있어야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회에서 연꽃 한 송이를 군중에게 들어 보이자 마하가섭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른바 '염화시중의 미소'다. 지도자에게 정작 필요한 덕목은 '염화미소' 같은 심심상인(心心相印) 소통이다. 윤 당선인에게 '염화시중 소통법'을 강추한다.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징크스와 대선
'징크스의 연인'은 올 상반기 KBS에서 방영되는 새 드라마다.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가난하고 재수에 옴 붙은 남자가 재벌가에서 숨겨둔 행운의 여신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신박하게 그려냈다. 징크스가 작품의 소재가 됐다는 게 꽤 흥미롭다. 징크스(jinx)란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魔術)할 때 사용했던 '개미잡이'라는 새 이름에서 유래됐다. 사람의 능력과 영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마치 마술과 같은 힘에 의해 일어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징크스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펠레의 저주'는 곧잘 징크스의 예시(例示)로 꼽힌다. 축구 황제 펠레가 월드컵 우승 후보로 지목한 팀이 예외 없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광고 모델 축구선수에겐 불운이 닥친다는 징크스도 나돌았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땐 피겨 스케이팅 프리에서 푸른색 옷을 입은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다는 징크스가 회자됐다. 그 후 많은 선수들이 실제 푸른 옷을 애호했다. 미국에서도 대선과 관련된 징크스는 늘 화젯거리였다. 대표적인 게 전쟁을 할 땐 집권 대통령이 당선된다는 '전시 대통령 불패신화'다. 2004년 이라크 전쟁 중 재선에 성공한 부시도 같은 케이스다. 1812년 미·영전쟁 이래 여섯 번 모두 전시 현직 대통령의 불패 공식이 깨지지 않았다. "강을 건너는 동안은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는 링컨의 말이 실증된 셈이다. 키 작은 후보가 패한다는 징크스는 2004년 부시가 케리 후보에 승리하면서 무효화됐다.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승패가 엇갈리며 대선 징크스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윤 당선인은 여러 징크스를 한꺼번에 깨뜨렸다. '서울법대 필패론'도 그중 하나다. 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는 대선 본선에서 좌절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최재형 전 감사원장,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다 서울법대 동문이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도 와해됐다. 10년 주기설은 1987년 대선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쭉 지켜졌던 불문율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며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가며 집권했다. 이번엔 5년 단명. 35년 만에 징크스의 고리가 끊어졌다.윤 당선인은 '0선 정치신인 불가론'도 극복했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중도에 좌절했으나 윤 당선인은 정치신인의 핸디캡을 넘어섰다. 빤짝 조명을 받다 정치무대에서 퇴장한 관료 출신의 궤적을 비켜 간 것이다.더 강고해진 징크스도 있다. '경기도지사는 대권의 무덤'이라는 속설이다. 이인제는 1997년 15대 대선 때 경기도지사직을 내던지고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했다. 이회창 후보에 패배하고도 신당 창당 후 대선에 출마하며 불복 논란을 낳았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은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자는 해당 선거의 본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이인제 이후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는 모두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재명 후보는 대권 고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충청권 우세 후보 필승론'은 이번 대선에서도 증명됐다. '충청의 아들'이란 윤 후보의 슬로건이 먹혀든 걸까. 윤 당선인은 충청권에서 이재명 후보보다 14만7천여표를 더 얻었다. 25만표 차의 박빙 구도에서 알토란같은 득표였다. 하지만 윤 당선인을 보면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있다"는 말에 더 무게가 실린다. 과연 징크스는 우연일 뿐일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탕평'으로 통합시대 열어라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대선 여정이 막을 내렸다. 대통령 당선인은 '대한민국 5년의 미래'란 무거운 책무를 짊어졌다. 당선인이 해법을 내놓아야 할 최우선 과제는 뭘까. 아마도 국민통합이 아닐까 싶다. 젠더 갈등, 소득계층 간 반목, 세대 갈등이 극단으로 심화하고 있어서다. 이뿐이랴. 진영 간 극한 대립구도는 박제(剝製)될 지경에 이르렀고, 지역주의는 '정치색'이 덧씌워지며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말 그대로 '찢겨진 대한민국'이다. 방책이 없진 않다. '용광로 정부'다. 공동정부나 통합정부보다 더 끈적하고 진화한 정부를 지칭한다. 화학적 융합이 이뤄져야 용광로 정부다. 용광로 정부를 통해 갈등과 분열의 유전자를 녹여야 한다. 정치보복이란 악순환 고리도 용해해야 한다. 용광로 정부를 구현할 수단이 바로 '탕평'이다. 탕평의 사전적 의미는 '싸움·시비·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함'을 이른다. 젊은 세대의 우선 가치 '공정'을 관통하는 화두다. 탕평의 역사는 꽤 유구하다. 탕평(蕩平)은 중국 한나라 때의 경전 상서(尙書)의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이란 말에서 유래됐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왕도가 넓고 공평하게 펼쳐진다는 의미다. 흔히 탕평을 인사 탕평으로 치부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책 탕평, 이념 탕평을 아울러야 진정한 탕평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인사·정책·이념 탕평을 제대로 실현한 인물로 꼽힌다. 진보 정치인 슈뢰더는 재임 중 선거 득표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좌파 세력의 패권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오직 국민의 미래만 보고 연금·노동·교육 등 사회 전반을 개혁했다. 독일이 유럽의 경제맹주로 우뚝 선 것도,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도 슈뢰더의 정지(整地)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탕평의 매력은 확장성이다. 정책 탕평을 실천하면 정책 운용의 폭이 배가되고 인사 탕평을 추구하면 인재 등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더 좋은 정책을 구현하고 더 능력 있는 공직자를 발탁할 개연성이 커진다. 정권의 지지층이 두꺼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제자 자공이 평생 가슴에 묻고 갈 가르침을 달라 하자 공자는 '서(恕)'라고 말했다.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게 용서할 서(恕)다. 너와 나의 마음이 같다는 뜻이니 관용·포용·소통을 두루 아우른다. 서야말로 지도자의 기본 덕목이다. 그러니 정치보복 따위는 입에 올리지 말라. 김대중 정부는 역대 정권 중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후 공자의 서를 실천하며 국민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공화적 가치가 몸에 밴 의회민주주의자다웠다. 은원(恩怨)만 따졌다면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할 수 있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탕평과 국민통합으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박근혜 4년'은 탕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편만 챙기고 정체성이 다른 인물은 철저히 배격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박근혜 정부의 구태를 답습했다.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탕평 인사를 하겠다던 취임 초의 약속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대통령 당선인은 '용광로 정부'를 구현하고 국민 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러자면 박근혜나 문재인의 전철을 밟아선 곤란하다. '서(恕)'와 '탕평'을 새기고 김대중과 슈뢰더의 길을 가야 한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업, 변증법, 지주반정
코로나 장벽에 가로막힌 비대면 시대다. 코로나 발발 이전까진 술잔을 기울이며 교유(交遊)했던 후배와의 소통 방법도 바뀌었다. 주로 전화통화다. 며칠 전 그가 3·9 대선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조망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업, 변증법, 지주반정"이라고 말했다. 선문답 식으로 답한 셈이다.# 업(業)1453년 10월, 수양대군의 심복 양정·홍달손이 고명대신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치고, 왕명을 참칭해 밀소(密召)한 황보인·이극관 등 중신들을 궐문에서 추살한다. 수양대군의 사직(社稷) 농단의 시발점 계유정난이다. 1456년 단종 복위 거사가 무위로 끝나며 더 참혹한 도륙이 펼쳐진다. 연루자·가족 600여 명이 처형됐다. 사육신에겐 사지를 찢는 거열형이 내려졌다. 어찌 후과가 없으랴. 세조는 말년에 악성 피부병으로 고통을 겪었고 장남 의경세자, 차남 예종이 모두 요절한다. 수양대군의 업보다.프랑스 혁명기, 강경파 자코뱅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유산 청산을 기치로 급진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개혁은 구실일 뿐 기실은 압살독재·공포정치였다. 혁명 반동세력과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 올렸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 역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코로나 창궐에 가장 책임이 큰, 딱 한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 시진핑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 코로나 사망자만 600만명에 육박한다. 엄청난 물적·정신적 피해는 정량화조차 어렵다. 시진핑은 업보를 비켜갈 수 있을까.# 헤겔의 변증법변증법이 헤겔의 전유물은 아니다. 변증법 창시자는 기원 전 인물 제논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도 변증법을 발전시키고 체계화했다. 그럼에도 변증법하면 왜 헤겔이 떠오를까. 헤겔이 가장 명쾌하게 변증법을 해석하고 정립했기 때문이다. 헤겔은 인식이나 존재는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판단했다. 몇 년 전 이순자씨가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실소를 자아내는 궤변이다. 한데 전두환의 폭압정치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촉발한 측면은 있다. 변증법의 정-반-합 3단계를 대입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크롬웰 독재, 왕정복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도 변증법적 시각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 지주반정(砥柱反正)지주반정은 거센 물결에 흔들리지 않는 돌기둥처럼 꿋꿋이 신념을 지키면 본래의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지주(砥柱)는 중국 허난성에 있는 돌산이다. 황허강이 지주산을 휘감아 돈다. 폭군을 폐위시키고 새 임금을 옹립하는 것도 반정(反正)이다. 그래서 중종반정·인조반정이라고들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업은 대장동 사업이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조국 가족 수사다. 본인만 알고 있는 더 많은 업이 있을 것이다. 두 후보의 업보가 3·9 대선에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두고 볼 일이다. 지지율이 출렁거리고 온갖 의혹과 네거티브가 난무하지만 종국엔 변증법의 합(合)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지주반정의 예시처럼 반듯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X와 SWOT
2022년 기업계 트렌드는 x다. 'x맨'의 x일 리는 없고. 무슨 x? experience의 x다. 즉 경험이다. 그것도 고객경험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도 x에 꽂혔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삼성은 x에 방점을 찍었다. CES에서 선보인 삼성의 메타버스 '마이 하우스'에선 삼성전자가 만든 18개 제품을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현실적 체험이라니. "지혜로운 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아둔한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아포리즘은 가상현실(VR)·혼합현실(XR)의 디지털 세상에선 유효하지 않다. 대선이 종반부에 접어들었지만 여론 나침반은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혼전이다. 아직 표심을 굳히지 않았다는 유권자들이 꽤 많다. 이럴 땐 대선 후보들을 미리 체험할 메타버스가 있으면 좋으련만. 가상공간에서 후보를 체험하는 것보다 확실한 검증은 없지 않겠나. 하지만 어쩌랴. 대선 만큼은 아직 '디지털 x'의 세상이 열리지 않았으니 나름의 검증 노하우를 찾을 수밖에. SWOT도 대선 후보 판별법 중 하나다.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ies)와 위협(Threats) 요인을 분석하면 후보의 실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강점은 행정경험과 추진력. '검사만 26년'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경기도지사 재임 땐 전국 시·도지사 평가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고 공약 이행률도 높다. 하지만 여권 후보임에도 친문의 강력한 지지를 업지 못하고, 정권교체 여론을 잠재울 만큼 지지전선이 넓지도 않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2030의 이탈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이 후보는 정책 및 경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 실패가 외려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의 공약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유권자 시선을 확 끌 '파격'이 없다. 흙수저 출신으로 계층 상승을 이루어낸 입지(立志) 이력도 이 후보의 자산이다. 최대 위협 요인이었던 대장동 사업 설계자란 낙인은 김만배-정영학 녹취록 공개로 반전의 여지를 남겼다. 욕설 파일, 전과 4범 딱지, 부인 김혜경씨 갑질과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뇌관이다.윤석열 후보의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문재인 정권과 맞선 강골 검사 전력이다. 자연스레 '부정부패 척결' 이미지가 형성됐으니 이건 덤이다. '국민이 불러낸 후보'라는 점도 우군의 확장성을 높일 게 분명하다. 반면, 현실과 동떨어진 실언 반복은 윤 후보의 아킬레스건이다. 무지하거나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어서다. '본·부·장 의혹'으로 '공정과 상식' 구호가 퇴색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권교체 민심에 올라타 반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건 야권 후보만의 기회다. 쏠쏠한 기회가 될 뻔했던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윤 후보의 위협 요인은 무속 논란과 신천지 유착설, 김만배-정영학 녹취록, 부인 김건희씨 주가조작 연루 등이다. 휘발성 강한 사안이라 투표일까지 파장을 예단하기 어렵다.우크라이나는 무능한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해 전쟁 위기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가 명운과 대선의 함수관계를 방증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하급이 된다"고 했다. 자칫 선택을 잘못하면 본의 아니게 하급 국민이 될 수도 있다. 대선의 한 표가 그래서 중요하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요즘 검찰, 요즘 국회의원
지금의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산고를 온몸으로 겪은 조직이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파워게임이 조국 사태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치고도 검경 수사권 조정 말고는 개혁의 성과가 없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통제 기능을 방기했고, 검찰의 중립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도 빠졌다. 반쪽짜리 개혁이었다는 의미다. 어쨌거나 개혁의 정풍쇄신을 견뎌낸 검찰이라면 결기부터 남달라야 한다. 거악 척결의 기수답게 '춘풍추상'의 예봉을 들어올려야 한다. 한데 '요즘 검찰'은 딴판이다.대장동 의혹 수사에선 성남시장실과 비서실 압수수색을 뭉그적거리다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하는 시늉만 했다. 이재명 후보 측근으로 알려진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소환도 하염없이 뜸을 들인 후에야 비공개로 슬쩍 넘어갔다. 계좌 추적은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조국 가족 수사 땐 50여 명의 검사·수사관을 동원해 한 달 반 동안 70곳을 압수수색하지 않았나. 그 현란한 압색 신공은 '윤석열 검찰'만의 서사였나.김만배-정영학 녹취록에 '50억 클럽'으로 언급된 전직 검찰 수뇌부는 왜 소환하지 않나.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 수사는 왜 미적거리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에 연루된 김건희의 소환 불응은 어떡할 건가. 윤석열 후보 부친의 집을 김만배 누나가 매입한 것도 희한한 우연 아닌가. 수사하면 진실이 밝혀질 텐데 검찰은 그냥 멀뚱멀뚱 이다.검찰이 수사 작동 시스템을 아예 '관망' 모드로 고정해 버린 듯하다. 검찰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는 '검찰 신디케이트'의 불문율 시전인가, 인지부조화에 빠진 정치검찰의 고해성사인가. 모름지기 법과 공권력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거늘 요즘 검찰엔 그런 지조와 강단이 없다. 선택적 정의, 차별적 공정만큼 나쁜 게 어디 있나. 이래서 검찰개혁이 필요한 거다.'요즘 국회의원'은 '요즘 검찰'을 능가한다. 한 수 위다. 대선 정국이라곤 하나 지역민의 대표라는 본분마저 까먹은 듯하다. 대의정치는 포기했나. 선량(選良)이란 칭호가 아깝다. 정책 대결보단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에 목을 맨다. '소가죽 굿판' '오살 저주' 따위의 기괴한 언행이 난무한다. 찌질한 핑계로 토론을 파투 내거나 '위장 무공천 쇼'를 펼친 정당도 있다.사뭇 적대적인 여야지만 이권 챙기기 공생(共生) 버전에선 찰떡궁합이다.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진 수가 늘어나고 압도적 특권을 누리는 것도 다 여야 짬짜미의 산물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회는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4급 보좌관 2명을 포함해 국회의원의 보좌진만 10명이다. 일본은 3명, 북유럽은 아예 보좌관이 없다.그러면서도 본연의 입법 활동엔 유유자적이다. 유권자 표심(票心)만 저울질하며 정쟁을 일삼는 게 정당정치의 루틴이 된 지 오래다. 경제와 민생을 고양해야 할 정치가 되레 경제의 덫이 되곤 한다. 민의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동맥경화 정치'의 폐해다. 국회를 효율적 거버넌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개혁이 필요한 거다. 차라리 국회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면 어떤가.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검찰개혁, 정치개혁은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외려 검찰권력을 강화하겠다는 후보도 있다. 포퓰리즘과 네거티브 선거 분위기에 개혁 담론이 휩쓸려선 곤란하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검찰개혁과 정치개혁을 말해야 할 때다.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참 '중국스럽다'
#1 '∼스럽다'는 어법이 통용된 건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 후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하면서다. 평검사들의 토론을 지켜본 법대 학생들과 네티즌 사이에 '검사스럽다'는 말이 사용되면서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비상식적 언행을 빗댄 '∼스럽다'는 표현이 확산됐다. '검사스럽다'는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국회스럽다'도 그즈음 나온 말이다.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등재된 '국회스럽다'는 '이전투구, 날치기 따위의 행태를 일삼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당시의 드잡이 정치, 막장정치를 오롯이 웅변한다.#2 중국은 '후흑학'의 본산이다.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의 합성어다. 1912년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이 출간되자 온 대륙이 들끓었다. 중국인의 국민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래 제왕학에 기초한 '중국 통치학'이란 평가도 있지만, 기실 '후흑학'은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다.지난 7일 열린 베이징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m 준결승 경기. 황대헌은 아웃코스로 빠질 듯하다가 인코스로 파고들며 앞서가던 두 명의 중국 선수를 절묘하게 따돌렸다.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한 것이다. 한데 이게 반칙이라니. 축구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은 선수에게 골대를 등지고 찼으니 무효라는 판정이나 진배없다. 지독히 '중국스러운' 불량국가의 민낯이다. '중국스럽다'는 '뻔뻔하고 의뭉스러우며 배은망덕하고 더티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왜 중국이 불량국가일까. 한 나라의 국격(國格)을 평가하는 잣대는 다양하다. 정치체제,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 외국의 신인도, 국가 부패지수, 공직자의 도덕성, 국민 품격, 질서의식 등이 주요 척도다.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IT 전체주의 국가 중국은 이들 기준이 모두 최하위권이다. 멀쩡한 나라에 괜히 불량국가 덤터기를 씌우랴.'후흑학'의 본향이어서일까. 중국은 뻔뻔하고 의뭉스럽다. 시진핑은 2017년 트럼프와 정상회담 때 "과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며 역사를 왜곡했다. 이웃을 배려한다면 중국 전투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처럼 드나들 순 없다. 2018년엔 야반에 베이징의 삼성전자와 현대차 광고물 70개를 강제 철거하지 않았나. 사전 통보도 없이. 민주국가라면 상상조차 못할 관제 테러다. '대륙의 갑질' '판다의 몽니'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중국은 배은망덕하다. 우리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4년 만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하는 등 일관되게 중국을 배려했고, 저들의 집요한 한중 FTA 체결 요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저들은 가혹하게 사드 보복을 하지 않았나. 또 문화공정과 동북공정은 얼마나 야비하고 저열한 짓인가. 한복과 김치, 온돌까지 중국 기원론을 들이대며 '약탈 본색'을 드러낸다.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 속에 욱여넣으려는 폭거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플레이는 거칠고 더티했다. 실력이 아니라 완력으로 강탈했으니 '짝퉁 금메달'이다. 하기야 약탈과 짝퉁이 저들의 정체성 아닌가. 저딴 나라에 G2란 용어를 왜 쓰나. G7에서 보듯 'G'는 선진국 또는 글로벌 리더란 함의가 있다. 불량국가·민폐국가에 G2란 말은 적절치 않다. '중국스러운' 나라에 '한국스럽게' 대하다간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중국엔 '중국스럽게' 대응해야 한다. 벌꿀오소리처럼 사납게 달려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중국의 실체와 속성을 모르나.<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대선 후보의 '주홍글씨'
비현실적 공약도 일단 지르고 보는 포퓰리즘 선거,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흑색 선거', 관음증 부추기는 '황색 선거'. 3·9 대선을 수식하는 문구들이다. 그래도 '역대급 비호감 선거'만큼 이번 대선의 정체성을 정확히 꿰뚫은 표현은 없다. 어쩌다 비호감 선거가 됐나. 아마도 두 유력 후보의 '주홍글씨' 때문 아닐까. 주홍글씨?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의 간통죄 낙인 'A' 같은 글자 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형수 욕설과 전과 4범 기록이 '주홍글씨'처럼 지울 수 없는 인두 자국이다. 욕설 파일엔 그냥 가족사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농도 짙은 쌍욕이 나온다. 시정잡배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험한 말이다. 대선 후보로선 치명적 결함이다. 음주운전을 포함한 4건의 전과도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보편성을 벗어난다. 이 후보 측은 선한 동기였다고 두호하고 있으나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SNS에선 'x재명' '이죄명'으로 이름을 비틀어 이 후보의 욕설과 전과를 조롱한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주홍글씨'는 무속인 비선 논란이다. 무정스님, 천공스승, 건진법사 등 자칭 '윤석열의 멘토'라는 도사들이 주변을 맴돈다. 국민의힘 경선 토론회 때의 '王자 손바닥'이 건진법사의 작품(?)이란 말도 나돌았다. 이유야 어떻든 대선 후보가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토론회에 나왔다는 자체가 그로테스크한 일이다. 윤 후보는 "스님으로 알고 인사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윤 후보와 건진법사가 밀착해있는 동영상이 공개되고, 국민의힘이 선대위 네트워크 본부를 해체하면서 의혹은 더 증폭됐다. 건진법사는 네트워크 본부 고문으로 활동했다.'윤석열 검찰'이 2020년 경찰의 신천지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씩이나 반려한 것도 의아하다. 윤 후보는 지난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과학적 방역에 도움이 안 돼 압수수색 불가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대구는 코로나19가 창궐했고 신천지 본부는 신도 회합장소와 신도명단 제출에 비협조적이었다. 과학적·신속한 방역을 위한 압수수색이 절실했다. 세계일보는 검찰의 영장 반려 배경에 건진법사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공적 업무에 무속인의 조언을 받았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한 매체는 건진법사가 법당에 '마고 할미'를 신상으로 모신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가상인간이 광고모델로 뜨고 MC 역할까지 하는 '디지털 트윈' 시대에 '마고 할미'가 웬 말인가. 외신도 대선 후보의 무속 논란을 다뤘다니 망신살이 단단히 뻗친 것이다. 이미 최순실의 '오방색' 국정농단에 덴 국민이다. 샤머니즘과 국정의 연결고리는 아예 싹을 잘라야 한다.토론 기피 이미지도 윤석열 후보의 '주홍글씨'다. 지난달 31일로 예정됐던 이재명·윤석열 양자토론만 해도 그렇다. 날짜, 토론시간, 주제 등을 민주당이 다 수용했다. 다만 무자료 토론 입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국민의힘이 딴죽을 걸었다. 모든 룰을 국민의힘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건가. 더욱이 무자료 토론은 국민의힘이 먼저 주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선은 스탠딩 무자료 토론이다. 국민은 프롬프터나 대본 없으면 말을 못 하는 '어버버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 정상회담에서도 A4용지만 읽을 참인가. 국민의힘이 제안한 토론일 31일이 '손 없는 날'이라는 것도 참 묘하다. 한 달여 남긴 대선은 박빙 판세다. 두 후보에 각인된 '주홍글씨'의 부정변수를 최소화하는 게 승부의 관건이 아닐까 싶다. 한데 '주홍글씨'를 덮을 역량과 정책 비전이 있기나 할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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