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동 토박이들의 참나무津 추억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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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20   |  발행일 2014-06-20 제34면   |  수정 2014-06-20
“여름 강물이 불면 목선에 물이 들어찼지
어린 우린 바가지로 퍼내며 강을 건넜어”
조야동 토박이들의 참나무津 추억
지난 14일 북구 조야동에서 만난 60대 조야동 토박이들. 배를 타고 다닌 시절을 회상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팔달진을 거슬러 온 금호강은 대구시 북구 노곡동과 조야동에서 또 하나의 나루터를 만든다.

“조야초등학교가 생기기 전 금호강 건너 침산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여름에 물이 불었을 땐 목선을 타고 건넜는데 폭은 2m, 길이는 10m쯤 됐지요. 뱃사공이 긴 장대로 배의 방향을 틀면서 몰았는데 우리는 바가지로 배에 들어차는 물을 퍼내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배를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요. 허리까지 물이 차도 그냥 건넜습니다.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선생님께서 조야동 아이들은 집에 가도 된다고 했지요.”

지난 14일 조야동 초입 버스주차장 부근에서 60대 조야동 토박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1970년대 초 조야잠수교가 생기기 전까지 목교가 있었습니다. 큰물이 져 목교가 떠내려가면 어쩔 수 없이 배를 타야만 했지요. 당시 조야동엔 70~80가구가 살았는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수영을 잘했습니다. 수영을 못하면 물에 빠져 죽어요. 그땐 금호강을 떠먹어도 될 만큼 물이 맑았는데…. 배는 하루에 서너 번 다녔지요. 마을사람 중에 사공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도맡아 한 건 아니고 번갈아 가며 했습니다.”

조야동 토박이 가운데 60대 이상 대부분은 조야동과 침산동을 오가는 나룻배를 탄 경험이 있다.

“조야동 맞은편은 참나무진(津)이란 곳입니다. 참나무가 우거진 마을엔 3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말대가리집과 표서방집이란 주막이 유명했지요. 특히 말대가리집에는 색시까지 있었습니다. 지금 북구 침산동 건영화물 부근이지요. 현재 3공단에는 벌마란 갯밭과 논이 있었는데 거기엔 지금은 멸종된 따오기가 살았습니다. 금호강엔 민물참게, 은어가 수두룩했어요.”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의 이야기꽃은 기자가 자리를 떠나도 계속됐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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