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호프의 산 역사 ‘불칸호프’…90년대의 추억을 마시다

  • 이춘호
  • |
  • 입력 2014-08-15   |  발행일 2014-08-15 제35면   |  수정 2014-08-15
20140815
20140815

대구시 중구 동성로 금곡삼계탕 네거리.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를 대표하는 호프골목 초입으로 각광을 받았다. 네거리 동쪽골목, 그러니깐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한 레스토랑으로 사랑받고 있는 미즈컨테이너 바로 맞은편에 40대 이상의 세대에겐 전설과 추억의 호프집으로 추앙받던 ‘불칸호프’가 아직도 건재하다.‘동성로 호프의 마지막 등불’로 부른다. 한창 때 10여개 난립됐던 호프집이 소리소문없이 모두 사라졌다. 5년전 가장 오래됐던 뮌헨호프도 문을 닫았다.

2012년 11월 일본의 파워블로거가 불칸호프를 찾았다. 대구시가 일본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역에서 촬영된 한류 드라마 ‘사랑비’와 연계시킨 관광마케팅사업에 적극 나선 것이다.

25년 이 골목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장현기 사장(55). 그는 30년 이상 동성로에서 장사를 했다. 한창 호프집 경기가 좋았을 때는 불칸호프를 포함 5개를 동시에 경영했다. ‘미스터 호프 아저씨’로 불리기도 했다.

오후 4시 불칸호프. 참 어둑하다. 인테리어는 89년 처음 문을 열 때 그대로다. 미국 퍼브레스토랑처럼 적갈색 계열의 나무 테이블,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스타일의 조명등, 그 당시 어느 집에나 설치해놓았던 오크통, 각종 맥주 축제 브로마이드와 독일 현지 사진 등을 액자로 만들어 곳곳에 부착해 놓았다. 하지만 젊은 고객을 무시하지 못해 출입구만은 요즘 유행하는 접이식 유리문을 달았다.

“1980~90년대 호프집은 70년대 청바지·통기타와 맞물린 생맥주집과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죠. 우리는 ‘독일정통맥주집’이란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물론 독일에서 직접 수입된 맥주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분위기도 독일의 맥주광장 같은 분위기만 벤치마킹한 겁니다. 맥주는 케그에 밀봉된 국내산 생맥주를 팔았죠.”

맨처음 근처에서 쾰른호프를 운영했던 장 사장은 94년쯤 불칸호프를 인수한다. 그 무렵 이 골목엔 불칸을 비롯해 뮌헨, 본, 소금창고, 풀베이스, 시티팝, 난장 등이 운집해 있었다.

“70년대 생맥주는 오비베어, 크라운비어킹 등이 주도했고 안주도 촌스러웠습니다. 테이블도 호프집과 달리 조금 세련된 분식점 정도에 그쳤어요. 길쭉한 나무의자에 앉아 오징어, 땅콩, 심지어 부추김치, 김밥 등을 안주로 해서 먹었어요.그때는 생맥주와 병맥주를 같이 팔았어요. 양주 손님 때문에 양주도 갖고 있었죠. 대학생들의 대표적 MT장소였어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프라이드치킨이 생맥주 최고의 안주로 등극했죠. 또 훈제족발과 훈제치킨도 등장해요. 94년부터는 팝콘을 기본안주로 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불칸도 93년 무렵 대박을 터트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초창기엔 정통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식 가곡을 틀어주기도 했다. 젊은이들 사이에 힙합문화가 생기고 이게 소주방, 클럽 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하철 공사 등으로 인해 호프집 경기는 급속도로 얼어붙는다. 동서남북 부도심 상권 형성으로 단골을 많이 뺏긴다.

“IMF 외환위기 시절에는 소주방 문화가 본격화되죠. 이를 견제하기 위해 호프집에서도 소주도 팔게 됩니다.”

이젠 대학생은 거의 찾지 않는다. 40대 이상이 옛 추억 때문에 찾는다. 장노년층은 동성로에 와도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빛바랜 호프집이 다시 그 시절 그들의 사랑방이 된 것. 그래서 불칸은 문을 닫고 싶어도 닫지 못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