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로 전국순회 콘서트 나선 ‘밴드죠’와 김가영

  • 이춘호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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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23   |  발행일 2015-01-23 제34면   |  수정 2015-01-23
“위안부 할머니 삶 다룬 영화 ‘귀향’ 제작비 없어 촬영 못하다니 말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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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의 제작비를 마련해주기 위해 전국 투어 중인 벤드죠의 리더 배철(맨 오른쪽)·전 노찾사 멤버였던 김가영(중앙)·건반주자 김영미씨. 오는 31일 대구 공연에 많이 동참해 달라는 의미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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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죠 리더 배철·건반주자 김영미
노찾사 출신 김가영
31일 오후 봉산문화회관에서 공연

일제강점기 종군 위안부의 애환을 다룬 영화 ‘귀향’의 제작비는 25억원. 11년간 이 영화를 준비해온 조정래 감독에겐 돈이 없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오는 8월15일 이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란 푸념을 들은 한 동갑내기 뮤지션이 있었다.

바로 김태원이 이끄는 록그룹 ‘부활’ 못지않은 구력을 가진 ‘밴드죠’(www.bandjoe.co.kr)의 리더 배철씨(43)였다. 지난해 서울 홍대 앞 한 술집에서 조 감독과 만나 친구가 된 그는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 영화는 반드시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관람을 해야 된다고 믿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대박에 혈안이 된 블록버스터 영화는 툭하면 수백억원대의 제작비를 과시하는데 정작 대한민국의 한이 되어버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다룬 영화가 제작비가 없어 제대로 촬영하지 못하고 있다니.’

둘이 의기투합을 하자 동시다발적으로 제작비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이 가동되었다. 귀향 홈페이지(www.guihyang.com)와 귀향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어 ‘영화 귀향을 후원하는 대구 사람들’이란 모임도 생긴다.

당시 끌려간 최소 20만명의 위안부 소녀 가운데 살아서 돌아온 이는 몇백 명에 불과하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 수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강일출 할머니를 포함해 55명. 조 감독이 제작을 서두르는 이유다. 포털 다음의 ‘다음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제작비 후원은 1월31일까지(http://m.newsfund.media.daum.net/project/135). 현재 3만여명이 가세해 2억여원이 모금됐다.

100여명이 될 전망인 스태프는 물론 출연할 배우 손숙과 정인기씨 등도 재능기부를 한다.

배철씨는 일단 영화 귀향 후원 전국투어콘서트를 기획했다.

이미 지난해 11월19일 홍대 근처 롤링홀, 이어 원주 왁스페이스, 서울 신천 기찻길 거리 콘서트, 충주 호암예술관에 이어 오는 31일 대구 공연이 열린다. 이어 천안, 부산, 춘천, 원주, 영월, 제천, 청주, 무주 등을 거쳐 오는 6월 중순쯤 서울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영화는 지난해 10월 주인공 정민이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아빠와 들녘을 걷는 장면을 미리 찍었고, 올해 2월에 위안소 세트를 지은 뒤 3월부터 경남 거창을 축으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광복 70년이 되는 오는 8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연 입장료는 3만원. 이건 입장료가 아닌 귀향에 펀딩하는 것이므로 티켓 1매 구매시 1인 후원 공연관람과 귀향 후원시사회 티켓 2매, 영화 끝 장면에 배우와 스태프 제작 관계자의 이름을 모두 알려주는 엔딩크레딧에도 올려준다.

◆ 숨은 일꾼…밴드죠의 리더 배철

이번 순회콘서트의 두 주역은 배철씨와 김가영씨(45). 둘은 음악에 자신의 인생을 건 운명적인 뮤지션. 마흔을 넘었지만 결코 음악전선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단다.

배철씨는 이번 공연을 위해 건반주자 김영미씨(33)와 손을 잡았다. 김씨는 클래식 피아노를 13년간 가르치다가 집어치우고 서울로 올라와 실용음악을 배우고 있는 ‘말괄량이 삐삐’ 유전자의 음악인. 김가영씨는 귀향 헌정곡인 ‘나비’를 부를 예정이다. 이 밖에 기타리스트 김광석과 듀엣 레드 코우(리더 고니)도 우정출연을 한다.

배철씨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2010년 서울로 올라와 배수진을 쳤다.

주로 충북 충주에서 밴드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음악이 전부다 싶어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23세 때부터 지금까지 100여곡의 자기 노래를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한때 신촌블루스의 리더 엄인호, 고 김광석,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등 서울 신촌·홍대 클럽 1세대로부터 음악적 자양분을 많이 얻는다.

1996년 그가 만든 록그룹 ‘밴드죠’는 공사판에서 추락사한 베이시스트 후배를 위한 추모 콘서트 직후 결성, 처음엔 배철·송성민·정진영·이봉우가 라인을 형성한다. 지금까지 바뀐 멤버만 80여명. 다들 먹고사는 문제로 떠났고 일부는 성격이 안 맞아, 나머지는 음악성 때문에 찢어졌다.

술과 담배는 달인급. 한창때는 소주 10병을 먹어야 제대로 잠을 잤고 담배도 하루에 무려 4갑을 피워댔다. 골초주당은 수호지 호걸의 본거지인 양산박의 주인처럼 충청권을 쥐락펴락했다.

꾸준히 음반작업도 한다. 99년 첫 앨범(세상속엔)이 나온다. 2004년 ‘행복의 나라로’, 2006년에는 디지털 싱글앨범인 ‘희망의 아리랑’을 낸다. 2013년 ‘파레이 돌리아’, 지난해는 ‘푸념’이란 음반을 낸다. 한때 충북 작고 문인을 추모하기 위해 ‘별똥 떨어진 곳’이란 동요앨범도 냈다. 그에게 앨범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라 여긴다. 90년대 충청도에서 드물게 ‘버스킹(거리공연)’을 시도한다.

2010년 더 이상 지방에서는 제대로 된 멤버를 찾기 어려웠다.

서울 홍대 근처 마포구 망원동으로 간다. 거처가 마땅치 않았다. 노찾사의 멤버 문진오의 집에 잠시 눌러 살았다. 일단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카페 ‘레드재플린’에 교두보를 세웠다. 정말 ‘날거지’처럼 생활했다. 당시 클럽 출연료는 쥐꼬리만 했다. 잘해봐야 10만원.

서울에서 낭인생활을 하면서 문화예술계 거물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마흔의 문턱, 환멸이 찾아온다. 음악이 그를 옥죄었다. 음악이 재미없었다. 음악을 끝낼까 싶었다. 능력이 다된 것 같았다. 작곡한 노래도 다 비슷했다. 집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그런데 어느 날 ‘동방박사’ 같은 선배 뮤지션이 그가 공연하는 데 나타났다. 그것도 입장료를 내고서. 바로 장사익 공연 때 기타 파트를 맡기도 했던 김광석이었다. 그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넸다.

“철아, 이 세상에 음악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단다. 너는 그걸 깨닫지 못해 고민하는 것이다.”

답답한 맘을 반체제 반정부적인 가사로 분풀이했다. 김광석이 그걸 지적했다. “예술가는 종합적이어야 하고 파당적이어선 안된다. 꽃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면 좋겠다. 종교와 정치는 답이 없다. 하지만 꽃은 답이 있을 거야.”

요즘도 한 해 100여회의 공연에 초대받는다.

◆ 전 노찾사 싱어 출신 김가영

‘민중가요계의 김윤아(자우림의 리더)’로 불린다.

영남대 생물학과를 다녔고 노래패 ‘예사가락’의 멤버가 된다. 졸업 전 노동자가요제서 학생신분으로 대상을 받는다. 즉시 한국 민중노래패의 신기원을 이룩한 ‘노찾사’와 한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95년 여자 4명, 남자 3명으로 구성된 노찾사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팀장인 문진오와 최근까지도 듀엣으로 활동했다.

서울로 가서 노찾사 3집 앨범 작업에도 참여한다. 그런데 노찾사도 하나의 회사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탈퇴, 대구로 온다. 이어 지역의 대표 노래패였던 소리타래와 모토와도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역시 대구는 답답했다.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서울 민족음악인협회 전속 민중 록그룹인 ‘천지인’(대표 김성민)의 멤버가 된다. 거기 전속 여가수가 된다.

인디음악과 민중음악까지 아우르는 기획사 ‘21세기’에도 가세를 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에도 캐스팅된다.

엎치락뒤치락 음악활동을 하다가 2002년 생애 첫 음반 ‘날치’를 낸다. 2013년 2집 음반 ‘기억이 되기 위해서’를 출시한다. 하지만 참패였다. 몇백 장밖에 팔리지 않았다. 이어 백창우 시인이 이끄는 ‘굴렁쇠와 아이들’과 만나 아이를 위한 음악교육에도 참가한다. 이미 세상은 20대 걸그룹과 아이돌 스타판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이 아까웠다.

이번 전국 순회 공연을 통해 듀엣에서 벗어나 솔로 싱어로 변신하고 싶단다.

그녀가 이날 부를 노래 ‘나비’는 원래 영화 속에서는 아이의 목소리로 나오지만 이날은 그녀가 ‘햇살 머금은 이슬비 버전’으로 부를 것 같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북유럽의 우울한 날이 생각난다.

위안부 할머니의 넋을 홀가분하게 날려주는 데는 미려하면서도 혼곤하고 그러면서도 순박한 그녀의 음색이 딱이란 생각이다.

대구 공연은 오는 31일 오후 5시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문의 010-6243-3860.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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