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추석은 양력 8월15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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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5면   |  수정 2015-08-28 07:23
“사할린의 추석은 양력 8월15일”
한인3세 백 알렉산드씨.

음력날짜 알 수 없어 생긴 일
광복절 행사 하루 미뤄 16일

한인 2·3세들 우리말 잊어도
벌초·차례 등 전통계승 철저

지난 14일,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 공동묘지. 한적한 공동 묘지에 예초기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에 한창인 한인들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은 죽어서 대부분 공동묘지에 묻힌다. 사할린의 한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봉분을 만들지 않고 비석만 세우는 데 반해 한인들은 봉분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고 잔디도 심는다.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은 무덤의 풀을 깎거나 잔디를 심는 등 관리를 하지 않지만, 한인 동포들은 추석 당일 또는 추석 며칠 전에 벌초를 한다. 추석이면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묘소를 찾아 다시 차례를 올린다.

2세대, 3세대로 넘어오면서 사할린 한인동포들은 한국말에 서툴거나 아예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추석은 빠짐없이 쇤다. 사할린의 추석은 양력 8월15일이다. 음력 날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였다. 요즘 들어서는 다시 음력으로 추석을 쇠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매년 광복절 기념행사를 8월16일에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벌초를 하던 한인 3세 백 알렉산드씨(54)는 “추석 때 이곳에 오면 한인들을 많이 만난다”며 “추석 때는 모두 산소에 와서 차례를 올리고 벌초작업을 하기 때문에 추석은 사할린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날”이라고 말했다. 백씨의 할아버지는 1935년 사할린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는 1943년에 태어나 1983년에 세상을 떠났다. 백씨는 20대 초반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한국말을 거의 못하지만 벌초며 제사, 추석 등을 잊지 않고 챙긴다. 30세와 20대인 아들 역시 한국말을 전혀 못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제사와 차례를 모시고, 추석 때는 묘지 청소와 관리 작업을 한다.

이경수 브이코프 한인회장은 “이역만리에 떨어진 동포들은 오히려 우리 전통문화를 더 잘 지키고 계승하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비록 한국말을 잊어가고 있지만 사할린의 동포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음식을 잊지 못하는 뼛속 깊이 한인”이라고 말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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