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40년째 ‘DJ 오빠’…내가 바로 정통 라디오스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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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33면   |  수정 2016-09-30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레코드판깨나 돌린’ DJ 김병규
20160930
코리아음악감상실의 괴짜 다운타운 DJ로 출발, KBS대구방송총국의 인기 라디오 DJ를 거쳐 한때 매머드급 공연기획사 사장까지 경험했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이 DJ임을 자각한 김병규씨. 요즘은 대구교통방송의 전속 ‘낭만DJ’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낭만이 있는 곳에 ‘김병규’가 있다.

SP, LP, CD, MP3, 음원…. 음악도 시대에 따라 담는 양식이 달라진다. 천상을 떠돌던 음률, 그게 한 작곡가의 가슴을 통해 음악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음반에 녹아들어 소비자의 귀로 들어간다는 사실. 때론 놀랍고 황홀하기만 하다. 나는 그 흐름의 중간에 댐처럼 앉아 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온갖 음악을 걸러 대구 정서에 맞게 하류 청취자를 위해 적절하게 방류시키며 살아왔다.

그렇다. 나는 예순을 갓 넘긴 DJ 김병규(62)다. 이젠 정통 DJ시대가 아니다. 유명인이면 누구나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을 수 있다. 그들은 DJ가 아니다. 솔직히 MC다. 국내 인기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의 흐름을 보면 이젠 나 같은 DJ는 설자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난 한물간 DJ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물갔기 때문에 누구에겐 더 빛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 형은 대구 DJ계의 전설로 불리는 김진규다. 한때는 형의 카리스마가 내겐 걸림돌이었다. 형이 ‘정악’ 같다면 난 ‘산조’ 같은 진행이었다. 형을 닮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아홉 살 더 많은 형은 한때 최동욱·이종환처럼 정통파 DJ로 승승장구했지만 세상의 흐름에 너무 빨리 길들여지는 바람에 DJ의 길에서 멀어졌다. 지금은 형의 몫까지 내가 떠안고 살아간다. 형은 항상 방송쟁이, 특히 DJ는 잠시 불꽃처럼 화려해보이지만 실은 고독하고 척박한 길이니 너는 DJ 말고 다른 길을 가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운명의 길을 누가 막을 수 있으리.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나 대건중·고를 거쳐 계명대 경제학부에 입학할 때만 해도 내 인생은 너무나 평범했다. 제대할 무렵 느닷없이 DJ길로 접어든다. 중구 화전동 송죽극장 맞은편 코리아백화점에 있던 코리아음악감상실 이정한 DJ가 나를 꼬드겼다. 형의 피를 갖고 있으니 DJ생활을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준 것이다. 마침 한 DJ가 마산에 일이 있어 땜빵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난 그렇게 얼떨결에 DJ가 됐다.

한국 DJ는 ‘자율형’이 아니고 ‘타율형’이었다. 특히 열악한 국내 음반시장 때문에 AFKN TOP40 같은 미국 본토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난 진행 중 늑대 소리를 낸다거나 너털웃음까지 작렬했던 ‘울프맨 잭 쇼’에 매료된다. 가끔 화장실 안에서 그 진행방식을 흉내내 보기도 했다. 숨겨진 나의 DJ본능은 코리아음악감상실에서 김병규 버전으로 꽃핀다.

한국의 DJ 역사는 1954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미국의 대표적 음반제작사 RCA가 한국 진출을 위해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홍보용 TV 한 대를 설치했다. 서울 시민들에겐 충격이었다. 3년 뒤 경기도 광주군 역리에 유선방송용 앰프가 등장한다. 국산 라디오조차 없던 때라 화제 중 화제였다. 그 앰프 1대에 100여개의 스피커를 연결해 각종 프로그램을 집단 청취했다. 하지만 음반부족 등으로 인해 팝송은 방송국에서 다루지 못했다. 영어실력이 있는 대학생은 AFKN을 통해 팝송을 접했다. 당시 기성세대 청취자 대부분은 ‘청실홍실’ 같은 드라마, 국악, 흘러간 노래 등에 매료됐다.

64년은 한국 음악 방송에 획기적인 해다. 그해 9월19일 한국 처음으로 명동 미도파 스튜디오에 거리 스튜디오가 가동됐다. 다음 달 최동욱이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전문DJ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동아방송(DBC) ‘탑튠쇼’에 등장한다. 1년6개월 뒤 MBC에서 이종환을 스카우트해 ‘탑튠 퍼레이드’로 맞서면서 ‘한국DJ시대’가 화려하게 개막한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형 김진규도 한일극장 맞은편 골목에 있었던 카네기다방을 축으로 지역 첫 다운타운 DJ시대를 연다. 형 옆에는 지금은 부산의 대표 DJ가 된 도병찬, 이후 레스토랑 아트리움 사장이 되는 김동환 등이 ‘지역 방송DJ 3인방’으로 발돋움한다. 나도 그 뒤를 좇아간 셈이다.

지역의 음악감상 인프라는 50년대 전성기를 맞은 녹향과 하이마트를 쌍두마차로 해서 시보네, 카네기, 빅토리아, 올림푸스(후에 해오라기), 행복의섬, 포크니 등 음악감상실과 은좌, 무아, 돌체, 왕비, 중앙, 심지, 미주 등 음악다방을 축으로 발달해나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예전 그 코리아백화점 앞에 선다. 구제의류거리로 변해버린 이 백화점 앞 거리는 40년 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DJ로드’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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