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만 줄였을 뿐인데 마법처럼 달라진 삶…가족의 시·공간을 되찾다

  • 이은경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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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2   |  발행일 2016-12-02 제34면   |  수정 2016-12-02
■ ‘물건은 최소한, 행복은 최대한’…미니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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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박유태씨(대구시 중구 청운맨션)가 자신만의 집 꾸미기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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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태·전영혜씨 부부의 침실과 주방, 아이방. 미니멀리즘을 콘셉트로 불필요한 가구와 장식을 배제했다.

결혼 6년차, 아예 방 한칸은 창고처럼
기회비용 따지면 보관에 수천만원 허비

지난 9월 이사 앞두고 ‘물건과의 전쟁’
일년 내내 한 번도 안 쓴 것 정리 원칙
버리고 비우니 진짜 소중한 것만 남아

새 집 인테리어도 ‘공간 비우기’ 콘셉트
정리·청소시간 줄어 휴식·여가 제 역할


다섯 살 아들을 둔 박유태(39)·전영혜씨(35) 부부는 올 9월 이사를 하면서 ‘물건과의 전쟁’을 벌였다.

결혼 6년 차, 아이가 크면서 사들인 물건들은 집 안에 차고 넘쳤다. 쓰지 않는 물건과 장난감, 옷가지로 아예 방 한 칸은 창고처럼 버려져 있었다. 기회비용으로 계산하면 더욱 끔찍하다. 아파트 가격을 평(3.3㎡)당 1천만원으로 잡으면, 불필요한 물건으로 채워진 공간이 1㎡만 돼도 그 비용은 300만원을 넘는다. 옷이나 장난감, 안 쓰는 물건으로 가득한 창고방이 있다면 어떨까. 작은 방 한 칸이 2.5평 정도라면? 쓸데없는 물건을 보관하는 데만 2천500만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어머, 이젠 버려야 해!” 절로 비명이 나올 일이다.

이사를 명분으로 박씨 부부는 대규모 ‘버리기 작전’에 나섰다.

“이전에도 집이 너무 복잡해서 늘 쓸데없는 것은 좀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집 안 곳곳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어 결국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며 미루고 말았다”는 아내 전씨는 쓰던 물건이 없으니 처음에는 엄청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고 했다. 물건이 적으니까 방이 거의 어질러지지 않고 그릇이 적으니까 설거지가 빨리 끝났다. 가구가 조금밖에 없으니까 청소도 힘들지 않았다.

전씨는 “줄어든 것은 물건의 개수만이 아니었다”며 “신기하게도 일상 속 매일같이 느꼈던 불필요한 감정과 복잡한 인간관계도 저절로 비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고 마음이 부자가 됐다”고 했다. 이처럼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 철학은 ‘줄이고 비울수록 행복해진다’는 믿음이다. 전씨는 “비우는 삶을 실천하다 보면 청소 시간과 정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며 물욕도 사라지고 환경을 더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전씨는 덕분에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평온하고 즐거워졌다. 방을 정리하는 것은 결국 마음을 정리하고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물건이라도 버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옷장과 화장대, 수납장에 일 년 내내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물건이 수도 없었다”는 전씨는 나름의 정리원칙을 세웠다. 물건은 마음에 드는 것만 남기기, 빈 서랍이나 공간이 있어도 절대 물건으로 채우지 않기, 식재료는 그날 쓸 만큼만 사기, 한 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무조건 버리기, 쓰지 않고 진열해 둔 식기는 주위에 나눠주기, 손님용 이불이나 식기는 과감하게 버리기 등등.

물건을 버리다 보니 소비도 줄었다. “반복해서 버리고 정리하다 보면 새로운 물건을 살 때도 신중하게 된다”는 전씨는 “새 제품을 사기 전엔 정말 필요한지 되묻고, 가격과 수납 위치까지 생각하고 구입해 충동 구매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새 집의 인테리어도 최대한 미니멀하게 했다. 최소한의 장식으로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비워두자는 것이 인테리어의 콘셉트였다. 쓸데없는 가구를 버리고 수납공간도 최소화했다. 그 흔한 붙박이장이나 거실 테이블, 장식장 하나 없다. 그렇게 비워진 공간에는 무심하게 화분을 몇 개 두었을 뿐이다. 박씨는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수납 공간이 1/3 정도로 줄어들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그 공간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수납공간이 많으면 그만큼 생활하는 공간이 줄어들고, 넓어진 수납공간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시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집이란 휴식과 여가의 공간인데 채우고 정리하고 관리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안방에는 침대와 조명등, 화장대가 전부다. 거실에는 TV와 소파, 빈 공간을 차지한 화분이 있을 뿐이다. 주방에도 시선에 거슬리는 상단 수납공간을 모두 없앴다. 벽에도 그림이니 액자니 하는 것들로 장식하지 않았다.

“비울수록 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는 박씨는 “물건이 비워지면 시간과 노력도 비워지고 욕심도 버려진다.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 간에 물건 소유에 관한 관점이 달라도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다”는 그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보관할지 고민하며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내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엉뚱한 것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며 만족해했다.

물건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저마다 용도가 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물건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냉정하게 답해보자.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나 자신에게 진정한 가치를 주는 것에 집중하자. 그것이 박유태·전영혜씨가 말하는 ‘미니멀 라이프’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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