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온기 가득한 열두 달…정겨움에 보는 이 절로 미소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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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34면   |  수정 2017-12-01
■ 달력·연하장 만드는 사람들
20171201
김혜경 대구미래인여성 회장이 직접 만든 달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71201
차정보씨가 만든 달력.

◆달력·명함까지 직접 만들어

차씨가 한 해 만드는 연하장은 얼마나 될까. 보통 100~150개를 만든다 한다. 그는 서예나 수묵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서예를 좋아해서 연하장을 보낼 때 재미삼아 붓글씨로 써서 보낸 게 발단이 됐다. 연하장에 글씨만 적으려니 허전해서 수묵화를 그렸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글씨나 그림이 볼품이 없다고 겸손해하지만 그의 글씨는 기운이 살아숨쉬고 정겨움이 녹아있는 듯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 서예를 하는 작가들에게도 연하장을 보낸다는 차씨는 “예술성은 별로 없는 글씨와 그림이지만 이 연하장을 받아본 사람들은 아주 만족해 한다. 아마 그 정성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수묵화나 서예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서양화와 달리 수묵화와 서예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선을 잘못 그었을 때, 색이 제대로 칠해지지 않았을 때 서양화는 덧칠이 가능하지만 수묵화와 서예는 아무리 애써 만든 것이라도 그냥 버려야 한다. 그러니 정신을 집중해서 작업을 해야 한다. 기자에게 선물로 준 연하장도 처음 그린 것은 먹물 한 방울이 화선지에 떨어져서 버리고 다시 그린 것이다. 먹물 한 방울인데 괜찮다고 했지만 연하장이 가진 의미가 감사·축하인데 정성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없더라도 그림이나 글씨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린다.


달력만들기 20년차 차정보 목공예가
30여년 前 정성 담은 연하장 고민하다
직접 글 쓰고 그림 그려 마음 담기 시작
받을 사람의 직업과 나이·성격 등 고려
해마다 서너種 100∼150개 만들어 전해
20년 前부터 수묵화·글귀 담은 달력도
주는 기쁨에 두달여 고생 마다하지 않아


달력만들기 2년차 김혜경 약사
2015년 대구미래인여성 초대회장 맡아
작년 회원에 고마움 전하려 달력 제작
화선지에 달마다 한 장씩 음·양력 적고
매달 개인적 바람 등 연상 단어 써 완성
약국서 짬짬이…1개 만드는 데 2∼3일
여름부터 넉달여간 130개 만들어 선물



이만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연하장의 내용도 미리 구상해야 된다. 그는 매년 3~4종류의 연하장을 만들고 있다. 다가오는 해의 띠그림을 비롯해 그 시기의 상황에 맞는 그림, 희망의 글 등을 적당히 잘 버무려 내용을 구성한다. 그리고 받을 사람의 직업, 나이, 성격 등을 고려해서 잘 어울리는 연하장을 보낸다.

이런 정성을 알기 때문일까. 차씨는 “이렇게 보낸 작품은 절대 안 버린다”고 단언한다. “몇 년 전 한 후배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실에 들어서니 제가 보낸 연하장 10여 개를 모두 액자를 해서 벽에 걸어놓았더군요. 후배는 연하장이 아니라 작품이라 걸어뒀다고 했는데 그 후배의 정성에 큰 감동을 했습니다. 그 후배 같은 분들이 몇분 더 계시는데 이분들 덕분에 연하장 만드는 것이 때로는 수고스럽지만 매년 힘을 내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년 12월만 되면 바쁘다. 연하장을 만드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하장을 오랫동안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글과 그림의 기본기가 다져진 그는 20년 전부터는 달력도 직접 만들고 있다. 차씨는 “달력이 거의 비슷비슷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달력 역시 마찬가지다. 수묵화에 감동을 준 글귀를 적는다. 매년 12개씩 그림을 그려야 되니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인쇄소에 맡겨 프린트한 뒤 자신이 직접 만든 나무고리로 달력을 묶어 마무리한다.

처음 500부로 시작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지인들이 운영하는 찻집·음식점 등에서 판매했는데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올해는 6천부를 제작했다. 달력은 매년 8~9월쯤 시작해 두 달여에 걸쳐 만든다.

“직접 쓰고 만드는 것의 가치를 연하장을 통해 새롭게 알았습니다. 저의 작은 정성이 다른 이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만들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직접 만든 달력을 선물로

<사>대구미래인여성 김혜경 대표는 최근 큰 일 하나를 끝냈다. 유달리 무더웠던 지난 여름부터 4개월여에 걸쳐 만들었던 달력을 완성한 것이다. 그가 만든 달력은 무려 130개.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 많이 바쁜데 도대체 어디에다 쓰려고 이렇게 많은 달력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대구미래인여성은 물론 존타클럽에서도 활동하는데 이들 단체의 회원과 가까운 지인에게 나눠주려고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대구미래인여성 회원에게 송년 선물로 작지만 내 정성이나 담아주자는 생각에서 달력 100개를 만들어 나눠줬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좀더 만들게 되었지요.”

그는 인터뷰 도중 대구미래인여성 회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2015년 창립된 대구미래인여성의 초대 회장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늘 고마움을 느끼고 어떻게 보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달력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 달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이런 제 예상이 적중했나 봅니다. 많은 사람이 달력을 집에 걸어놓은 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더군요. 요즘은 손글씨 쓰는 사람이 잘 없어서 그런지 색다르고 따뜻한 선물이라고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해주니 올해는 달력을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말 끝에 올해 달력 하나를 보여주면서 달력에 담긴 의미와 제작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달력은 긴 직사각형인데 상단에는 매월 다른 낱말이 들어가 있고 하단에 월별 날짜가 쓰여있다. 상단에 있는 단어는 김 회장이 매월 연상되는 것이나 개인적인 바람 등을 적었다. 1월은 소원성취를 담은 소원, 2월은 한겨울 추위에 건강을 지키라는 의미의 건강, 3월은 새싹이 움트는 것에서 연상한 희망, 4월은 모든 것이 충만한 데서 오는 기쁨, 5월은 사랑이 넘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 등으로 적었다. 하단의 월별 날짜의 경우 지난해는 양력만 적었는데 올해는 지난해 달력을 사용해본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음력날짜도 간단히 넣었다.

달력의 재료는 화선지다. 약전골목의 종이가게에서 화선지를 산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온다. 달력 하나 만드는 데는 매월 한 장씩 해서 12장과 표지 1장이 들어간다. 상단의 큰 글자는 붓으로 쓰고, 하단의 날짜는 붓펜으로 쓴다.

“상단의 큰 글자는 서예를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원본을 써달라고 했어요. 저는 서예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이것을 교본 삼아 거의 그림 그리는 것처럼 쓰고 있지요. 지난해는 이 글씨를 쓰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올해는 두 번째라서 그런지 훨씬 수월합니다. 속도도 상당히 빨라졌고 실수도 줄었습니다.”

글씨를 그림 그리듯 쓰다보니 자연히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김 회장은 회원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을 갖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오는 번잡함을 떨쳐버리기도 한단다. 하단의 날짜는 붓펜으로 쓰기 때문에 좀 수월하지만 매월 요일에 맞게 날짜를 기입해야 하고 일요일은 빨간 글씨로, 나머지 요일은 까만 글씨로 쓰는 데다 음력까지 적어야 하니 상당히 복잡하다고 했다. 자칫 숫자를 잘못 쓰거나 까만 글씨로 써야 할 곳에 빨간 글씨로 쓰면 그냥 버려야 한다. 이렇다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을 수가 없다.

“글씨를 잘 써내려 가다가 거의 완성될 즈음에 실수를 하면 좀 허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안 하려 합니다. 잠시 딴 곳에 정신을 팔면 금세 실수가 나오니까요. 약국에서 근무를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쓰는데 달력 1개를 완성하는 데 2~3일은 소요됩니다.”

달력의 글씨만 잘 썼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달력마다 월별로 정리한 뒤 펀치로 구멍을 내고 끈으로 일일이 묶어야 비로소 마무리된다.

달력 개수가 많다보니 비용도 만만찮다. 종이 가격만 1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실수를 할 경우를 대비해 여유분의 종이가 있어야 하고 워낙 글씨가 많다보니 붓펜도 제법 많이 필요하다.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회원들이 달력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만드는 과정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올해는 12월18일 대구미래인여성 송년음악회를 여는데 이때 달력을 나눠주려 합니다. 매월 달력에 쓰인 글처럼 회원들의 일상생활이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합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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