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연하장 만드는 사람들…취재를 마치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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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34면   |  수정 2017-12-01

이번 취재를 하면서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를 되짚어보았다.

남편과는 연애할 때부터 결혼 후 서너 해까지 매년 생일, 결혼기념일 선물을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에 잊지 않고 선물을 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부끼리는 물론 자녀에게도 선물을 주는 기회가 점점 줄었다. 맞벌이부부로서 또 직장 맘으로서 바쁜 일상을 보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았는데 이것 역시 어느 해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런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취재를 위해 연하장이나 달력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을 섭외하려고 20여 명에게 문자를 보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들 “요즘 연하장 자체를 잘 안보내는데 직접 만들어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답변을 보냈다. 그 가운데 단 한 명만 “나인데요”라며 답을 전해왔다. 바로 차정보씨다. 차씨에게 서너 분을 취재하고 싶은데 혹시 주변에 다른 분은 없냐고 물으니 잘 모른다 했다.

나의 어릴 적을 되돌아봤다. 부모님께 선물을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선물이라며 명절에 받은 새옷이나 새 신발 정도. 대학 들어갈 때 귀를 뚫어주면서 금귀고리를 사주신 것이 떠오른다. 먹고살기가 빠듯했기 때문에 선물을 장만하는 것도, 선물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를 못했다. 남편을 만난 뒤부터는 좀 달라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물을 주고받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는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해줬다. 그만큼 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또 나의 일상이 점점 바빠지면서 이런 일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과 주고받은 선물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을 살펴봤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준 결혼기념일에 직접 써서 준 편지,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사준 500원짜리 카네이션 서너 개가 있다. 꽤 오래 연애를 했지만 나와 남편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연애편지란 것을 주고받지 않아서였는지 남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 이 편지는 버리질 못했다. “버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남편의 비아냥거림을 받는 나인데도 이것은 직접 쓴 편지라 잘 간직하고 있다.

아들이 준 카네이션은 조악해 보이지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라는 아들의 글씨가 너무도 선명히 쓰여 있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서재에 이 카네이션들을 쭉 세워두었는데 이것을 볼 때마다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면서 즐거웠던 추억에 빠져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하나 있다. 어머니께서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짜주신 분홍스웨터다. 꽤 오랫동안 겨울만 되면 이 스웨터를 입었는데 이제는 입지 않지만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해 두고 있다. 몇 년 전 시골로 이사를 간 어머니에게 “시골은 추운데 어머니가 예전에 내게 짜준 분홍스웨터 가져다드릴까요”라고 여쭈니 “무슨 스웨터?”라며 기억을 못하셨다. 아마 선물을 준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받은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것을 마련하는 과정에서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에 내게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화려한 보석만이 선물은 아니다. 유일한 선물은 나 자신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시를, 양치기는 어린 양을, 화가는 그림을, 농부는 곡식을, 그리고 처녀는 자기가 바느질한 손수건을 선물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보내는 선물에 있지 않고 그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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