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위한 정치·행정은 학력순이 아니잖아요”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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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9   |  발행일 2017-12-09 제3면   |  수정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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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총선 선거공보물. 선거공보물에는 출마자의 학력·경력 등이 상세히 기재된다. <영남일보 DB>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다양한 이력의 출마 예정자들이 벌써부터 당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선거 특성상 그들의 이력은 상세하게 유권자 등에게 공개된다. 그중 적잖은 출마 예정자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학력’ ‘학벌’이다. 학력과 학벌 중심사회에 대해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선거에선 학력과 학벌이 여전히 민감한 문제인 듯하다.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하는 것은 백 번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간판 강박’으로 인한 학벌·학력 쌓기는 깊은 공허함을 남긴다. 정치인에게 정말 학력과 학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20대 총선 후보자 학력분석 결과
대학원이상 50% 고졸이하 2.7%
2014년 지선땐 고졸은 7% 불과
정치신인도 최소 대졸이상 학력

“인맥 쌓고 번듯한 명함도 필요”
일부 학벌세탁 위해 대학원 진학


◆학력·학벌로 등급매길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이미 고학력 사회다.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중 대학 출신자는 4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성인 10명 중 4명 이상이 대학 출신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지금처럼 대학 졸업자가 많아졌을까.

40년 전에는 성인 10명 중 0.7명만이 대학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산업화·정보화 사회를 지나면서 대학 출신자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게 대학 졸업장이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대학 졸업장은커녕 고등학교 졸업장도 귀한 시절이 있었다. 이 같은 시대적인 간극은 세대별 학력 간극으로 이어졌다. 이는 학력·학벌만으로 한 개인의 학습력이나 성실함의 정도를 정량화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1955년생인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SKY 대학’ 중 한 곳을 나오고, 외국에서 유학까지 했다. 그렇다면 강 장관과 같은 나이대 우리나라 여성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고 해서, 반드시 강 장관보다 학습력이나 성실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정보의 통제로 학습권이 제약되기도 했던 시절을 살았던 그 시기 여성에게 학력이나 학벌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매우 가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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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단체장은 고학력

우리나라의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의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최근 학벌이나 학력을 타파하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고학력 바람은 여전하다. 정치인 혹은 예비 정치인의 절대다수가 최소 대졸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들의 학력을 분석한 결과, 대졸이 379명(40.1%)으로 파악됐으며, 대학원 재학 이상이 전체의 50%에 달하는 472명으로 조사됐다. 대학교 졸업장만 있는 사람이 대학원 재학 이상 학력 소지자보다 오히려 소수인 것이다. 고졸 이하의 학력은 단 25명으로, 전체의 2.7%에 불과했다.

20대 총선 출마자 중 고졸 이하 학력은 19대 총선 때의 3.8%보다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역대 총선을 분석해보면 갈수록 후보자들의 학력이 높아진 경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보자만큼이나 당선자의 학력도 상당히 높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20대 총선에서 300명의 당선자 중 대졸 이상 학력(대학원 포함)인 사람은 모두 294명으로 전체의 98%에 달했다. 300명의 당선자 중 고졸 이하 학력 소지자는 단 4명에 불과했다.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2014년 제6회 전국 시장·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중 고졸 이하 학력은 전체의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모두 대학이나 대학원 출신 학력이었다. 앞서 제5회 시장·도지사 선거에서는 고졸 이하 학력인 후보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정치인의 학력·학벌, 간판 인맥 만들기?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한 인사의 ‘학벌’과 관련한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A씨는 지방의 한 사립대를 나와 서울 소재 대학원을 졸업했다. 나름 유명 대학원이었다.

그런데 A씨가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빼곡히 적은 문자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돌리면서 출신 대학만 쏙 뺀 것이 문제였다. 그 메시지에는 A씨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대학원은 있었지만 대학은 없었다. 이것이 단순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진실은 알 수 없다. 당시 이를 두고 수군대는 이도 있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겠나’라며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다. 출신대학이 정치행로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다고 보았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 아니겠냐는 것.

최근 취재진은 대구 한 기초단체의 내년 단체장 선거 출마 예정자의 학력을 살펴봤다. 전체 11명의 출마 예상자 중 10명이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였다. 행정이나 정책대학원 출신이 많았다.

왜 많은 선거 출마자들이 대학원 졸업장을 희망하는 것일까.

익명을 요청한 대구 한 정치권 인사는 “남들이 들으면 알만한 이름있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며 “그런데 정치를 하려니 좀 더 번듯한 학벌이 필요할 것 같아 대학원을 가게 됐다. 대학원에서 동기들과 인맥도 쌓을 수 있고, 동창회 등에도 참여할 수 있어 정치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순수하게 학업 목적으로 뒤늦게 대학이나 대학원으로 가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내년 대구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 예정인 한 인사는 “일부 학벌 세탁을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에 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정치 관련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며 “논문도 열심히 썼고, 수업에도 성실히 참여해 졸업장도 어렵게 받았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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