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 오른 고등어의 500리 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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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3면   |  수정 2018-01-05
■ 고등어가 간고등어가 되기까지
제주 바다서 잡혀 부산공동어시장 통해 육지 첫발
150여 부산 아지매의 일사불란한 손길 따라 분류
많을 땐 14만여 상자…국내 유통량의 80% 거쳐가
20180105
자정 무렵의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 24척의 운반선이 동시에 정박해 하역작업을 할 수 있다. 매일 밤 10시부터 거의 7시간 일당 용역 아지매들이 능수능란한 손길로 다양한 크기의 고등어를 상자에 분류해 담는다. 아지매의 열정이 밤을 밝히는 불빛보다 더 강렬해 보인다. 1963년 현재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태어난 공동어시장은 54년 전 이 자리로 이전해 왔다.

◆부산공동어시장 고등어 위판장

밤 10시7분발 부산행 KTX.

11시쯤 부산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넘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부산공동어시장으로 간다. 제주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 그놈들이 맨 처음 육지를 밟는 광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다.

목요일 심야의 충무대로. 차량도 인적도 드물다. 암흑가 같다. 부산공동어시장 주차장. 쇳가루 묻은 비릿한 밤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억척스러운 부산항의 근육질이 느껴진다.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적막강산. 도대체 고등어는 어딨지?

지나가는 한 아지매를 멈춰세웠다. 위판하역장(이하 위판장) 가는 길을 물었다. 묵묵부답, 그냥 손짓으로 길을 가리킨다. 금속성 쉰 목소리가 압권이지만 신산스럽다. 100여 걸음을 뗐다. 으악~. ‘일망무제(一望無際)’란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많을 땐 24척의 고등어 운반선이 접안해 14만여 상자 분량의 고등어가 이 위판장에 깔린다. 이렇게 많은 고등어는 생애 처음 본다. 이날 3척(대양호, 득명호, 통영호)의 운반선이 약 4만 상자 분량의 고등어를 내려놓았다. 평소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많을 때는 14만 상자 분량이 몰려온다. 연이틀 어황이 안 좋아서 위판장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래서 그날 밤 아지매들의 손길은 더 우렁찼다.

고등어는 한 척의 배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선단을 이뤄 잡는다. 국내에서 허가된 선단은 모두 24개. 이를 ‘대형선망선단’이라 한다. 선망(船網)은 사람이 그물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배의 동력을 이용해 그물을 둘러쳐 잡는 방식이다. 밀집성이 있는 어종인 고등어, 전갱이, 삼치, 오징어, 참다랑어 등을 잡는다. 현재 선주들은 대형선망수협 회원인데 부산공동어시장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다.

한 선단은 6척으로 구성된다. 본선 1척에 27명, 집어등을 밝히는 등선 2척에 16명, 고기를 하역장까지 옮겨주는 운반선 3척에 30명이 속해 있다. 어군탐지기가 장착된 본선과 등선이 이동 중 어군을 발견한다. 그럼 주등선이 어군의 가장자리에 불을 밝혀준다. 부등선이 본선의 선미로 와서 앞 고삐줄과 죔줄을 넘겨받아 고삐줄을 부등선 선수에 맨 다음 예인한다. 어로장의 투망 사인과 함께 부등선은 본선에서 분리돼 어군을 중심으로 우현으로 원을 그리듯 투망하면서 부등선이 있는 시작점까지 가서 부등선이 잡고 있던 고삐줄과 죔줄을 되돌려 받는다. 어군이 그물에 갇히면 운반선 3척이 어획물을 퍼 올려 위판장까지 운반하게 된다.

매일 조업을 할 수 없다. 물살이 센 월령기(매월 음력 14~19일)에는 조업하지 않는다. 고등어는 9~12월, 전갱이는 5~8월이 조업 적기. 하루 조업시간은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1회 투망 후 양망까지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날 111대양호는 239-2 해구(성산포~추자도 사이 조업구역)에서 14시간 넘게 걸려 위판장에 도착했다. 얼음 채워진 선창의 고등어. 하루 전에만 해도 제주해역을 헤엄치던 놈들이다. 선창이 오픈된다. 하역용 그물의 아랫단이 풀린다. 순식간에 트럭 화물칸이 한가득. 기사가 재빨리 적당한 곳에 부어주고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육체노동의 절정을 보여주는 리어카 아저씨가 판을 깐다. 산처럼 싣고 온 상자를 일하기 좋은 곳에 집어던져 놓는다. 베테랑은 리어카 한 대에 무려 250개의 나무상자를 쌓을 수 있다. 상자는 아지매 일하기 좋게 놓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지매로부터 육두문자 세례를 받는다. 일사불란한 150여 명의 아지매 손길은 재봉틀 바늘 못지않게 재바르다.

상자와 뒤섞인 고등어 더미. 자정을 넘어서자 모양이 잡힌다. 닥치는 대로 고등어를 담지 않는다. 대·중·소로 분류한다. 그게 기술이다. 작업자 중 남성은 없다. 백전노장 아지매들뿐이다. 그녀들은 작업장 올 때 나무작대기를 하나씩 지참한다. 쉽게 찍어 상자를 옮길 수 있는 작업용 쪼시개다. 굴 깔 때 사용하는 호미처럼 생긴 ‘조세’ 같다.

작업장 천장에 달린 조명등, 그리고 운반선에서 흘러나온 불빛, 멀리 영도와 송도의 아파트촌과 달동네 창문 불빛이 번들거리는 고등어의 검푸른 등에 쏟아진다. 건강한 불빛의 향연이다. 10분간 휴식. 여긴 원두커피 사각지대. 달달한 자판기 종이커피가 작렬한다. 밤참이 고프면 공동어시장 가장 후미진 데 자릴 잡고 있는 ‘후생식당’으로 간다. 5천원짜리 정식 뷔페가 허기를 채워준다. 식당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장사한다. 낮에 영업을 하는 구내식당에선 고등어조림정식도 판다.

위판장 바닥에 떨어진 신신파스 포장지가 이리저리 날려다닌다. 아지매들은 이 일에 이골이 났다. 남자도 감당키 힘든 고된 노역. 하지만 그 노역이 되레 그녀를 자유롭게 한다.

그녀들이 잠을 청하러 떠나면 오전 6시부터 경매가 벌어진다. 6명의 경매사와 100여 명의 중간도매인 간에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현재 국내 유통 80%의 고등어가 여기서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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