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입학하면 무조건 지급…일반 장학금엔 엄격한 기준 적용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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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9 07:35  |  수정 2018-03-29 09:50  |  발행일 2018-03-29 제6면
장학금으로 학벌주의 부채질하는 경북 지자체
20180329

명문대 간판만 따면 만사 오케이인가. 경북도내 상당수 지자체가 운영 중인 ‘명문대 진학 장학금’은 ‘in서울’ 명문대 입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앞장서 학벌주의·대학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자체의 실적주의 관행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들만의 리그’인 경북지역 지자체 장학재단의 ‘명문대 장학금’ 지급 실태를 살펴봤다.

◆특정 대학 입학생만 뽑아 장학금

A양은 올해 우수한 성적으로 지방의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수도권 대학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평소 적성에 맞는 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당당히 지방대를 선택했다. A양은 최근 거주지에 있는 장학재단에 장학금 신청을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 재단은 대학 신입생의 경우 특정 상위권 대학 입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A양은 “특정 대학 입학생만 뽑아 장학금을 주는 것은 분명 특혜라고 생각한다”며 “성적이 좋더라도 개인적 사정 때문에 상위권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4년제 대학에 입학한 B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방대 입학생들이 지자체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 위해선 성적·생활형편 등 엄격한 심사를 받는 반면, 일부 상위권 대학 입학생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대학 간판을 딴 것만으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며 지자체가 오히려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14개 지자체서 운영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통상 도내 지자체는 출연금·기탁금을 기반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성적우수·저소득·다자녀·특기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 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논란이 되는 것은 ‘명문대 진학 장학금’이다. 특정 초상위권 대학 입학생만 신청이 가능한 데다 다른 장학 분야에 비해 지급액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지방대생은 성적·생활형편 등
다방면으로 심사 통과해야
“개인사 탓 서울 못간 학생 많아”

일선 지자체 “인재 배출 위한
선의의 제도로 봐달라” 항변

구미시 여론수렴 후 결국 폐지


취재 결과, 경북지역 23개 지자체 가운데 14곳이 명문대 진학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명문대 장학금이 없는 지자체는 9곳(포항·구미·경주·문경·상주·칠곡·의성·영양·울릉)이다. 일반 장학금의 경우 성적·학교장 추천·소득 수준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지급하는 데 반해 명문대 장학금은 해당 대학에 붙기만 하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명문대만의 별도 규정인 셈이다.

경산시가 설립한 <재>경산시장학회는 장학생을 선발하면서 특정 대학 입학생을 따로 뽑고 있다. 올해 신청 대상은 경산지역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연세·고려·포스텍, 카이스트·유니스트·디지스트 등 7개 대학에 입학한 학생으로 제한돼 있다. 올해 1인당 200만원씩 총 5천만원(25명)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는 2018년도 전체 장학금 지급액(2억2천만원·11개 분야·260명)의 23%에 이르는 금액이다. 다자녀(50만원), 검정고시(50만원) 등 다른 10개 분야 장학금에 비해 훨씬 큰 액수다.

영덕군이 설립한 <재>영덕군교육발전위원회의 ‘서울대 사랑’은 각별하기로 소문나 있다. 성적 우수 신입생에겐 500만원의 포상을 지급하는 반면, 서울대 입학생에겐 1천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서울대 재학생에겐 졸업 때까지 등록금(연 2회)도 별도로 지급한다. <재>울진군장학재단은 2012년부터 주요 5개 대학 합격자에게 1인당 400만원의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5명에게 총 6천만원을 지급했다. 일반 대학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1인당 100만원에 불과하다. 김천시가 해마다 수억원을 출연하는 <재>김천시인재양성재단도 올해 상위권 대학 입학생을 따로 뽑아 1인당 300만원씩 총 7천500만원(25명)을 지급할 계획이다.

◆인재배출 관행 vs 학벌 조장

명문대 진학 장학금이 학벌제일주의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일선 지자체는 ‘지역 인재 배출을 위한 선의의 제도’로 봐달라고 항변했다. C군청 총무과 관계자는 “인재가 배출되기 어려운 지방에서 명문대 입학생에게 격려 차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특히 지방에선 지역 인재를 한 명이라도 더 배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D시청 관계자도 “명문대 장학금 외에 지역 대학 입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우수 장학금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을 차별하는 게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서울지역 최상위권 대학 합격생에게만 상대적으로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주는 것은 분명 ‘특혜’라는 지적이다. 구미 시민 E씨는 “지자체의 명문대 진학 장학금 지급은 한국사회 고질적 병폐인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지역 대학·인재 육성의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라며 “SKY대 입학생에 대한 특혜성 장학금 지급을 폐지하고 지역 교육발전과 교육 공공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안팎의 요구에 명문대 장학금을 폐지한 지자체도 있다. 구미시가 운영하는 <재>구미시장학재단은 2016년 서울대 진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을 폐지했다. 특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재단은 서울대 합격생에게 300만원을 지급했다. 또 ‘학부모가 반드시 구미에 주소를 둬야 한다’는 장학금 지급 기준이 있었지만, 서울대 합격생에 대해선 특혜성 예외 규정을 적용했다. 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민 지적이 잇따라 결국 재단은 서울대 특혜 조항을 삭제했다. 구미시 총무과 관계자는 “당시 시민 여론을 수렴해 서울대 진학 장학금을 폐지하고 특기생 등 다른 분야 장학금 혜택을 늘렸다. 지금은 대학에 관계없이 성적·생활 형편 등 기준을 적용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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