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송사에 지친 K2 주변지역 주민들

  • 민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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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30 07:19  |  수정 2018-10-30 07:19  |  발행일 2018-10-30 제3면
소음피해 청구시효 ‘3년 제한’
울며 겨자먹기로 릴레이 제소
‘無소송 배상’ 특별법 마련해야
소음기준 등고선 밖의 지역주민
전투기 굉음 시달려도 배상 제외
피해 측정 적정성 문제도 불거져

대구 동구 K2 공군기지 주변의 전투기 소음피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3년간 공군이 대구지역 소음피해 배상금으로 지출한 금액이 3천79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군 당국의 지출이 상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실제 피해주민에게 돌아가는 배상금은 1인당 180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더해 피해 배상을 둘러싼 소송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K2 기지 이전 진행 과정

K2 이전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은 2007년 동·북구 주민을 중심으로 ‘K2 이전 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하면서다. 위원회가 주민 서명(40만명) 등 K2 이전 운동을 활발히 펼친 결과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선공약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K2 이전은 번번이 좌절됐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3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국회가 군 공항 후적지 개발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군 공항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군 공항이전법)’을 제정한 것. 이 법에 따라 K2 공군기지 이전이 본격 추진됐고, 민간공항인 대구공항은 당시 ‘영남권신공항’ 건설 계획에 통합됐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2016년 6월 영남권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소음피해 주민을 비롯한 대구·경북 주민은 정부 결정에 거세게 항의했다. 그 결과 정부는 K2 이전과 동시에 대구공항도 함께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에는 ‘군위 우보면’과 ‘의성 비안면·군위 소보면’ 등 2곳을 이전 후보지로 선정했고, 현재 다음 절차인 이들 지역 주변에 대한 지원 계획을 논의 중인 상태다.

◆소음피해 소송 언제까지

K2 이전 운동과 함께 군 공항 소음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시작됐다. 하지만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 주민은 반복되는 송사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항공기 소음피해 소송 청구시효가 3년으로 제한돼 있어 소음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3년마다 다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로 인해 2010~2012년 1차소송 종결 이후 지금까지 3차소송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벌써 4차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배상 받을 길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소송을 이어오고 있지만 너무 지친다”면서 “소송 없이도 일정한 기준에 맞게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소음피해 소송을 수임하는 변호사들은 다음 소송을 이어가기 위해 위임장을 요구한다. 변호사 선임을 둘러싼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피해주민 1만여 명의 배상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지연이자 142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처럼 소음피해 소송이 각종 부작용을 낳자 주민들은 소송 없이도 소음피해를 배상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승대 K2소음피해대책위원장은 “현재 군용기로 인한 피해는 훨씬 큰 데도 법적 장치는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민간비행장과 함께 소음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특별법 마련을 위해 주민 서명운동 등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길 사이에 두고 배상 희비

법원이 정한 기준에 따라 소음피해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배상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 현행법상 K2 공군기지로 인한 소음피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은 등고선 안쪽으로 85웨클(WECPNL·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항공기 소음의 평가단위로 권장하는 단위) 이상인 지역 주민으로 제한돼 있다. 실제로 대구 북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경우 전투기 굉음으로 인해 땅이 울릴 정도로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정작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국방부와 법원이 정한 소음피해 기준 등고선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 김모씨(47)는 “전투기 여러 대가 아파트 위를 지나가면 주민끼리는 소리치듯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아이들도 수업을 들을 때마다 비행기 소리 때문에 수업이 끊긴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토로했다. 동구의 경우 불로동·입석동은 배상지역이지만 인근에 있는 복현동·효목동은 제외된다. 이차수 북구 소음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소음피해라는 것은 명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를 자로 잰 듯 선으로 구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군용비행장 소음을 규제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피해를 측정하는 방식을 유연성 있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경석기자 mea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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