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배우자”…자신감도 생겨 학업태도 긍정적 변화

  • 이효설
  • |
  • 입력 2018-11-07 07:43  |  수정 2018-11-07 07:43  |  발행일 2018-11-07 제13면
대구지역 ‘학교로 들어온 놀이’
“놀면서 배우자”…자신감도 생겨 학업태도 긍정적 변화
대구 남덕초등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거나 뒹굴며 놀고 있다. <남덕초등 제공>
“놀면서 배우자”…자신감도 생겨 학업태도 긍정적 변화
대구 동원초등 학생들이 교실 바닥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다. <동원초등 제공>

“와아~~ 비 온다!”

“보람아, 우리 우산 속에 들어가 흙장난하자!”

“우산 거꾸로 쓰기, 나뭇가지로 지렁이 잡기 놀이도 해볼까?”

지난 9월 비 오는 어느 날 오전 10시 대구 남덕초등 운동장 귀퉁이. 소나무 아래 자리잡은 ‘맨발놀이터’는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은 우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렁이를 찾아내고 있었다. 일부는 바닥에 난 풀을 뜯어 먹이를 기다리는 토끼와 닭이 있는 동물농장으로 냅다 달렸다.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한 아이가 건넨 풀을 토끼가 입을 오물거리며 먹자 친구들은 덩달아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었다.

대구에서 학생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학교가 늘고 있다. 학업 부담과 스마트폰 사용으로 놀이문화가 사라지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놀이수업이 새로운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놀이수업 새 교육법으로 주목
학생들 다양한 활동 하도록 해
행복감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

남덕초등, 매일 흙속 맨발놀이
느낀 점 시로 표현해 시집도 내
동원초등, 2시간씩 동아리활동
“논 뒤 공부하니 수업 때도 힘나”
교우관계 좋아지고 집중력 향상


◆놀이수업 학교가 늘고 있다

남덕초등에선 2교시를 마치고 나면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월~목요일은 30분, 금요일은 50분간 맨발로 마음대로 노는 것. 친구들과 같이 운동장을 걷고 뛰거나 흙장난을 한다. 또 흙 속 곤충을 만지고 이름 모를 풀을 관찰한다. 이 학교 문은희 교사는 “선생님이 ‘놀자’며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노니까 놀이에 더 집중을 한다”면서 “서로 싸우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다투더라도 스스로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놀면서 교우관계가 부쩍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한바탕 실컷 뛰어놀고 나서 아이들은 느낀 점을 각자 한 줄 시로 정리했다. 최근엔 이렇게 모은 글을 시집으로 내기도 했다.

이 학교가 놀이시간을 따로 배정한 데에는 ‘맨발 걷기’가 일조했다. 지난해 3월 학교 측은 모든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맨발로 운동장을 걷도록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선생님과 손 잡고 맨발로 운동장 흙 밟는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더 나아가 방치된 공간을 찾아 작은 맨발놀이터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늘져 있어 학생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도서관 뒤쪽 등 모두 6곳에 흙을 가져와 놀이터를 만들었다. 전교생 218명이 한꺼번에 놀이터를 찾아도 될 정도다. 올해는 ‘놀이 기반 수업 실천 선도학교’로 지정돼 학년별 놀이 기반 프로젝트, 놀이 동아리 활동, 놀이 기반 행사(놀이 기반 운동회·페스티벌·워크숍)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놀이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

대구지역 학교의 잇단 놀이수업 도입은 대구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초등놀이드림프로젝트’에 힘입은 바 크다. 현재 대구에선 놀이 기반 수업실천 선도학교 7곳, 놀이실천 행복학급 54학급이 운영 중이다. 초등생이 학교에서 놀이문화를 형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근본적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수업 또는 쉬는 시간에 놀이를 도입해 행복교육을 실천하자는 것. 앞서 201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어린이를 위한 국가적 놀이전략을 수립할 것을 한국 정부에 공식 제안한 바 있다.

동원초등은 하루 두 시간씩 놀이시간을 운영한다. 1교시 전, 3교시 전 각각 40분간이다. 학교는 이 시간을 ‘학생 자율놀이 교육과정’으로 정해 학교 교육과정과 함께 운영한다. 학생들은 댄스·하모니카·보드게임 등 동아리활동이나 스포츠클럽에 참여한다. 쉬는 시간에 플로어볼 스포츠를 즐긴다는 김명주양(가명·10)은 “학교에서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니 학원다닐 필요가 없어 좋다”면서 “신나게 놀고 공부하니까 수업시간에 힘이 난다”고 했다.

시지초등 이윤경 교사는 “좀처럼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 놀이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2학년 준형이(가명)는 등교 후 가방만 던져 놓고 학교 이곳저곳을 마구 뛰어다녔다. 아무리 타일러도 친구들과 같이 놀지 못했다. 그러던 준형이가 놀이시간에 컵쌓기, 공기놀이, 실뜨기놀이, 딱지치기에 집중하면서 확 달라졌다. 놀이가 끝날 때쯤 다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우리 내일 아침에 일찍 와서 도미노놀이 하자”고 말을 걸 정도가 된 것.

이 교사는 “도미노놀이에 흥미를 느낀 준형이는 어느 날 도미노 작품을 만들었고, 이제 놀이시간은 물론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며 “놀이에 흥미를 가지면서 친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자신감에 힘입어 학업에 대한 태도까지 긍정적으로 바뀐 사례”라고 설명했다.

◆놀이 속에서 배움을 얻는다

학교에서 놀이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학부모도 적잖다. 자유롭게 놀며 자연을 체험하고 싶은 동아리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자칫 공부 습관을 들이는 데 방해가 될까 걱정하는 것. 수업 중 놀이시간이 끼어 있으니 학업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면서 배움을 얻도록 하는 데 핵심이 있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수업에 놀이를 끼워 넣어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실과 수업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는 흐름에서 나타난 새로운 교육 방식의 하나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면서 “놀이수업에 관심을 갖는 교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효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