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희의 독립극장] 봉준호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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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9   |  발행일 2019-06-19 제30면   |  수정 2019-06-19
[서성희의 독립극장] 봉준호의 모험
오오극장 대표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개봉 18일 차에 이미 800만명을 넘었고 ‘N차 관람’의 열기도 식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1천만 영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보통 프랑스에서도 영화제 수상작이 흥행과는 별도로 인정받는 분위기인데, ‘펄프픽션’(1994) 이후 24년 만에 이 정도의 관객 반응을 끌어낸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는 소식이 들리며 역대 프랑스 개봉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프랑스에서 만든 두 번째 포스터에 박 사장(이선균)이 연교(조여정)에게 귓속말하는 장면에 마치 말풍선을 넣은 것처럼 “너 스포일러 하면 죽여버린다!”라는 카피다. 그만큼 프랑스 관객이나 언론조차 의식적으로 스포일러를 조심하는 분위기이니 오늘은 ‘기생충’에 대한 언급보다는 봉준호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중산층 아파트에서 벌어진 ‘강아지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지키는 정의의 상징인 개(짖는) 소리를 죽이려는 공포, 드라마, 판타지를 넘나드는 블랙 코미디 장르 영화다. 지금은 세상을 재치 있게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되지만, 당시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의 데뷔작은 “너무 안일한 구성” “알 듯 모를 듯한 패러디”라는 평가를 받으며 5만7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참패를 겪었다. 훗날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스토리텔링이 부족했던 영화로 자신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이 첫 실패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봉준호가 있었을까.

그래서 차기작 ‘살인의 추억’(2003)은 철저한 취재를 통한 실화 재구성에 초점을 뒀다. 솔 담배, 녹색 차량, 작은 소품까지 세심하게 비치하는 등 한국형 스릴러 장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52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후에도 봉 감독은 비슷한 아류를 만드는 대신 모험을 강행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괴물’(2006)에서는 한국영화의 약점이었던 컴퓨터그래픽(CG) 기반 영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쌓아놓고 공부했다.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괴물’은 괴수 영화의 불모지에 새로운 장르를 세웠다는 평가와 함께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도 성공한다.

다음 영화 ‘마더’(2009)는 국민 엄마 김혜자의 이미지를 바꿔놓으며 300만명, 계급사회의 부조리함을 비꼰 SF 기상재해 영화 ‘설국열차’(2013)는 936만명을 동원했다. 전작과 너무 다른 실험과 도전이 계속됐지만 흥행을 이어갈 수 있던 비결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탁월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의 힘, 그리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디테일함이 봉준호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와 한국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 ‘옥자’(2017)는 극장 상영한 영화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한다는 새 규정을 만들며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한 번의 모험을 강행했다. 그 결과, 그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으로 “가장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나’라는 틀에서 나와 항상 새로운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20년간의 모험이 결국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모험은 가능성이다.

오오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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