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트립 투 그리스'(마이클 윈터바텀 감독·2020·영국)…최고의 레스토랑 순례하는 꿈 같은 여행

  • 조현희
  • |
  • 입력 2024-03-22 08:00  |  수정 2024-03-22 08:01  |  발행일 2024-03-22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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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그리스 스틸컷. <네이버 영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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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시리즈는 모두 네 개다. 2010년에 개봉된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이탈리아(2014), 스페인(2017), 그리스(2020)까지. 국내 개봉은 순서도, 개봉 연도도 좀 다르다. 첫 번째인 '트립 투 잉글랜드'를 보고 특이한 여행 영화라 생각했다.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 되는 영화였는데, 무엇보다 두 남자의 끊임없는 수다에 놀랐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 두 배우는 어디까지가 대본인지 실제인지를 가늠하기 힘든 장면들을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과 끊임없는 수다, 아름다운 풍경, 이것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단순함이 또한 매력이다.

'트립 투 그리스'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작년 6월에 실행했던 버킷리스트 '그리스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리스의 흔적이 얼마나 들어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결론은 내가 갔던 곳과는 매우 다른 곳을 다녔다. '트립 투 그리스'는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터키 아소스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이타카로 끝나는, 오디세우스가 거쳤던 바로 그 길이다. 10년 여정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갔던 오디세우스처럼 두 남자도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10년여에 걸친 여행을 끝낸다.

이들은 6일간 6개의 유명 레스토랑을 방문하며,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 음식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쾌하지만 시시껄렁한 농담과 영화계 뒷담화, 유명 배우의 성대모사는 여전하다. 영화마니아라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다. 유머 코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을 스며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평처럼 이 영화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에는 예전의 영화 스태프를 만나 난민 캠프에 들르는 장면이 있다. 현 유럽의 고민을 담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기라와 세계의 중심 델포이, 그리스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 등을 순례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여행을 마저 끝내지 못하고 귀국한다. 롭은 그리스에 도착한 부인과 함께 남은 여행을 즐긴다. 우여곡절을 거쳐 각자의 가족과 화해하며 따뜻한 시간을 가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여행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란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마치 오디세우스의 여정처럼 말이다.

꿈과 여행은 같은 의미인 모양이다.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그리스 여행이 꿈을 꾼 듯 아득하다. 사진을 뒤지며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남는 건 역시 음식과 풍경, 함께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여행의 필수 요소인 세 가지를 훌륭하게 담아낸 셈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여행을 계획하거나 다녀온 이에게 기꺼이 추천할 만한 시리즈다. 단 두 남자의 끊임없는 수다와 성대모사에 거부감이 없다면 말이다. 소재만 던져 주었을 뿐 구체적인 대본은 없던 만큼 두 배우의 즉흥 연기에 많이 기댄 영화다.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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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기자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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