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25전쟁기 한국예술의 축소판 '한국전선문화관'

  •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사회 문화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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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9 08:00  |  수정 2024-04-09 08:00  |  발행일 2024-04-09 제21면

오동욱
오동욱(대구정책연구원 사회 문화연구실장)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대구는 전선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선문화(戰線文化)는 '6·25전쟁기에 피어난 문화와 예술'을 의미한다. 전쟁의 암흑기에서도 시인 구상·조지훈·박목월, 화가 이중섭 등 전국의 저명 예술인들과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 전선문화의 꽃을 피웠다.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 대구의 향촌동 일원은 피란 온 예술인들에게 창작과 생활의 공간을 제공한 스토리와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전선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시 문학·음악·연극·미술 등의 다양한 예술인들이 쌓아 올린 지층은 대한민국 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은 "6·25전쟁 때 소리 없이 사라진 예술인들의 흔적은 오늘도 대구 향촌동 거리를 걸으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대구가 전선문화의 중심이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대구시는 전쟁 당시 전국의 피란예술인들의 스토리와 흔적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거점 공간으로 삼고자 '한국전선문화관'을 개관했다. 한국전선문화관은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원도심에 입지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성로, 서쪽으로는 경상감영공원, 남쪽으로는 대구문학관, 북쪽으로는 대구콘서트하우스 등이 도보권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선문화관은 소실 위기에 놓인 원도심 근대건축물 보존을 위해 대구시가 매입한 옛 '대지 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탄생했다. 노후화된 과거 유산을 전선문화를 테마로 한 창의적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대구시 중구 향촌동의 대구문학관 뒷골목에 소재한 음식점이었던 '대지 바'는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 두 차례 오른 시인 구상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스토리가 담긴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당시 향촌동의 귀공자로 불린 구상은 이중섭 등 피란 예술인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피란문단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국전선문화관은 문자 그대로 '전선문화를 테마로 한 전시관'이다. 6·25전쟁기의 대구를 재발견하고 공간화한 것이다. 한국 전선문화의 발신지이자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서 무엇보다 대구근대역사관,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등 기존 시설과의 차별화가 중요하다. 전쟁 당시 한국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 대구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피란문화수도'의 상징공간으로 도심의 다른 문화유산을 연결하는 허브 기능이 필요하다. 대구문학관의 문학로드, 근대골목 투어, 인근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장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공간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선문화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대구에서 꽃피운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흔적과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문화 발전 DNA의 핵심 키인 '미래유산'으로 진화되어야 한다. 미래유산이란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래유산은 단순히 옛 기억을 재현하는 의미를 넘어서 과거의 의미를 되찾고 궁극적으로 도시 전반에 활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6·25전쟁기 대한민국 문화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던 대구의 전선문화(戰線文化)는 '대한민국의 시대성'과 '대구의 지역성'을 아우를 수 있는 대구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오동욱(대구정책연구원 사회 문화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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