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철원 한탄강 잔도길…수직의 바위절벽 아슬아슬 물 위를 걷다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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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9 07:53  |  수정 2024-04-19 07:54  |  발행일 2024-04-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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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직벽의 주상절리길.

그게 우연이었을까. 드르니 게이트를 지나 드르니 쉼터에 섰을 때, 먼저 강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에 목젖이 꿈틀했다. 그런데 그 시각 어느 여행객 휴대폰에서 소녀 가수가 부르는 아버지의 강이 들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아, 아버지 불러 봐도 대답 없이 흐르는 저 강은 아버지의 강이여'는 너무 애절해 나의 감정에 시나브로 물결이 일었다. 그렇다. 내가 나의 아버지를 불러 보아도 이미 강물처럼 흘러가신 분이 대답할 리가 없고, 오늘만은 왠지 내 자녀가 나를 아버지 하고 부를지라도 나는 대답 없이 흘러가는 저 강처럼 흘러, 아버지의 강이 되고 싶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비애의 감정에 애면글면 빠져드는지. 드르니 쉼터의 드르니는 '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후삼국시대, 태봉국을 세운 궁예왕이 왕건의 반란으로 쫓길 당시 이곳에 들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탄강과 자연이 빚은 수직의 경이로운 바위 절벽, 그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청록빛 강물은 마구 탄성을 지르게 한다.


절벽 중간 위태롭게 매달린 잔도길
인기 명소 급부상한 철원의 야심작



철원군이 야심작으로 만든 한탄강 잔도길은 어느 날부터 인기 명소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잔도길은 국민의 시선을 끌어모으면서 관광 특수효과를 단단히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국내 최고 수준의 명품 코스, 핫플레이스가 된 셈이다. 깎아지른 듯 아름다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만든 잔도길은 첫걸음부터 아찔하다. 한발 한발 걸을수록 오금이 저리고 스릴이 넘치며 짜릿하게 소름이 돋는다. 낭떠러지 아래는 청록색의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 강은 또 수직 절벽 협곡과 앙상블을 이루며 굽이굽이 흘러간다. 한 번씩 내려 볼 때마다 다리가 풀리고 후들거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과 협곡 주상절리가 보이고 몸은 허공을 헤엄치는 것 같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서기도 한다. 그러나 잔도는 기대 이상이어서 나의 눈길은 나의 내면 어딘가의 기쁨을 쳐다보기도 했다. 맷돌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는 맷돌랑 쉼터를 쉬지 않고 지난다. 오고 가는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이젠 잔도길이 겁나지 않고 오히려 희열과 두근거림을 준다. 이어지는 절벽과 밝은색 화강암 위에 검회색 주상절리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고 마그마가 화강암 틈새를 밀고 들어온 자국인 풀줄기 모양의 '암맥'도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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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서 본 한탄강의 비경.

민출랑 쉼터에서 잠시 쉰다. 민출랑은 전라도 사투리로 깎아지른 절벽을 뜻하는데, 한탄강 민출랑은 너럭바위 끝부분 경사진 여울 일대를 말한다. 근데 왜 전라도 사투리가 여기에 어김없이 접을 붙였을까. 도무지 아리송하다. 절벽을 따라 깔린 현무암을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물 소리가 귓등에서 말발굽 소리를 낸다. 너른 바위 쉼터를 지나고, 출렁다리인 주상절리교를 건너자 거기에 드르니 스카이 전망대가 나타난다. 반원의 돌출부가 강 쪽을 점유해 시야가 확 트이며, 유장한 한탄강이 두 눈 속으로 흘러간다. 몸은 허공에 떠 있다. 우리의 생명도 그 기원이 허공이며 하늘이었다. 우주는 텅 빈 무에서 출발, 유가 되었다가 종국엔 무로 돌아간다. 허공은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다. 돌단풍교와 쉼터는 그냥 지나친다. 철없이 피는 돌단풍의 유혹에 넘어가 앉게 되면 눈자위가 울긋불긋 물들 것만 같다. 비록 천천히 걷지만 금세 돌아나가고 하는 협곡의 에움길 잔도에 야릇한 통쾌감이 발바닥을 자극한다.


반원 돌출형태 드르니스카이전망대
바닥 투명유리 한탄강전망대 '아찔'



현무암교를 거쳐 동주 황벽 쉼터에 앉는다. 저쪽 편의 밝은 황톳빛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다. 원래는 아래쪽은 검은색, 위쪽은 황토색과 암갈색이지만 주상절리 벽은 햇빛에 의해 황톳빛으로 물든다. 동주는 철원의 옛 명칭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걷는다. 이제 주상절리 길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인 한탄강 스카이 전망대에 선다. 반원형으로 돌출된 잔도길을 덧대 붙이고, 바닥은 모두 투명한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강심장을 가진 사람도 전신이 얼어붙는다. 씨암탉 걸음으로 아기작 아기작 걷는다. 천연으로 만들어진 하얀 모래밭에 깎아내린 것 같은 절벽. 급류의 물살이 만든 기묘한 화강암 바위들의 풍경은 볼수록 신비하다. 여행객들이 환호를 터뜨린다. 돌아보면 약 40m쯤 절벽 중간에 위태롭게 매달린 하늘색 잔도가 협곡 절벽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감탄 또 감탄이다. 특히 발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 구조물을 지날 때는 그 아래 흐르는 청록색 강물로 간담이 서늘하다. 이렇게 짜릿한 탐험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트레킹에서 누리는 경험이다. 우리는 그 찬란한 물질문명 때문에 온갖 사람들이 영적으로 다 잠을 자며 꿈속, 이를테면 상상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 속에서 걷고 나의 실존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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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직벽의 수려한 비경.

아 한탄강, 한탄강은 금강산 아래쪽 추가령 지구대에서 발원하여 평강, 철원, 연천 전곡리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총길이 136㎞의 제법 긴 강이다. 본래 이름은 '한 여울', 즉 큰 여울이라는 뜻으로 이것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한탄강(漢灘江)으로 부르게 됐다. 그러나 이 한탄강은 궁예왕이 철원 땅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삼으면서 제빛을 발산하는가 싶더니, 후삼국의 다툼 속에서 국토의 3분의 2를 장악하던 그가 부하 왕건에게 쫓기어 이 강을 건너면서 눈물 어린 한탄(恨嘆)을 하였다고 한탄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북 분단의 상처와 아픔이 한탄강이라는 어감으로 상징화되고, 철원과 더불어 비운의 역사를 어부바하여 흐른다.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2번 홀교와 쪽빛소 쉼터도 지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잔도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바위그늘교와 샘소쉼터도 지나간다. 나는 걸을 때만 나의 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꿈은 항상 나의 발과 함께 움직이고 뻗어간다. 내 다리가 움직이면 나의 시간도 꿈으로 바뀌어 흐른다. 마치 저 한탄강처럼. 트레킹은 가장 자유로운 나로 돌아가 모태의(母胎)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주상절리 협곡·청록빛 강물 감탄사
한발한발 걸을수록 허공에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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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수평절리교도 지난다. 철원 한탄강에는 화강암이 가로로 깨진 수평절리가 많다. 땅속에 화강암이 숨겨져 있다가, 화강암을 덮은 다른 암석이 제거되면, 화강암이 재바르게 드러난다. 이때 화강암의 약한 곳이 깨지면서 생기는 것이 수평 절리다. 화강암교를 건넌다. 예로부터 한탄강 여울의 소리가 가마솥 끊는 물소리 같다 하여 구리소라고 불리는 구리소 쉼터에서 잠시 멈춰 선다. 트레킹은 자신만의 처용무다. 인간의 역사는 걸으면서 출발했다. 말하자면 '호모 워크스(Homo walkers)'다. 기술의 발달은 걷기의 퇴행을 가져왔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은 걸으면서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정말 어딘가에서 즐기기보다 걷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가 좀 더 걸어 나가 순담 스카이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제 날머리 순담 게이트는 지척이다. 여기의 경치는 별다르고 황홀한 절경이다. 휘어지는 절벽과 기묘한 형상의 기암괴석들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살이 더 빨라지는 곳이 '강의 허파'로 불리는 여울이며 산소를 많이 생산, 물을 정화시킨다고 한다. 나는 종일 걷고 또 꿈속 같은 잔도길을 발이 아프도록 다녔다. 오늘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너와 나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의 내면에서는 삼라만상이 하나이자 불멸이란 것을. 그리고 걸을 때 정신과 영혼이 생동하는 자유로운 자기가 된다는 것을.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 사진작가

☞주소 : 강원도 철원군 갈마읍 군탄리 산 174-3 드르니 주차장

☞트레킹 코스 : 드르니 게이트 - 드르니 스카이 전망대 - 철원 한탄강 스카이 전망대 - 순담 스카이 전망대 - 순담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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