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전세계 홀리는 'K-라면' (2) 중국서 밀가루 늘여 만든 납면, 일본 인스턴트 라멘 거쳐 한국의 라면으로

  • 조현희
  • |
  • 입력 2024-04-19 07:38  |  수정 2024-04-19 07:42  |  발행일 2024-04-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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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초기 광고.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은 국내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생각해 라면을 출시했다. <삼양식품 제공>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플랜트란스에서 농심 짜파게티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짜파게티 분식점' 팝업스토어에서 라면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도약기
중일전쟁 비상식량이던 납면
日사업가 치킨라멘으로 개발
삼양식품이 제조기술 배워와
1963년 한국 최초 라면 선보여

황금기
1980년대 신라면·너구리 등장
사발면·짜파게티 출시 다양화

전성기
유튜브 '매운맛 챌린지' 열풍
한류 타고 수출 효자품목 등극 


◆中→日→韓…삼양의 '치킨라면'이 시초

라면은 중국의 '납면'(拉麵· 라미엔)이 일본으로 전해져 라멘으로,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 라면이 됐다. 납면은 '끌어당겨 만든 면'이라는 뜻이다. 1930년대 중일전쟁 당시 중국 북방에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잡아 늘여 만든 납면이 중국군의 비상 식량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일본으로 전파됐다. 일본 닛신식품 창업자인 안도모모후쿠가 1958년 미군이 구호품으로 지급한 밀가루를 활용해 개발한 '치킨라멘'이 오늘날 인스턴트 라면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생산된 것은 1963년 9월15일이다.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초 전중윤 회장은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패전 후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눈여겨봤고,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경험이 있던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5만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려 일본 묘조식품의 라면 제조 기술 및 기계를 도입했다. 당시 라면 가격은 100g에 10원이었는데, 커피 한 잔이 35원, 김치찌개가 3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했다. 그러나 밥과 국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은 초기에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1965년 나온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은 '가뭄 속 단비'였다. 이 정책은 식사에서 주식인 쌀의 소비를 줄이고 혼식과 분식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이때부터 라면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음식으로 다가왔고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같은 해 롯데공업(현 농심)에서도 롯데라면을 생산했다. 1966년 연 240만개 팔리던 라면은 1969년 1500만개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베트남전 파병 장병들의 보급품으로 납품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1963년 총 42명의 종업원만이 몸담고 있었지만, 약 10년 후인 1970년 중반엔 무려 5천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거대 제조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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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 도약…신라면·짜파게티의 등장

1970년대가 라면의 도약기였다면 1980년대는 황금기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찾는 상품 다수가 이때 나왔기 때문이다. 절대빈곤 해소를 위한 기업인들의 의지, 급속한 경제발전 등으로 라면 수요 증가에 탄력이 더해지면서 제조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계속 출시하며 제품의 다종화에 주력했다. 삼양라면은 1980년대 초반에만 '뽀빠이면' '귀빈면' '떡라면' '라면1번지' 등을 선보였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의 '라면의 기원과 국내 보급의 역사'에 따르면, 이에 대항하는 농심은 기념비적인 제품을 출시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981년에 시판되기 시작한 '사발면'으로, 이는 용기를 개봉한 이후 물을 넣어 즉석라면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조된 제품이다. 이어 1982년에는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1983년엔 '안성탕면', 1984년엔 '짜파게티', 1986년엔 '신라면'을 출시했다. 특히 신라면은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을 받는 제품으로 2020년 국내 라면시장 전체 매출의 15.97% 규모로 1위다.

스포츠는 한국인의 라면 사랑에 더욱 불을 붙였다. 1984년 LA올림픽 1호 금메달리스트 레슬링의 김원기는 "조금이라도 양을 늘리려고 일부러 라면을 불려서 먹었다"라고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사상 최초의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관중석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도 세계에 중계되며 한국 컵라면이 널리 알려졌다. 한국형 컵라면은 1972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 봉지라면보다 두 배 비싼 가격으로 판매는 부진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컵라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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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신라면 컵라면을 구입한 관광객들. <농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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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만 유튜버 '영국남자'가 2014년 올린 '런던의 불닭볶음면 도전' 영상. <유튜브 캡처>
◆한류 열풍…미디어 통해 세계 각지로 쏙쏙

21세기 들어 세계화가 본격화된 가운데 한국의 라면은 'K-푸드'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액은 22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라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라면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30.1% 증가해 2억740만달러로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농심의 대표 제품인 신라면의 경우 2021년 처음으로 해외 매출(5천억원)이 국내 매출(4천3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신라면 국내 매출은 5천억원(41%), 해외 매출은 7천100억원(59%)에 달한다.

수출의 일등공신은 K-콘텐츠다. 전 세계 사람들이 유튜브 또는 넷플릭스 등의 OTT를 통해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접하면서 라면의 인기도 뜨거워졌다. K-라면은 단순히 제품만 알려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레시피와 재미있게 먹는 법까지 더해져 널리 퍼졌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원 안〉는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라면에 채끝살 등을 얹은 요리인데, 인스턴트 라면도 고급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K-라면 레시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에는 '라면땅'(끓이지 않은 라면 면을 양념 스프에 묻힌 것)을 먹는 장면이 등장해 라면 과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궁금증도 유발했다.

'먹거리 경험 소비' 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SNS, 유튜브 등에서 매운 음식 먹기에 도전하는 소위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매운 라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국내외 매운 라면 열풍을 선풍적으로 일으킨 상품인데, 신라면보다 매워 매운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이 먹어도 땀을 흘릴 맛이다. 구독자 590만명이 넘는 유튜버 '영국남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콘텐츠를 다루는 영국인 유튜버다. 2014년 불닭볶음면을 먹는 런던 사람들 반응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닭볶음면에 대한 궁금증, 시식 후기 등이 줄이었다. 이후 '불닭볶음면 먹기 챌린지'도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불닭볶음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출시 해인 2012년 1억원이 되지 않던 불닭브랜드 수출액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6천800억원을 달성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올해도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현지 영업마케팅을 강화하며 해외사업 성장세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수출 시장 다변화와 소스, 냉동식품 등으로의 수출 품목 확대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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