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영남이 잘못이라는 '수도권 선민의식'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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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6 06:54  |  수정 2024-04-26 06:57  |  발행일 2024-04-26 제26면
22대 총선 참패 국민의힘
패인 및 극복에 영남 지목
'영남 2선 후퇴론' 재등장
영남의 지지 이유는 물론
수도권 정서부터 정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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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압도적인 국민의힘 지지의 대가는 '비난'이었다. 그것도 같은 당에서 말이다. 비판이나 비아냥도 아닌 완벽히 지역을 무시하는 말들로 상처를 줬다.

인천 출신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지난 18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은 영남을 향해 있었다. 윤 의원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 "'영남 중심당'의 한계"라고 지적했으며, 김재섭 당선자는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영남 정서를 기준으로 수도권 선거를 치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토론회에서 한 정치컨설팅 업체의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는 영남 의원들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후 22일 열린 두 번째 토론회서도 "영남이 보수를 지켜줘서 고맙게 생각한다"는 해명을 했지만 '영남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한 교수는 영남 보수당과 수도권 보수당 분리라는 극단적 가정까지 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영남이 당 지도부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2선 후퇴론'을 폈다. 지역구 90석 중 59석을 영남에서 당선시켰는데도 지역은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으니 물러나라는 식이다. 그럼 대체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까지 영남이 이번 선거에서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이들은 총선 패배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번 선거 패인은 명백히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지속된 당정 갈등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 정도는 국민의힘이 참패한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나오기도 했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나 고물가 등 정부의 실정도 분명 선거 패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심지어 선거를 이끈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원희룡·나경원·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 모두 수도권 출신이거나 선거를 수도권에서 뛰지 않았나. 윤재옥 원내대표가 있다고 영남 탓이라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수도권의 영남 탓에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것을 잘 안다. '영남 탓'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20대 총선부터 3번 연속으로 패했다. 그때마다 '영남 자민련'을 극복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영남의 2선 후퇴론이 등장했다. 선거 패배 후 어김없이 비대위 구성 및 전당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구성에 TK가 아닌 수도권 인사가 필요하다고 나온 것이 영남 후퇴론이다. 지금의 영남 탓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묻고 싶다. 영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 지지받는 이유를 더 깊게 고민하고 이를 수도권에 적용시켜야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대체 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영남은 안된다는 식의 말이 쏟아지는가.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 선거가 치열하지 않다는 비판은 이해한다. 그리고 수도권에 의석수가 많으니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도 동감한다. 하지만 영남 출신이 당의 전면에 나서면 안 되는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선이 쉽게 되다 보니 지역 정치인들은 부족하다는 것인가? 수도권에 전체 의석수가 많으니 아무리 영남에서 많이 당선돼도 수도권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인가? 대체 수도권의 정서는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무엇이 특별하고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남은 선거들을 이기기 위해 영남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 없이는 '수도권은 영남 위에 있는 특별한 지역'이라는 선민의식이 깔렸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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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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