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신년 운세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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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04   |  발행일 2013-01-04 제23면   |  수정 2013-01-04
[자유성] 신년 운세

토정 이지함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로 아산 현감을 지냈으며 천문, 지리, 복서(卜筮)에 능통했다. 이지함이 명기 황진이가 유혹하려다 실패한 유일한 인물 서경덕의 문하생이었던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지함이 쓴 ‘토정비결’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도참서(圖讖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불후의 저서라는 수사(修辭)가 어색하지 않다.

토정비결은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 등을 따지고 주역(周易)의 음양설에 기초해 144개의 괘(卦)를 만들어 누구나 생년월일만으로 간단하게 일년 열두달의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게 정리한 책이다. 토정비결이 나온 후 정월 초승이면 그해의 운세를 알아보는 것이 민간의 세시풍속이 될 정도였으니 토정비결에 담긴 신통력이 당시 백성들의 심중을 꿰뚫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회원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남성의 68.3%와 여성의 69.9%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신년 운세를 점쳐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철학관, 점집 위주에서 신수(身數)를 알아보는 방법이 더 다양해지고 디지털화된 것도 자연스러운 조류다. 20·30대를 겨냥한 타로카드 점, 사주카페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고, 앱을 이용한 운세풀이도 유행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앞날의 운수나 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게 가능한지, 운은 하늘에서 점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조화(造化)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미궁이다. 청나라 작가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가 하면, GE를 위기에서 구해낸 경영의 달인 잭 웰치는 “자기 운명은 자기가 지배하라”고 일갈했다. 포송령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고, 잭 웰치는 운도 본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조를 내비쳤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운에 대한 철학은 매우 중립적이고 함축적이다. “운이라는 것은 기회와 준비가 만나는 순간이다.”

박규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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