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광화문 현판

  • 입력 2013-01-07   |  발행일 2013-01-07 제29면   |  수정 2013-01-07
세종대왕 좌상·이순신 동상
광화문, 대한민국 상징공간
한자현판 결정은 시대 역행
우리글 한글로 원상 회복을
20130107
이상규<전 국립국어원장>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대선이 끝났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문화재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쓴 광화문 현판을 떼내고 한자로 쓴 현판으로 바꾸기로 결정을 했다는 최종 발표가 있었다. 이 문제가 대선 정국의 흐름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국민에게는 아무런 일이 아닌 듯 가볍게 지나가는 것 같다.

문화재청에서는 공청회를 거쳐 문화재위원들의 거수투표로 결정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한글날 국경일 공휴일 지정을 위해 노력하던 한글학회를 비롯한 단체 대표들은 문화재청장의 검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보수공사를 시작하면서 이미 40여년이 지난 문화재급인 한글 현판을 왜 떼내었는지, 그리고 새로운 현판을 한글로 할 것인가 한자로 할 것인가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로 국민 여론을 두 갈래로 찢어놓을 것이라는 예상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싱징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광화문 현판을 바꾸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이 스스로 분란을 야기시킨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이 이번 결정을 내리는 동안에 한자 혼용과 교육을 주장하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한국어문회’ ‘전통문화연구회’ ‘한자교육국민운동연합’ 등 4개 단체가 연합한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결성되어 ‘국한문체혼용체 전용’과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공교육 실현’을 내세우며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국어기본법’ 제14조에는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뿐만 아니라 외국어도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문자로 지정되어 있는 한글 이외에 한자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한글날 국경 공휴일 지정을 이끌어내고, 또 한글 광화문 한글 현판을 지지하던 한글학회(회장 김종택)를 비롯한 한말글문화협회(대표 이대로) 등 한글단체 대표들과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측과의 공청회와 토론회 과정에서 다시 한글파-한자파의 대립은 더욱 또렷해졌다.

광화문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모든 백성의 의사소통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좌상과 호국을 상징하는 이순신 동상이 있는 곳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이 일대를 조선어학회 33인을 현창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마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한글’을 주제로 한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미 50여년이 지난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로 쓴 ‘광화문’ 현판은 이미 문화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광화문이라는 문화 공간에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에서 이 현판을 떼낸 이유부터 석연치 않았다. 원상 유지를 고수했으면 생겨나지 않을 찬반의 논란과 그로 인해 국민 여론을 둘로 갈라놓는 상처만 남게 되었다.

문화재청은 현재 지정되어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립박물관을 포함한 사설박물관에 한글 유서, 고목, 배자, 수기 등 많은 한글 고문서와 자료를 관리할 전문 인력은 거의 없다. 한문 전적이나 문서자료도 중요하지만 한글 고문서나 내방가사, 한글고소설 등 엄청난 한글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에 손 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가문의 국가지정문화재들이 뿔뿔이 흩어져 매각되거나 심지어는 해외로 유출되고 있음에도 그 어떤 대책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의 정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기증식을 한 실적 위주의 졸속한 우리나라 문화 정책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통합시키는 데 힘을 쏟아도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글전용이라는 국가 정책을 결정하던 당대의 책임 있던 총리나 장관들이 이제 시대정신을 역행하면서 오히려 국민 여론을 분란시키는 데 앞장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토착민들의 말씨조차도 문화유산으로 확대하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펼쳐야 할 문화재청이 도리어 국민 여론을 분란시키는 데 일조하거나 올바른 지향점이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광화문 현판 문제는 정부 스스로가 앞장서서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적 판단의 결과이며, 우리의 현대사를 왜곡한 상징성을 함의하고 있는 데 대한 중대한 오류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청이 소수의 문화재위원의 의견을 등에 업고 내린 이번 결정은 더 논의할 것도 없이 광화문 보수공사 이전의 원상태로 즉각 되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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