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마스터·사이드 이펙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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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12   |  발행일 2013-07-12 제40면   |  수정 2013-07-12

★ 마스터 : 혼돈의 시대에 ‘절대자의 의미’ 심도있게 파고든 수작

[신작대결] 마스터·사이드 이펙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또 한 번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준비했다.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석유채굴이 한창이던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역동적인 삶을 담았다면,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마스터’는 전쟁이 가져다준 혼란과 혼돈, 한편으로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 1950년대를 그 배경으로 삼았다. 정신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던 시기에 절대자의 의미를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마치 미국인들의 심리 보고서 같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전쟁이 끝난 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어느 날 술에 만취해 호화 유람선에 탑승하게 된 그는 거기서 운명적으로 랭케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를 만나게 된다. 추종자들에게 ‘마스터’로 불리는 랭케스터는 최면과 인터뷰 등을 통해 심리를 연구하는 코즈 요법을 창안한 인물. 랭케스터가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는 프레디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는 데 프레디가 필요한 랭케스커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후 랭케스터 가족의 일원이 된 프레디는 그들과 여정을 함께한다.

‘마스터’는 미국 현대사회의 내면을 예리하게 관통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인장이 선명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가 평소 천착해 왔던 인간, 가족, 종교, 자본 등의 묵직한 소재도 그렇거니와 미학적 완성도가 바탕이 된 감각적인 연출은 여전히 강렬한 기조를 유지한다. 그가 이번에는 사회의 혼돈과 잔인함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보다 더 큰 어떤 것을 붙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프레디와 랭케스터의 미묘한 관계가 그 중심이다. 프레디는 사랑하는 도리스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 것이 두려워 도망치듯 전쟁터로 떠났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랑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에 그의 마음은 더욱 황량하다. 이처럼 정신적 궁핍과 방황으로 차츰 무너져 가는 프레디에게 “자신을 지배하라”며 설파하는 랭케스터의 사상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희망의 빛이 됐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현대사회의 멘토-멘티관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랭케스터의 곁에 머물수록 믿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역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과의 균열과 전쟁의 트라우마로 내면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프레디지만 사실 그는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런 프레디만이 다른 형태의 공허를 느끼고 있는 랭케스터의 본질을 알아차리게 된다. 랭케스터와 프레디는 그 점에서 서로의 과거이며 현재, 미래와 같다. 관계의 시작은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지언정,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약점을 메우고 소통한다.

‘마스터’는 결국 불안과 혼돈의 시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확신과 신념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동시에 사랑이라는 원형에 대해 끝없이 결핍과 불안을 느껴 도망치는 인간 심연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랭케스터는 “그 어떤 마스터도 따르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발견했다면 알려 달라”고 프레디에게 말한다. 혼란의 중심에 스스로 발을 디딜 용기를 낸 자만이 자기 인생의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프레디 역시 마스터의 곁을 떠나 자신의 오랜 불안이자 트라우마였던 사랑하는 여인 도리스를 만나러 가고자 용기를 내고, 자신으로부터 더는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과거와 현재 모두와 마주하는 프레디로 다시 서기로 한 것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관조하듯 보여주는 ‘마스터’는 그렇게 폴 토마스 앤더슨의 손을 빌려 성공적인 결과물로 완성됐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환상의 연기 호흡은 그 원동력이 됐다. 시종일관 취한 듯한 말투와 위태로운 몸짓 하나하나까지 보여준 호아킨 피닉스의 놀랍고도 섬세한 메소드 연기는 물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미묘한 내면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두 배우는 ‘마스터’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연출과 연기, 영상미가 완벽히 어우러진 보기 드문 수작이다.


★ 사이드 이펙트 : 살인 부른 신약 부작용…지적 호기심 자극하는 스릴러

[신작대결] 마스터·사이드 이펙트

에밀리(루니 마라)는 우울증 환자다. 투자전문 회사 간부인 남편 마틴(채닝 테이텀)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그가 내부자 거래 등의 죄로 옥살이를 하게 되고, 그 사이 홀로 남겨진 그녀는 우울증을 얻었다. 마틴이 감옥에서 출소했지만 에밀리의 우울증은 여전하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도 우울감에 못 이겨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하던 그녀는 정신과 의사 뱅크스(주드 로)를 찾아가 신약을 처방받는다. 그 후 우울증이 호전되는가 싶더니 신약의 부작용인 몽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에밀리.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을 칼로 살해한다. 하지만 그녀는 약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사이드 이펙트’는 ‘부작용, 혹은 역효과’를 뜻한다. 영화는 이로 인한 희생양이 에밀리임을 인지시키려는 듯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에 주목한다. 그녀의 불안한 행동과 표정만으로도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미스터리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에밀리가 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는지, 또 언제부터 몽유병 증세를 보였고, 왜 남편을 죽였는지 등 그녀를 둘러싼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반부는 이처럼 약의 부작용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경고하듯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그러나 마틴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인물 구도 역시 에밀리와 뱅크스가 그 중심이다. 에밀리에게 처방해준 약의 부작용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의 화살은 뱅크스에게 돌아간다. 이후 뱅크스는 그동안 쌓아온 의사로서의 안정적인 삶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뱅크스는 에밀리가 단순히 약의 부작용으로 살인을 한 게 아니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문제는 의사로서 신뢰를 잃은 그의 말을 아무도 믿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순간, 범죄 스릴러의 대가로 불리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장기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속도감도 빨라진다. 뱅크스는 에밀리의 처방 약으로 문제의 신약을 추천한 에밀리의 전 주치의 시버트(캐서린 제타존스)가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상업 광고로 일반인에게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은 신약을 뱅크스에게 추천했다. 뱅크스는 그녀 말대로 에밀리에게 신약을 처방했고, 그 약을 복용한 에밀리는 부작용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 때문에 시버트 역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음모론의 피해자이자 피의자가 된다.

‘사이드 이펙트’는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미묘하고 어두운 심리를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촘촘히 담아 간다. 인물들의 심리적인 서사 구도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외형적인 화려함과 규모는 이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치 않다. 대신 사회를 향한 날선 시선은 시종 견지된다. 미국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의약품산업과 의사의 오류 등을 스릴러 장르를 빌려 넌지시 꼬집는다.

역시나 이야기 구성 능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스티븐 소더버그답다. 치밀한 플롯과 리얼리티를 더한 스릴러 구성은 그의 회심의 역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또 다른 장기는 작품에 걸맞은 캐스팅 능력이다. 이미 톱스타를 대거 기용한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를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놀라운 성공을 이뤄냈다. 이번 영화 역시 주드 로,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캐서린 제타존스 등의 캐스팅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그중 가장 주목할 건 바로 루니 마라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통해 루니 마라만의 완벽하고도 매력적인 리스베트를 탄생시켰듯, ‘사이드 이펙트’에서도 그녀는 실제와 연기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에밀리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어느 것이 진실이며 어느 것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일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릴러적 긴장감과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영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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