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4] 이진수 원광대 교수와 청백다례원 배근희 원장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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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5   |  발행일 2014-04-15 제24면   |  수정 2015-03-25
은은한 차향서 우러나오는 깊은 사제의 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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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세계차문화축제조직위원회 사무실에 마련된 다실에서 차를 마시며 차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원광디지털대 이진수 교수(왼쪽)와 대구세계차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청백다례원 배근희 원장. 이지용 기자 sajahu@yeongnam.com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표현한 말로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불서(佛書)인 ‘벽암록’에 실린 고사성어로,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려 쪼아대면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 껍질을 쪼아줘 부화를 돕는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댈 때와 어미가 밖에서 부리로 알 껍질을 깨뜨려주는 행위가 딱 맞게 일어나야 병아리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안팎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작용할 때 무언가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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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차연구·교육 매진해온 배 원장님
말이 제자이지 스승이나 다름없는 분”


“올해 9회째 맞는 대구국제차문화축제
아이디어 준 이 교수님 덕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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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열린 차관련 행사에 참여한 대구세계차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배근희 위원장(왼쪽 넷째)과 원광디지털대 이진수 교수(왼쪽 다섯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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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대구세계차문화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배근희 조직위원장(앞줄 왼쪽 넷째)과 이진수 교수(앞줄 왼쪽 다섯째) 등 축제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티엑스포 제공>


청백다례원 배근희 원장(76·대구세계차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오랫동안 지역 차문화계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차인이다. 30년 넘게 차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온 그는 대구·경북을 전국에서 차인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만들고, ‘차의 도시’ 하면 대구·경북을 떠올릴 정도로 차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 2006년에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국제적 규모의 차 박람회인 대구국제차문화축제(티엑스포)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이 행사는 단순히 차를 취미로 마시던 데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차와 관련해 지역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배 원장이 2004년 차를 좀 더 심도 있게 배우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이 학과는 200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차경영과 관련된 학과로 개설됐다. 당시 이 학과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이진수 교수(54). 국제차문화학회 회장, <사>국제티클럽 총재 등을 통해 차 관련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는 차인이다.

“2004년 첫 입학생을 모집하면서 전국에 있는 유명 차인들을 쭉 훑어보고 입학을 권했습니다. 배근희 원장님도 존함이 널리 알려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때 처음 뵙고 입학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차문화가 우수하고 차인들의 활동도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문적 체계가 부족하고 학술적 정립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늘 이를 안타까워하던 배 원장은 처음 본 이 교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예순 중반의 나이에 새롭게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 20년 넘게 해오던 차 공부를 나이가 훨씬 어린 교수들에게서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배 원장은 고심 없이 대학입학을 결정했다.

“차 공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우선 입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어떻게 젊은 친구들과 공부를 같이 할 거냐며 만류했지만, 차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다니 걱정보다는 신이 더 나더군요.”

이렇게 원광디지털대에서 학사과정을 밟았던 배 원장을 이 교수는 ‘학생들 중 첫손에 꼽을 정도로 열성적인 분’으로 기억했다. 배 원장의 대학 입학이 인연이 돼 여러 차 행사에서도 자주 만나게 됨으로써 점점 긴밀한 사이가 되었던 두 사람은 국내외 차 연수에도 여러 차례 동행했다.

“어느 해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배 원장님과 함께 중국으로 차 연수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밤새워 시험공부를 하던 배 원장님을 보며 대학교수인 제가 오히려 배운 점이 많습니다. 말이 제자이지, 모든 면에서 저의 스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육순 학생과 50대 교수로 만나
국내외 차연수 동행 등
소통과 교류 통해 정보 교환
연륜과 아이디어 어우러져
차문화 발전위해 왕성한 활동


이만이 아니다. 여름방학 과제 중 차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어보는 ‘동다송’ ‘다신전’ ‘다경’의 원문을 쓰고 음과 풀이를 적는 것이 있었는데, 가장 완벽하게 해온 학생이 바로 배 원장이었다. 이렇게 칭찬의 말이 쏟아지자 배 원장은 “청백다례원을 운영하면서 내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던 책이었기 때문에 더 애정이 갔다. 그리고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정성을 들여 숙제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덕분에 배 원장은 외손주와도 친해지게 됐다며 웃음 섞인 말을 건넸다.

“그때 외손주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손주와 함께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같이 공부를 하면서 손주와 공부친구가 됐지요. 손주에게 여러 가지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공부했지만 공부의 새로운 재미에 빠져든 배 원장은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대학원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예다학과로 진학했는데, 대학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가서 공부를 해야 해 매주 한 번씩 전북 익산까지 다녀와야 했다.

“대학원에 가는 날은 차를 왕복 열 번은 타야 됩니다. 오가는 시간도 7~8시간이 걸렸지요.”

자가운전을 하지 않는 배 원장은 집에서 택시로 동대구역까지 가서 거기서 대전까지 기차를 탄다. 대전에서 내려서는 택시로 서대전까지 간 뒤 다시 기차를 타고 익산에 도착한다. 그리고 익산역에서 대학까지 다시 택시를 탄다.

“일흔이 되던 해에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처음에는 몸살이 나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 맞더군요. 이것도 만성이 돼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여동생과 제자 한 명 등 세 명이 함께 공부했는데, 매주 여행하는 것처럼 공부하러 갔습니다.”

여동생과 제자도 배 원장이 이끌어서 대학 및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었다. 배 원장은 이들 뿐만 아니라 10여명의 제자를 원광디지털대와 원광대 대학원에 진학시켰다. 또 자신의 뒤를 이어 차 공부를 하는 딸(김길령 대구세계차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사무총장)과 손녀(최여진)까지 진학시켜 딸은 박사학위를 받고, 손녀는 올해 석사 졸업 후 곧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이 교수는 이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 꾸준히 제자, 가족을 입학시키는 배 원장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차 공부도 전문가들이 하지 않습니까. 이런 전문분야는 자신의 제자들을 다른 스승에게 배우도록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많이 보내주시니까, 그 넓은 마음과 배려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 끝에 이 교수는 한 번 마음을 주면 변치 않는 의리와 진실성, 몸소 배우기를 즐겨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성실성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에서는 제자이지만 마음속으로는 한 번도 자신이 스승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 오히려 배 원장이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이 교수의 말에 배 원장은 손사래를 치면서 “차와 관련해서는 최첨단을 걷는 이 교수에게 배우는 점이 너무 많다. 대구에서 국제차문화축제를 지난해까지 여덟 번이나 연 것도 모두 이 교수 덕분”이라고 말했다.

배 원장은 2006년 대구국제차문화축제라는 타이틀로 차박람회를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열어 매년 5월 개최하고 있다. 이 사업을 열도록 아이디어를 준 사람이 바로 이 교수다.

“차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박람회를 열 필요가 있습니다. 대구는 여러 가지 조건에서 차박람회를 열면 좋을 만한 곳이지요. 그리고 이런 대형행사를 열 능력이 있는 배 원장님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배 원장님이 이 일을 하면 성공하리라 확신이 섰습니다.”

이 행사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매년 규모를 키워가 이제는 전국적인 차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오는 5월22일부터 25일까지 엑스코에서 개최된다. 이 박람회는 기호식품이던 차를 집에서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카페, 호텔 등에서도 손쉽게 즐기고, 차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 커피, 1만5천달러를 통과하면 와인, 2만달러를 넘으면 차를 즐긴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차가 한국에서 더욱 인기를 끌고 차산업이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요.”

이렇다 보니 아들뻘 되는 이 교수가 하는 말은 모두 믿고 따른다는 배 원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차 연륜은 배 원장이 깊지만 차를 새로운 문화로 창출하려는 아이디어는 상대적으로 젊은 이 교수가 훨씬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 전문가라는 공통의 요소는 있지만 그 안을 좀 더 세밀히 파고 들어갔을 때 부족한 부분들을 사제지간인 이들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공유하고, 나아가 발전적으로 이끌어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진짜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두 사람은 모두에게 스승이다. 단순히 차에 대한 배움을 얻는 스승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가치와 존경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스승인 것이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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