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배달 전문 밥집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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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5   |  발행일 2014-07-25 제36면   |  수정 2015-01-30
장보기·조리·배달 ‘1인3역’…당신의 고된 수고 덕에 꿀맛 만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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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전 휴게소에서 부려놓고 먹는 아침 식사. 오전 7시 최학수 사장이 논공휴게소에서 ‘다경산악회’ 회원들에게 밤새 준비한 밥과 국, 반찬을 퍼주고 있다. 시간 딱 맞춰 갓 준비해 온 덕에 여전히 뜨끈뜨끈 김이 오르는 아침밥은 빗방울이 듣는 가운데 우산을 쓰고 먹어도 그야말로 꿀맛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웃으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안 하면 안 되는 일을 한다.” 김지연, ‘혼자 산다 재미있다’ 中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 네 가지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돈은 안 되고, 일은 고달프고,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 남들은 다 편히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런가,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 때….

그럴 때는 잠시 일손을 놓고 먼 곳을 바라보자. 세상에는 무려 1만1천655개의 직업(직업명 기준, 2012년 한국직업사전)이 있고, 나의 힘겨움은 그중 하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1/11655에 해당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내일 아침 관광버스 4대
 모두 몇 인분이야?
 넉넉잡아 230인분
 국 끓이고…나물 하고…
 밤새워 만들어야 한다”

◆요리, 배달, 장보기까지 혼자서 하는 1인 식당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관광버스 4대가 예약돼 있거든요. 1대에 50~60명쯤 되니까, 넉넉잡아서 230인분! 오늘 밤에 다 만들어야죠.”

시간은 벌써 오후 6시. 게다가 개수대엔 먼저 참으로 나갔던 국수 그릇이며 김치 그릇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내일 나갈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려면 저 산더미 같은 설거지부터 해치워야 할 것 같은데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시장 문 닫기 전에 빨리 장부터 봐야 해요. 주문을 다 해놨으니까 후딱 가서 실어오기만 하면 되거든요.”

설상가상 첩첩산중이라더니, 주문은 뭣같이 받아놨는데 며칠 전 주방일을 도와주던 사람은 일이 힘들다며 갑자기 일을 그만둬 버렸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급한 마음에 칼을 잘못 놀려 손가락까지 베었다. 시장 가는 길에 약국도 들러야 할 판이다.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작은 식당. 최학수 사장(53)이 경산시 사동의 작은 골목길에 ‘시골 밥집’이라는 소박한 간판을 내건 지도 벌써 2년째다.

“근처 공사장에 아침밥 배달을 하니까 오전 7시쯤 나와요. 아침 배달 끝나면 오전 10시에 아침 참이 나가고, 점심때는 점심밥 배달이 한 4~5군데 있고, 오후 3시면 참 배달하고…. 그러고 나면 하루가 끝나는 거죠. 그야말로 ‘밥하고, 배달하고, 그릇 찾아오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또 밥하고, 배달하고, 그릇 찾아오고…’가 하루종일 무한 반복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일의 아주 평범한 일과일 뿐. 주말이 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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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전문 밥집 ‘시골밥집’의 최학수 사장. 회사식당에서 밥하는 일을 하면서 주말이면 부업으로 등산회원들의 아침밥 배달을 시작했다. ‘어차피 나도 등산을 가니까 우리 산악회 밥은 내가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차츰차츰 입소문이 나 주문 물량이 많아지면서 아예 산행 배달 전문 밥집을 차리게 됐다.

◆주말마다 심야 식당? 등산밥을 위한 밤샘 작업

“주말엔 등산밥 주문이 총총총 잡혀있어요. 음식이란 게 미리 해놓을 수 없고 먹기 직전에 갓 해야 밥도 고슬고슬하고 나물 같은 것도 향이 살아있거든요. 좀 있으면 우리 산악회 언니들이 재료 다듬는 것 도와주러 오기로 했어요. 빨리 주방 사람을 구해야 할 텐데….”

마침내 구세주 같은 산악회 언니 둘이 도착했다. 그러자 일손은 덜었지만 가뜩이나 좁은 식당이 더 좁아졌다. 이걸 다듬으려면 저걸 내려놓아야 하고, 저걸 썰어내려면 이것부터 치워야 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는 할 수 없는 좁디 좁은 주방 구조…. 이런 곳에서는 욕심도 자리할 곳이 없는 모양이다. ‘이제 배달 주문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돈 많이 벌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최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꿈이 별로 안 커요. 그냥 일할 때 엉덩이 안 부딪히고 일할 수 있는 조금 넓은 주방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기 주방엔 둘이 못 들어오니까.” 그 말을 듣고 나자, 갑자기 취재진의 몸피라도 빠져줘야 할 것 같았다.

벌써 밤 10시. 이만 촬영을 접으면서 내일은 몇 시쯤 나오면 되냐고 물었더니 배달 가기 전, 아무 때나 오면 된단다. 국 끓이고 오징어 삶고, 포장까지 다 하려면 밤새도록 가게에서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면 대체 얼마나 버는 걸까. “등산밥은 한 사람당 밥값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한 차 분량으로 계산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한 그릇당 2천원? 얼마 안 남아요.” 잠시 계산이 되지 않았다. 200인분을 만든다 했을 때 한 그릇에 2천원이면 다 남아도 40만원이다. “그러니까 주문을 많이 받아서 많이 팔아야 제가 좀 남는 게 있어요. 주문 전화가 밀려올 땐 그래서 기분이 좋죠. 그런데 막상 장 봐다가 일하려고 보면 ‘아이고, 우예 다 할꼬?’ 한숨이 절로 나와요. 오늘 저녁도 죽었구나.”

그래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쉬엄쉬엄 내가 알아서 일할 수 있는 내 가게가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고 한다. 허리를 다쳐서 일을 빨리 못해내기 때문에 남의 집 일할 때는 늘 마음이 더 고단했다.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공간. 누군가에게 행복은 참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아침밥 배식 후 함께 떠나는 속 든든한 산행

진짜로 가냐고 놀라서 물었더니, 진짜로 간다고 했다. 잠 한숨 못 잤는데 함께 등산을 가겠다는 최 사장. 산악회 회원들의 배는 든든히 채워주고, 정작 그는 입이 쓰다며 밥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어이 지리산행에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쉬는 거예요. 이렇게 쉬어야죠. 버스에서 조금 눈 좀 붙이고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밥이 달아요. 그러면 또 일주일 신나게 일하는 거죠.”

사실 한 시간 전, 새벽 식당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참 고단해보였다. 밤을 새워 음식을 다 싸놓고 집에 가서 세수만 하고 왔다 했다. 배달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약 20분.

“이럴 때 뭐하냐고요? 그냥 멍하게 앉아 있어요. 누우면 잠들지 싶어서 시계만 내내 쳐다보고 있는 거죠. 그러면 서글픈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힘들고, 꼭 이래야 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배달까지 다 해주고 집에 가서 탁 누우면 또 그 생각이 싹 없어진다니까요. 참 희한하죠?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일에 자신감도 붙고….”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렇게 고단하고 막막한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의 인생이 내 속에 숨어 있는 ‘나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나를 격려해줄 수 있도록 한 단계 넘어서는 시기.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고단한 일상을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무사히 산을 내려오면 밥 입맛이 달 것이다.

글=이은임 방송작가 sophia9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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