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돗토리시 돗토리사구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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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26   |  발행일 2014-09-26 제38면   |  수정 2014-09-26
10만년이 빚어낸 풍경…황금빛 모래언덕, 그 너머엔 눈 시린 바다

모래의 시작은 높은 산의 화강암 덩어리. 거기에서 깨져 나온 큰 돌덩이가 굴러 내려와 계곡이나 강바닥에 앉는다. 큰 비가 내리면, 돌덩이는 조금씩 조금씩 하류로 움직인다. 그러는 동안 바위는 돌멩이가 되고 자갈이 되고 더욱 부서져 모래가 된다. 바다 속의 모래는 파랑과 연안류가 밀어내 해안선에 쌓이고, 바람이 다시 내륙으로 밀어낸다. 그렇게 산에서 강을 타고 온 모래와 바다에서 바람을 타고 온 모래가 만나 솟구치고, 낙하하고, 쌓인 것이 모래언덕, 사구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돗토리시 돗토리사구
10만년의 시간이 쌓아 올린 모래언덕, 일본 돗토리 사구. 천연기념물이자 특별보호지구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돗토리시 돗토리사구
제2 사구열인 ‘말의 등’과 오아시스. 말의 등 높이는 48m 정도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돗토리시 돗토리사구
모래미술관 전경. 3층 규모로 거대한 모래 조각품을 전시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돗토리시 돗토리사구
모래미술관 내부. 매년 주제가 다르며 올해의 주제는 러시아다.


◆ 10만년의 시간이 쌓은 모래 언덕

울산에서 동쪽으로 400㎞ 정도 직선을 그으면 돗토리에 닿는다. 일본의 43개 현 중에서 가장 작은 돗토리현의 현청 소재지다. 이 작은 도시는 그들이 일본해라 부르는 동해에 접해 있다. 그 동해 해안에 거대한 모래언덕인 돗토리 사구(砂丘)가 있다. 동서로 16㎞, 남북으로 2㎞인 일본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다.

돗토리사구의 모래는 주고쿠 산맥의 화강암에서 시작되었다. 돌덩이는 센다이 강을 타고 해안으로 왔다. 여기에 파랑과 바람을 타고 온 동해의 모래가 더해졌다. 강 하구를 중심으로 길게,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높이, 10만년의 시간이 쌓였다. 사구의 최대 높낮이 차는 90m에 이른다.

보통 돗토리사구는 강 동쪽의 하마사카사구를 가리킨다. 버스 등의 정류장과 식당, 선물가게 등 여러 시설이 있는 사구 관광의 중심도 동쪽 입구다. 하마사카사구는 세 개의 사구열이 동해와 평행을 이루는데, 그중 제2 사구열을 ‘말의 등’이라 부른다. 동쪽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말의 등’이다.

멀리서 보면 기대만큼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모래를 밟고 저 앞의 언덕으로 향해 갈수록 무섭게 대단하다. 입구에서 모래언덕까지는 약 300m. 평지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기복이 많다. 모래는 살아있어서 자꾸만 걸음을 붙잡고, 몸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영원에 묶인 듯하다.

◆ 말의 등에 오르다

그리고 문득, 모래언덕이 눈앞을 막아선다. 가파른 사면을 기어오른다. 초속 5m의 바람이 모래 위에 풍문(風紋)을 그린다. 풍문은 바람이 만드는 물결 같은 모래의 결이다. 두 걸음 오르면 모래의 결이 한 걸음을 밀어낸다. 절대로 쉬지 않고, 조용하고, 확실하게 밀어낸다. 모래언덕을 오르는 일은 지난하고 고단하고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반복이다.

마침내 말의 등에 오른다. 오랫동안 늙은 기분이다. 저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동해다. 갑자기 신선해지고 무척 젊어진다. 뭔가 해내고야 말았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뒤돌아본다. 까마득한 아래에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저 평평하고 둥그런 모래밭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고 가느다란 물줄기에 의지해 푸른 것들이 자라있다.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양분을 갖지도, 공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구의 내부에는 수분층이 있고, 물은 모래알 사이를 잘 흐른다. 이런 특수한 환경에 적응한 사구 식물은 16종, 그들은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 채 경쟁하지 않는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의 소원’은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그리고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모래언덕에 흩어져 앉아 바다를, 모래를, 오아시스를 바라본다. 어른도 아이도, 노인도 젊은이도 아무 말이 없다. 사구는 가을의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장소다.

◆ 모래로 만든 조각, 1년을 살다 다시 모래로

돗토리사구에는 입구가 여럿 있다. 주 입구는 동쪽 입구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서쪽 입구에는 사구를 노래한 기념비들이 있다. 동쪽 입구에서 10분 거리인 북쪽 입구에는 모래 미술관이 있다. 전 세계의 유명한 모래 조각 작가들이 모여 오직 모래와 물로만 조각한 작품을 전시한다. 매년 주제가 다른데 올해의 주제는 러시아, 테마는 ‘대국의 역사와 예술의 도시를 찾아서’이다. 모래로 만들어진 크렘린궁과 시베리아철도를 비롯해 20여 편의 모래 조각이 내년 1월4일까지 전시된다. 모래조각은 완성된 순간부터 조금씩 무너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래의 모래로 돌아간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돗토리에서 버스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요나고에 공항이 있다. 인천에서 주 3회(화·금·일요일) 취항한다. 일정이 맞지 않다면 오사카에서 이동한다. 버스로 3시간30분. 돗토리시에서 사구까지는 버스가 있지만 관광객을 위한 천엔 택시를 추천한다. 3시간 동안 원하는 곳을 둘러볼 수 있고, 4명까지 탑승 가능하다. JR돗토리 역 안의 관광센터에서 예약하면 된다. 모래미술관 관람료는 어른 600엔, 학생 300엔이다. 돗토리사구에서는 모래 위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 낙서 방지 조례에 따라 적발 시 5만엔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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