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그곳 .2] 봉화 분천역(하)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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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8   |  발행일 2014-10-28 제13면   |  수정 2014-11-21
빛을 잃어가던 마을에… 열차는 또 한번 ‘기적’을 울렸다

‘간이역, 그곳’은 중부내륙 관광열차(O-트레인과 V-트레인)가 경유하는 경북지역 주요 간이역의 변천사와 서민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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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열차 V-트레인은 경북 분천역~강원 철암역 구간을 왕복 운행하며 백두대간의 속살을 뚫고 천천히, 계곡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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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역 들머리에 있는 ‘향수 수퍼’.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탄광과 벌채일로 분천역이 흥성하던 시절에 2층은 다방이었고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외지인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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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역 마당에는 호랑이 인형이 바위 위에 엎드려 있다. 일명 ‘아기백호열차’로 불리는 협곡 열차의 마스코트로 처음에는 고양이가 진짜 호랑이인 줄 알고 역 마당에 오질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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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역은 지난해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의 연을 맺고, 역사의 외관을 스위스 풍으로 새 단장했다.


#1. 역전통 들머리 향수 다방 소사

분천역의 들머리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향수 수퍼’가 있다. 주황색 지붕의 2층집은 56년 전에 세워졌고 26년 전 지금의 주인이 인수했다. 2층은 처음부터 다방이었다. 향수 다방. 분천의 모든 마을을 합해 하나밖에 없는 다방이었다. 커피 한 잔이 500∼600원 하던 시절, 다방의 36개 의자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분천의 다섯 마을(5리)을 다 합쳐서 유일한 다방이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죠. 초등학교가 있어서 학교 선생님도 오셨고. 소재지 분도 많이 왔어요. 면 직원도 가끔 오시고, 동네 유지급은 모두 여기 와서 시간을 보냈죠. 외지 사람도 많이 와서 사무실처럼 놀다갔는데 그래도 거의 단골 손님이었죠.”

“선거 때 되면 사람들로 꽉 찼어요. 그땐 차 한 잔 사주는 건 다 했으니까.”

“큰아들이 대학 다닐 때였어요. 하루에 60∼70명 정도 손님이 있었는데 혼자 했어요. 한 달에 40만∼50만원쯤 벌었나 그랬죠.”

#2. 벌채 쇠퇴하면서 역도 쇠락

석탄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벌채일이 쇠퇴하고, 사람들도 떠났다.

“오는 사람도 뜸해지고, 빈집이 늘어나니 경기가 나빠질 수밖에. 철도 대신 도로가 발전하면서 경기는 더 나빠졌어. 바로 직선이 다 돼 버리니까. 이 모든 게 동시다발로 일어났어.”

1980년대 후반, 탄광이 줄지어 폐광하면서 열기 가득했던 마을은 빛을 잃어갔다. 동시에 흥성했던 분천역은 쓸쓸해지고, 벅적했던 역전통은 조용해졌다. 식당도, 아가씨도 하나둘 떠났다.

분천장도 사라졌다.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생선을 실은 트럭이 오기 시작했고, 부식을 가득 실은 트럭이 산길을 달려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침 역 마당에서 벌어졌던 해산물 장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때때로 기차를 타고 춘양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목욕하고, 머리하고, 춘양장 보고 그래 올라고.”

호시절 천하무적으로 달렸던 ‘지무시 트럭’은 춘양목을 대신해 낙엽송과 참나무 잡목을 실었다. 나이 먹은 트럭은 ‘구르릉’ 힘을 모아 벌목 현장을 누볐다. 좋았던 시절은 그렇게 짧게 끝이 났다. 기차뿐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그 기차에 몸을 실었고, 그 기차를 타고 시집을 오고, 자식을 대처로 보냈다. 시간은 흘러 기차역에는 바람만 가끔 불어 수양버들을 스산하게 흔들었다. 역마을은 오래전 그랬듯 잔잔한 능호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소년도 나이 들어 고단했던 삶과 좋았던 기억만이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3. 조용하던 분천역의 새로운 비상

“요즘엔 사람 천지야.”

“하도 많아서 혼차 계산도 다 못해.”

“차도 많이 오고 버스도 많이 오고, 53년 만이라.”

고요하던 산골 오지의 간이역이 사람 천지가 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국토의 허리인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태백, 중앙, 영동선 구간의 257.2㎞를 순환하는 중부내륙 순환열차인 O-트레인과 그중 핵심 구간인 봉화의 분천과 양원, 승부, 그리고 태백의 철암 구간을 잇는 협곡 열차 V-트레인이 생기면서다. 협곡열차의 출발지가 바로 분천역이다.

협곡열차는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총 27.7㎞, 시속 30㎞로 1시간 10분가량 달린다. 백두대간의 속살을 뚫고 천천히, 계곡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기차는 디젤 화물차를 개조해 개방형 사파리 트레인을 콘셉트로 꾸몄다. 기관차가 호랑이 얼룩무늬라 ‘아기백호 열차’라 불린다.

객차는 진한 핑크색으로 큰 창이 풍경을 시원하게 끌어들인다. 객실의 모니터에서는 풍경이 다가오고, 열차 후방의 통창으로는 풍경이 멀어진다. 맨몸으로 협곡 사이를 유영하는 시간이다. 각 차량은 테마를 달리해 꾸며 놓았다. 아이들을 위한 곳, 가족과 연인을 위한 공간, 카페도 있다.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고, 터널을 지날 때면 천장에서 야광 별빛이 쏟아지기도 한다. 화물차를 개조한 것이라 화장실이나 에어컨은 없지만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계곡의 청정한 바람이 있다.

분천역 마당에는 커다란 호랑이 인형이 바위 위에 엎드려 있다. 역사 입구는 백호 두 마리가 지킨다. 협곡 열차 아기백호의 마스코트인 셈이다.

“첨에는 동네 고양이가 역 마당에 오질 못했어요. 인형이 진짜 호랑이인 줄 알았나봐. 한참 지나서야 슬금슬금 주위를 배회하더니 이제는 배짱이 생겼는지, 실체를 알았는지 맘대로 와요.”

지난해 5월23일에는 한국과 스위스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분천역과 스위스 체르마트역이 자매의 연을 맺었다. 체르마트역은 스위스 빙하특급열차가 출발하는 역으로,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출발하는 분천역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분천역 역사의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새로 단장했다. 지금 향수다방은 희미해진 옛 간판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부는 수리되어 민박집이 되었다.

“역에서 간판도 못 바꾸게 해요. 우리 가게가 여기 ‘뽀인뜨’라꼬.”

마을 입구에는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이 만들어졌고 민박집도 많이 생겼다. 금강송이 적재되던 터에는 먹거리 장터가 문을 열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운영하는 식당이다. 새벽 이슬 맞으며 따온 산나물로 만드는 비빔밥, 저녁부터 콩 삶아 새벽녘에 만들어 낸 김 솔솔 나는 두부, 손으로 직접 간 감자로 부친 전, 고소하고 알싸한 동동주. 모두 청정 산골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만든 먹거리다.

“전부 우리가 먹던 거지, 우리가 키운 거고. 요즘 들어 살맛이 나. 사람 구경도 하고. 이제야 사는 거 같애.”

마을을 휘감고 있는 낙동강에서 물놀이하는 이들도 있다. 역에서는 자전거나 전기 자동차를 빌려 시골길을 달리는 이도 있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은 운행 1년6개월 만에 관광객이 27만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분천역을 찾는다. 한때 태백산맥을 횡단하던 산업 열차는 이제 여행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다. 문. 전. 성. 시, 분천역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공동 기획: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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