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군 왜관읍 매원마을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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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16   |  발행일 2015-01-16 제38면   |  수정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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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왜관읍 매원마을 전경. 전면은 백연지와 상매, 왼쪽 끝은 중매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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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의 골목길. 왼쪽은 광주이씨 재실인 사송헌과 박곡 선생 신도비, 정면 상부는 서당이다. 오른쪽 담장 안에는 양옥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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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입향조인 석담 이윤우가 강학지소로 지은 감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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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여 이동유를 추모하는 용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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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은 매원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해은고택, 왼쪽은 지경당, 오른쪽은 중방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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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북한군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던 지경당. 19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이 있다. 나지막한 산 아래에 기와를 얹은 집들이 낙낙하게 자리하고, 그 앞으로 천이 흐른다. 마을과 천 사이에는 그리 크지 않은 전답이 둥그스름하게 놓여 있다. 밭에는 포도나무가 줄지어 겨울잠 들었고, 그 뒤로 비닐하우스들이 푸른 것들을 키우고 있다. 참외로 보인다. 마을은 매화 꽃잎이 떨어진 모양새의 땅이라 했다. 옛 사람들의 분류법으로 ‘매화낙지형’ 땅, 그래서 매원(梅院)이라 이름 붙은 마을이다.

장원 급제한 사람 많아
'장원방'이라 불리기도

6.25전쟁의 포연 속에
민가는 거의 소실
재실·사당만은 화 면해


◆‘삼거리 슈퍼’에서

매원2리 버스 정류장이 마을 입구를 알린다. 그 옆에 ‘삼거리 슈퍼’가 있다. 슈퍼의 안집은 120년이 넘은 건물이라 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슈퍼는 마을의 사랑방이었고, 우체국이었고, 방송국이었고, 길 묻는 이들이 찾아드는 복덕방이었다 한다. 슈퍼에는 동네에 한 대밖에 없던 전화기가 있었고, 전화가 오면 방송을 했다. 어느 댁 누구 씨 전화 왔소, 어느 댁에 전보 왔소, 하는 주인장의 음성이 마을 곳곳을 울렸을 터. 지금 슈퍼 진열장은 텅 비었고, 순한 눈의 얼룩 강아지가 조르르 나와 객을 맞는다.

슈퍼 앞에 서면, 매원 마을의 거의 전체가 조망된다. 매원은 상매, 중매, 서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슈퍼의 왼쪽이 서매,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서 중매와 상매가 이어진다. 마을에는 처음에 야로송씨와 벽진이씨가 살았고, 1623년 인조 원년에 광주이씨 석담 이윤우가 매원으로 이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슈퍼 왼쪽의 약간 언덕진 자리에 ‘감호당’이 있다. 광주이씨 입향조인 석담 선생이 세운 강학지소다. ‘감호당’에 오르면 마을 앞을 흐르는 동정천이 바로 아래에 보인다. 선생은 이곳에서 쉬고, 풍경을 즐기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인 이도장에게 물려주었다.

마을은 이조판서, 대사헌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장원급제한 사람이 많아 ‘장원방’이라 불리기도 했다.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 반촌으로 불렸고, 하회의 풍산류씨, 퇴계 집안인 진성이씨, 양동의 여강이씨 가문과의 혼인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최대 번성기는 1905년 무렵으로 그때 마을에는 400여 채에 이르는 가옥이 즐비했다 한다.

◆포연이 지나간 자리, 살아남은 고가들

‘삼거리 슈퍼’에서 중매를 바라보면, 목재의 속살 빛이 생으로 드러난 집들이 많이 보인다. 근래에 새로 지어진 집들이다. 매원마을은 6.25전쟁 때 거의 폐허가 되었다. 피란으로 텅 빈 마을은 북한군에게 점거당했다. 그들은 박곡종택에 지휘부를 설치하고 박곡 이원록의 후손인 이이종이 건립한 지경당을 야전병원으로 운영했다. 북한군 지휘부가 자리한 마을은 집중 포격되었다.

민가는 거의 다 소실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재실과 사당은 대부분 화를 면했다. 현재 마을에는 광주이씨 재실인 관수재, 석담 이윤우를 추모하는 귀후재, 아산 이상철을 추모하는 아산재, 그리고 덕여 이동유를 추모하는 용산재, 그리고 박곡종택, 박곡불천위사당, 사송헌, 해은고택 등이 있다. 중매와 상매에는 이도장의 둘째 아들인 대사헌 박곡 이원록의 자손이 살면서 불천위를 모신다고 한다. 상매의 흙돌담 길 운치가 깊다. 그러나 고택의 대부분이 잠겨 있고 개들이 무섭도록 짖어 찬찬히 둘러 볼 수가 없다.

◆마을에 퍼져 있는 대팻밥 냄새

상매 앞에는 연못이 있다. 백연지다. 마을 사람들은 연을 심어 소득을 얻는다고 한다. 매원1리 마을회관 옆에는 ‘희망마을 체험관’이 있다. 최근에 준공된 한옥으로 연밥과 연차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매원마을은 체험형 전통한옥마을로 정비되고 있다. 고택들을 차례로 복원하고, 전선을 땅에 묻고, 시멘트 길을 걷어내고 흙길을 만들 계획이다. 복원의 기준은 6.25전쟁 이전이다. 나아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고택들은 하나씩 문화재로 평가받고, 장차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로 지정 받고자 하는 것이 매원마을의 10년 계획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이들은 목수들뿐. 통나무가 잔뜩 쌓인 가운데에 한 아저씨가 신중하고 느리게 나무를 다듬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집의 뼈대가 세워지고 있다. 작은 산을 이룬 대팻밥에서 구수하고 단내가 난다. 꽁꽁 언 백연지 위에 대팻밥 냄새가 퍼져 있다. 흙돌담 길에도, 잡풀 무성한 고택의 마당에도, 빨가벗은 듯한 새 집들 속에도. 매화가 필 때까지는 이 대팻밥 냄새가 매원마을의 얼굴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왜관IC로 나간다. 왜관방향으로 가다 매원 네거리에서 우회전, 동전천 따라 계속 가면 매원2리 버스정류장과 삼거리 슈퍼가 있다. 버스정류장 옆에 감호당이 자리하고, 그곳에서부터 ‘서매’다. 삼거리 슈퍼의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서 중매, 상매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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