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물금읍 용화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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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  발행일 2015-05-01 제38면   |  수정 2015-05-01
기찻길 옆 절집…이곳에서 굉음은 고요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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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21분 용화사 마당 앞, 원동역을 떠난 기차가 물금역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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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91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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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년에 창건된 용화사. 정면이 대웅전. 좌측은 요사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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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산신각. 199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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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종무소 뒤편으로 낙동강으로 향하는 터널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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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아래 터널을 통과하면 낙동강과 나루를 만난다. 강 건너는 김해 원동이다.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은 급강하길을
정수리에 땀을 흘리며 따라서 가면
작지만 기품 있고 정갈한 용화사가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의 석조여래좌상은 보물이다

원동, 물금, 아주 낯익은 이름들이다. 물금에서 원동으로 넘어가는 1022번 지방도를 달리며, 언젠가 대구에서 구포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낙동강변을 달리며 만났던 작은 역의 이름이 그랬다는 것을 기억했다. 스무 해도 더 전이건만, 그 찰나의 만남을 쉽게 떠올렸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했다. 길은 산을 타고 몹시 굽어지며 올랐고, 저 아래에는 낙동강이 커다랗고 뿌옇게 펼쳐져 있었다. 길의 마루 즈음 용화사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것은 강으로 곧장 하강하는 낭떠러지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찻길 옆, 용화사

정수리에 땀이 솟는다. 앞으로 꼬꾸라질 것만 같은 급격한 하강이다. 이런 길가에도 제법 덩치가 있는 절집이 들어서 있고 손바닥만 한 밭도 웅크리고 있다. 멀리를 볼 정신이 없으니 강이 보이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다 살짝 감겨드는 길이 계류를 건너면 착지다. 생각보다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산그늘이 반쯤 드리워 있다. 강은 보이지 않고, 마당의 가장자리에는 기찻길이 낮은 담처럼 돋우어져 있다.

절집 입구 양쪽에 요사채와 종무소가 있다. 대웅전과 산신각은 철길 너머 가로놓여 있을 강을 향해 서있다. 작지만 정갈한 기품이 있다. 용화사는 조선 성종 2년인 1471년 통도사의 성옥(性玉) 스님이 창건하고 미륵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산신각은 1990년대에 지었다. 산신각의 기단 아래에는 석탑 하나와 비석 2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그 연원에 대한 소개는 없다.

가까이 다가가면 강아지가 짖을 뿐, 경내에는 서늘하고 맑은 공기만이 조용히 퍼져 있다. 도착 때보다 산그늘이 조금 작아진 오전 9시 21분. 어느 소읍의 종탑이 울리듯, 적막을 깨며 기차가 지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적막이 돌아온다. 푸른 새벽, 용화사 앞마당을 지나는 첫 기차는 사물(四物)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보다 이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것은 소음이 아닌 운판과 목어와 법고와 범종이 세상을 깨우는 소리와 같을 것이다.

◆석조여래좌상과 아미타불회도

대웅전은 전면 4칸, 측면 2칸이다. 칸이 좁아 전체가 매우 아담하다. 안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중앙에 모셔져 있다. 보물이시다. 부처님은 팔각의 연화 대좌에 무게감 있게 앉으셨고 광배는 약간 손상되었지만 넓게 치솟아 있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표정이다. 여래불과 마주하고 있으면 대웅전은 더욱 좁게 느껴지고, 심해에 꽁꽁 묶여 엄청난 수압을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00여 년 전인 14세기 무렵, 강 건너 김해의 고암마을에 살던 한 농부가 낙동강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을 발견한다. 기이하게 여겨 건져 내 보니, 바로 이 석조여래좌상이었다고 한다. 불상은 김해의 상동면 감로리에 있는 옛 절터에 모셔두었는데, 성옥 스님이 용화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원래는 노천에 모셨다고도 하고, 또 다르게는 낙동강 변에 나뒹굴고 있었다고도 하는데, 1947년 용화사 법당을 중수하면서 주존으로 봉안했다는 이야기는 겹친다.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벽에는 붉은색으로 채색된 아미타불회도가 있다. 선정에 든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석조여래좌상의 광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1849년에 금암당 천여, 응월당 선화, 채종, 두성, 완기 등 다섯 사람이 제작한 것으로 지난해 경남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터널을 통과하면 낙동강

떠나려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종무소 뒤쪽 아래로 난 좁장한 길과 까만 아치형 터널을 발견하고 되돌아선다. 터널은 낮고 좁고 어둡고, 꼭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을 것만 같은 상태지만 의외로 쉽게 지날 수 있다. 후다닥 통과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먼저 키 작은 봄꽃들이 환하게 피었고 풍성한 강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양산 물 문화관이 강변에 자리해 있다.

강 건너는 김해 상동이다. 여래좌상을 저 강 너머에서 옮겨 왔다고 했다. 물금과 상동을 연결하는 나루가 있었을 것이다. 용화사 하류에는 물금나루가, 상류에는 개목나루가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는 커다란 부표 같은 간소하고 이름 모를 나루가 있다. 발돋움하면 철길 너머로 용화사 산신각의 지붕이 보인다. 기찻길이 놓이기 전 용화사가 가졌을 풍경을 상상해 본다. 오전 9시 52분, 기차가 지나간다. 강바람 산바람 헤치고, 고요와 상상의 순간을 깨고, 그러나 반갑고 어쩐지 뭉클한 기차가, 그리고 서운하게 멀어진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대구부산 고속도로 물금IC로 나간다. 물금읍 방향으로 가 원동, 삼랑진 방향 1022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산길 왼쪽에 용화사 이정표가 있다. 종무소 뒤쪽에 강변으로 가는 터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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