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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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9   |  발행일 2015-05-29 제38면   |  수정 2015-05-29
‘원시와의 소통’…이곳에선 상상력이 날개를 편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둥글게 풀이 난 지점 위 가로 10m, 세로 3.7m 정도의 바위 면에 2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 상부는 상고시대의 기하학적 문양이, 하부에는 신라 시대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대곡리 공룡 발자국 화석 지대.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반구대 암각화의 상류. 현재 갈수기라 물의 양이 적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변 선사유적
울산 암각화 박물관.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이 복원되어 있다.



시간이 말을 한다. 역사 시대 이전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의 말을 듣는 것뿐이다. 고대인이 새긴 바위그림은 수천 년 전의 시간이 전하는 말이다. 학자들은 주술과 제의의 언어라고 해석하지만 어쩌면 보다 인간적인 향유나 교육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시지는 명료하다. 그것은 생명과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다.

망원경으로 보는 반구대 암각화
물이 마르고 맑은날
오후 3시30분쯤에 가장 잘 보여
천전리의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엔
신석기시대 암각화부터
신라 말기 명문까지 다양한 새김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대곡천은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의 탑골샘에서 발원해 천전리와 대곡리 일대를 흐르며 남하하다 태화강으로 흘러든다. 대곡이라는 이름답게 규모가 크고 물길이 곡류하는 곳곳마다 기암절벽이라, 그중 높다란 절벽 아래 거북이 엎드린 모양의 돌산이 펼쳐져 있으니 반구대라 부른다.

반구대의 풍광에 반해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는데, 대곡천 물길 따라 숲길 걸으면 그 소문 옳구나 절로 고개 끄덕여진다. 태고의 시간처럼 신비스러운 호수, 청량한 그늘을 드리운 대숲, 아지랑이처럼 눈부시게 피어오른 옅은 신록, 낮은 땅 나무의 우듬지를 적시고 산모퉁이를 돌아 하늘로 향해가는 물길, 걸음마다 폴짝이는 개구리들, 길은 이 모든 벅찬 것들과의 오롯한 대면이다. 그렇게 500m 남짓 흙내 풀내 짙은 길 끝에 하늘이 열리고, 저 멀리에 절벽이 솟아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암벽이다.

5천 년에서 6천 년 전,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시인 묵객들보다 먼저 이곳에 있었다. 그들은 저 절벽의 반들거리는 바위 면에 고래와 호랑이와 어부와 사냥꾼을 새겨 놓았다. 새끼를 밴 동물도 있고 춤을 추는 남자도 있다. “아유, 맑은 날 오시지.” 문화 해설사분이 안타까워하신다. 망원경의 유리알을 닦고 비교적 잘 알아볼 만한 문양을 찾아 맞춰 주신다. “오후 3시 반쯤이 가장 잘 보여요.” 암벽에 가 닿는 빛의 각도가 암각화를 가장 선명하게 만드는 시간이라 한다.

멀리서 망원경을 통해 보는 희미한 흔적이지만, 어느새 그들은 또렷해진다. 몇 해 전 울산의 고래 박물관에서 본 암각화가 머릿속에 각인된 까닭일까. 실제의 암각화는 물에 잠겨 볼 수 없다는 말에 얼마나 실망했나. 대곡천은 태화강과 만나기 전 잠시 댐에 갇힌다. 갇히는 물속에 이 암각화도 갇히고, 때로 물이 마르면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게 암각화는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며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지금은 멀리서부터 휘어져 달려온 물길이 암벽 앞에 가만 머물러 있다. 수량이 적은 때다. 망원경에 두 눈을 바짝 붙이고 집중을 한다. 그러면 보인다. 고래와 곰이, 춤추는 사람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그 생들이.

◆ 대곡천변의 공룡 발자국

대곡리 마을에서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 중간,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공룡 발자국 화석에 대한 안내판이다. 그러니까 선사시대로 가기 이전, 먼저 지질시대를 거치는 셈이다. 대곡천에는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라 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의 발자국은 약 1억 년 전, 전기 백악기 시대 초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 약 24개의 발자국이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라 한다.

계곡으로 내려가 보면 평평한 바위 위에 부드럽게 새겨진 물결무늬나 움푹 파인 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이 공룡의 발자국이라 확신할 만한 자신은 없다. 다만 편과 편들이 층층으로 쌓인 천변 바위의 모습을 보며, 그 육중한 걸음들이 남긴 흔적이 저 사이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 할 뿐.

◆ 천전리 각석

대곡천의 상류인 천전리에는 옛사람들의 흔적을 아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아래를 향해 15도 정도 기울어진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다. 거기에는 신석기시대의 암각화에서부터 신라 말기의 명문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새김들이 남아 있다.

바위면의 상부에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새겨진 기하학 무늬와 사람, 동물상이 있다. 아래쪽에는 신라 법흥왕 시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300여 개의 문장과 기마 인물상 등이 단순한 선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랑들의 이름도 확인돼, 이곳에서 화랑들이 수련했으리라는 추측도 한다.

하부에 새겨진 문장은 원래 800자 이상이었을 것이라 한다. 또한 바위에는 풍화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신라의 문장은 절반 이상이 사라졌지만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이 새겨놓은 그림은 놀라울 만치 선명하다. 고대인들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기울어진 바위의 상부를 택한 것은 더 오래된 시간의 말에 귀 기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정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가다 언양IC로 나간다. 35번 국도 경주 방향으로 가다 반곡리로 우회전해 들어간다. 먼저 울산 암각화 박물관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반곡서원이 있는 마을이다. 부근에 주차한 뒤 이정표를 따라가면 먼저 대곡리 공룡 발자국 화석,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35번 국도로 나와 경주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천전리 각석 이정표가 있다. 천전리 각석 맞은편에 좀 더 선명한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다. 울산 암각화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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