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不得貪勝 (부득탐승)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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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7   |  발행일 2015-10-07 제31면   |  수정 2015-10-07

위기십결(圍棋十訣)은 당나라 현종 때 바둑 고수 왕적신이 정리한 열 가지 바둑 요결(要訣)이다. 공피고아(攻彼顧我·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펴라), 사소취대(捨小就大·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등 다 금쪽같은 경구(警句)이지만, 반상(盤上)의 세계에선 부득탐승(不得貪勝·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면 이루지 못한다)을 위기십결의 으뜸으로 친다. ‘돌부처’ 이창호 9단이 2011년 출간한 자서전 제목으로 ‘부득탐승’을 쓴 것도 그런 연유일 게다.

부득탐승에 담긴 함의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 4월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 중 최저 타율(0.096)을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다. 그랬던 그가 후반기엔 텍사스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이끄는 엔진 역할을 했다. 9월 한 달간 타율이 4할을 넘었다니 믿기지 않는 대반전이다. 부득탐승의 이치를 깨달은 후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가지 않는 게 맹타의 비결이라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문재인 대표 재신임 이후에도 여전히 뒤뚱거리는 모습이다. 비주류는 현재의 지도부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전제를 깔며 조기 선대위 구성이나 조기 전당대회 불가피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문 대표가 재신임 카드로 대표직은 사수했지만 내홍(內訌)의 불씨를 걷어내지 못한 까닭이다.

문득 2012년의 대선 풍경이 떠올려진다. 당시 판세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박빙이었다. 결정적 고비에서 박 후보는 패배할 경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패배 시 국회의원 사퇴나 당선 때 ‘친노 요직 배제’ 같은 승부수를 띄우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녕 대권의 꿈을 키우겠다면 당내 통합부터 이뤄내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왜 ‘셀프 재신임’이라는 냉소가 나오는지도 곱씹어볼 일이다. 조배숙 전 의원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가 당 혁신의 출발”이라는 고언(苦言)을 날렸다. 백의종군이 국민과 당원들의 의표를 찌르는 한 수일 수도 있다. 문 대표가 각인해야 할 금언이 ‘부득탐승’이 아닐까 싶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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