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우포늪 그리고 원시의 생명길 트레킹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2-05   |  발행일 2016-02-05 제40면   |  수정 2016-06-17
억겁 세월 생명을 잉태한 늪, 낙조에 하늘빛도 땅을 닮다
물빛 닮은 하늘의 변주
20160205
수많은 겨울철새가 늪을 점령하고 있는 겨울 우포늪의 신비한 풍광.
20160205
낙조가 매우 아름다운 겨울 우포늪. 금빛 노을과 철새들이 판타지다.
20160205
우항산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겨울 우포늪.
20160205
20160205


소벌은 우포늪의 본명이다.

현지 마을 소목 부근의 지세가

소의 형상이고, 소목 뒤편의 우항산이

소의 목 부분에 해당해 붙여진 명칭이다.

제1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우포늪은

말문에 빗장을 지르는 겨울 유채화다.

뭍도 물도 아닌 늪, 아름답고 신비한 천연습지인 저곳은 자연적인 것이, 살아있는 동식물 종이, 거의 모여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생명 부양지수가 높은 생태계이다. 더구나 지금은 겨울, 우포늪의 공간을

점령한 철새들이, 물속에서 검은 뻘에서 먹이를 찾고, 때론 수면을 활주로로 날아오르고,

각자 특유한 소리로 한껏 우는 자유로운 철새 공화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벽에 자주 끼는 물안개,

저녁이면 온 하늘과 늪의 나라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감동과 설렘을 되돌려 준다.


- 부엉덤 따오기와 ‘은빛 무용수’ 겨울 갈대

먼저 시계 침 방향 부엉덤으로 간다. 왼쪽 길 위로 우포 따오기 복원센터가 있다. 솟대와 같이 토템 신앙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하고, 과거 우리나라 농촌에서 쉽게 보는 친근한 종이었으나 1970년 후반 이후 종적을 감춘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를 복원하는 건물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르는 오빠 생각과 따오기 노래, 허밍해 본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 메이뇨, 내 어머니(내 아버지)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괄호안은 2절이다. 따오기 노래는 구성지다. 뜸부기, 뻐꾸기, 따오기는 한민족의 가슴속을 구슬프게 날아다닌다.

부엉덤을 지나면 사초군락지다. 온통 갈대밭이다. 키만큼 웃자란 갈대 속을 걷는다. 겨울 갈대는 은빛 무용수다. 많은 생명을 기르고 감추고 있는 갈대는 하얀 사랑으로 서걱인다. 갈대는 작고 예쁜 바람에도 나부끼며 그렇게 환상의 춤사위를 보인다. 갈대 군락을 지나면서 나도 하나의 갈대가 된다. 인간은 갈대에 불과하다는 어느 철인의 말이 용한 점쟁이의 점말 같이 딱 맞아 떨어진다. 버들 군락지가 나타나고 길이 없어진다. 만약 길만 이어진다면 나는 갈대의 흐느낌을 들으면서 그 길이 다 할 때까지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나는 하릴 없이 되돌아 나온다.

아까 보아 둔 징검다리를 건넌다. 왼쪽으로 가면 큰기러기와 노랑부리저어새가 사는 쪽지 벌이 나오지만 다시 돌아와야 하는 부담이 있어 아예 목포제방으로 간다. 1억4천만년의 수명을 가진 우포늪은 나목, 마른 수초, 갖가지 철새, 겨울하늘 잿빛 구름까지 담아 애틋한 풍광을 드러낸다. 목포제방에서 보는 소벌에는 중대백로, 물닭, 쇠오리가 많고, 나무벌인 목포에는 청머리오리, 넓적부리오리, 고방오리가 많다. 제방을 지나 우항산 숲 탐방로 3길로 들어선다. 제2전망대에 들러 잠시 휴식을 하며 우포늪 안내지를 본다.

우포늪(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의 총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로 창녕군 유어·이방·대합·대지면의 4개 행정구역에 펼쳐 있다. 1998년 3월 국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고, 1999년 2월 환경부의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1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2012년 2월 습지개선지역으로 또 지정하였다. 우포늪은 신의 문자인 ‘영원히’ 보호되어야 할 자연 생태계의 보고임을 느낀다.



- ‘자연의 자궁’ 깊은 곳 늪의 명물 이마배

우포늪 뻘은 자연의 자궁이다. 검푸른 색으로 생명을 만드는 물은 정액이다. 수생식물만하더라도 창포, 매자기, 애기부들, 물억새는 물가에 산다. 줄, 마름, 가시연꽃, 노랑어리연꽃은 물 위에 잎을 내며 산다. 검정말, 나사말, 통발은 물속에 잠겨 산다. 생이가래, 자라풀, 개구리밥은 물 위에 떠서 산다. 이름도 살아가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고 아름답다. 저 늪에는 영혼이 있다. 백세인생에서 마감되는 인간도 영혼이 있다는데, 1억4천만년의 나이를 가진 저 늪에 영혼이 없겠는가.

숲 탐방로는 최적의 트레킹 길이다. 소목나루를 지난다. 쪽배 또는 나룻배라 부르기도 하는, 우포늪의 명물 이마배 네 척이 나루에 떠 있다. 이마배는 늪에 가득 자라는 수초를 헤쳐 나가기 위해 뱃머리 이마를 곧추세운 목선이다. 그 풍광은 한 편의 시다. 주매제방을 걷는다.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우포늪 반딧불이 주매마을의 제방이다. 매화꽃잎처럼 나지막한 동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주매마을이다. 이 인근에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회군을 하여 역사에 자주 나타나는 요동정벌군 좌군 도통사 조민수 장군의 묘소가 있다. 지금 ‘육룡이 나르샤’란 연속극에도 등장한다.



- 우웩, 까르, 뚜루, 꿔이…새들의 오케스트라

다시 숲 탐방로2길로 오른다. 야산이고 소나무 군락이 우거진 길을 걸으면서 기쁨을 느낀다. 숲길이 끝나고 사랑나무 군락지를 통과하고, 사지포 제방을 걷는다. 왼쪽에 있는 일명 모래벌인 사지포는 물옥잠과 버들군락, 큰고니, 큰기러기가 집단으로 모여산다. 드디어 잠수교를 건넌다. 창녕 화왕산에서 흘러온 토평천 물이 유입되는 곳이다. 자전거 반환점을 지나면 대대제방이다. 바로 우포늪으로 부르는 소벌의 주 제방이다. 지금은 우포의 사계절 중 가장 많은 철새가 관찰되는 겨울철이다. 철새들이 우는 울음소리가 장엄하다. 우웩 우웩, 까르 까르, 뚜루 뚜루, 까악 까악, 빼약 빼약, 꿔이 꿔이 저 맑고 생금 같은 소리가 우렁우렁 귀를 두드린다. 왠지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단지 춥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한낱 날짐승으로 여기는 저 새들의 오케스트라는 등골을 아프게 타고내리는 영혼적인 것이 있다. 사자가 포효하면 모든 동물이 오줌을 지리며 몸서리친다고 한다. 그것과는 다른 저 새들의 대성통곡은 관능을 쪼아 상처를 내는 검독수리부리 같은 힘과 날카로움이 있다.

한 떼의 새들이 날아오르며 군무를 춘다. 이제 막 붉어지기 시작하는 노을과 노을을 반사하는 늪의 수면이 붉은 홍반을 그린다. 그 붉은 빛 무리를 헤집고 추는 새들의 군무가 오팔 보석 같이 아름답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의 신비와 그에 코러스하는 새의 울음, 이건 문자로 나타낼 수 없다. 한순간 몸이 얼어버리고 마비돼 버린다. 저 새들의 진혼곡 같은 울음에 밀려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파괴성을 본다. 회청색의 바탕에 불그스레한 물감이 번지는 판타지의 하늘을 율동하는 새떼의 군무는 차라리 신비고 저녁 기도다. 밀레의 만종 위에 그리는 새들의 만종이다.



- 1억4천만년 전, 첫날도 저토록 붉었을까

점점 기울기 시작하는 겨울 해는 더 붉어지고 비감하다. 우포 늪이 탄생하던 날에도 일몰은 저토록 붉었을까. 그 때도 새들이 날아오고 저렇게 군무를 추고 있었을까. 그 찬란한 풍광에 몰입되고 넋을 빼앗긴다. 드디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하늘에 남아 있는 붉은 노을빛은 오히려 더 선명하다. 마치 붉은 물감이 확 퍼져서 번지는 추상화 같다. 해가 불타는 듯이 눈을 태울 때는 어지러웠다. 지금은 시야가 그지없이 편하고 우포늪의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의 잔영이 수면 위에 일렁거린다.

한쪽에서는 탄생과 성장이, 한쪽에서는 죽음과 소멸이 무수히 공존하는 우포늪. 뭍 생명을 품어주며 억겁의 세월을 곰삭혀 온 늪의 모정. 저 갈대 꽃 이삭에 안식하는 태고의 잠. 뻘에 고여 있는 원형질, 고여서 썩고 썩으면서 고이는 거룩하고 경이로운 탄생의 유전자.

이제 날머리로 향한다. 어느새 샛별이 나타나 눈을 흘긴다.

한국관광의 별 우포늪. 2015년 한국관광 100선 온라인투표 1위의 우포늪. 끝이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70만평(약 231만㎡)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자연늪인 우포늪. 이제 이별의 시간이 되었다. 아내를 닮은 보름달이 샤방샤방 떠오르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걸음을 빨리한다. 입구 주차장에 나와 또렷한 샛별에게 말한다. 이 겨울 다가기 전에 또 한 번 오겠다고 전해라.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우여행사 이사)

http://cafe.daum.net/dmschi


☞ 우포늪 숲길 길잡이

-트레킹 코스

우포늪 생태관주차장~제1전망대~부엉덤~사초군락지~징검다리~목포제방~제2전망대~우항산~소목나루~주매제방~주매정~사지포제방~잠수교~대대제방~우포늪 생태관 주차장(8.4㎞, 느바기(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3시간30분 코스)

-문의

우포늪 안내소 (055)530-1559, 생태관광과 (055)530-1521, 우포늪 생태관 (055)530-1551

-주위 볼거리

창녕읍 화왕산, 창녕박물관, 창녕읍 진흥왕 척경비, 창녕읍 술정리 삼층석탑 등. 관광지로 식당은 많음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