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의창·은시 4박5일 여행기

  • 김성현
  • |
  • 입력 2016-04-29   |  발행일 2016-04-29 제39면   |  수정 2016-04-29
三國志 영웅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1800년 前 시간 속을 걷다
20160429
파왕채 정상에서 본 양자강. 강이 180도로 회전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가족 후손들이 운영하는 술집이 주변에서 영업 중이다.
20160429
중국 10대 폭포에 속하는 삼협대폭포. 높이 100m·폭 80m에 달하는 규모로 우비를 입고 폭포 안으로 들어가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20160429
은시대협곡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지하하천 전경. 최근 발표에 따르면 길이가 50㎞로 세계에서 가장 긴 지하수라고 한다.
20160429
토가족 왕이 살았던 왕궁. 궁 문턱은 다리를 치켜들지 않으면 넘지 못할 정도로 높다.
20160429
토가족이 살았던 배. 높은 지붕 아래가 잠 자는 곳이고 낮은 지붕 아래에선 휴식을 취하거나 생활을 한다고 한다. 현재는 관광용으로 재현돼 선보이고 있다.

유비가 대패한 이릉대전 무대이자
세계 최대 규모 삼협댐이 있는 곳
적벽대전 등 옛 호걸 사라졌지만
長江·굽이굽이 깊은 협곡 그대로

토가족 삶 재현한 마을 ‘삼협인가’
파왕채 정상서 내려다본 장강 풍광
中 10대 폭포 삼협대폭포서 물맞이
아파트 100층 높이 위 고속道 신선

“무한한 자연의 생(生) 앞에서 인간의 생은 얼마나 짧은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은시대협곡. 계곡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지하 하천을 지나 케이블카로 5분, 걸어서 1시간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면 눈앞에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절경이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이 좁쌀보다 작다. 푸르른 산림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 같다. 태곳적 이곳을 만든 신의 손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이 경치를 보면 속이 뻥 뚫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된 여정의 피로가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진, 여행 3일째 접한 가장 중국다운 풍광이다.

◆조조·유비·손권이 탐냈던 땅, 형주

형주(荊州).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호걸들은 수없이 싸웠다. 조조, 유비, 손권은 물론 2차 대전 땐 일본군까지 탐냈던 땅이다. 형주는 그만큼 중국에서 중요한 지형이다. 중국의 3대 평야 중 화북 평야와 양자강 평야를 북과 남으로 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차지하지 않고는 대륙을 온전히 차지했다고 할 수 없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적벽에 100만 대군을 배치한 것도, 제갈량이 촉나라를 지키기 위해 명장 관우를 앞세운 것도, 그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탐했고, 싸웠고, 사라졌지만, 결국 이 압도적인 풍광은 남았다. 그들은 소유하길 바랐지만 무한한 자연의 생(生) 앞에서 인간의 생은 너무나 짧았다.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마음이 든다.

지난 16일 찾은 화북성 의창(宜昌)의 하늘은 흐렸다. 의창국제공항 주변은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고 군사를 일으킨 유비를 육손이 화공으로 물리쳤던 이릉대전의 주무대기도 하다. 삼국지 영웅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곳은 2008년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삼협댐이 있는 곳이다.

중국인들이 1년 동안 사용할 물이 저장된 곳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만약 이곳이 터지면 상해까지 물에 잠긴다고 한다. 중국은 의창공항에 어떤 나라에도 직항 노선을 허용치 않았다. 주변에 미사일 부대가 많이 주둔할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비행기로 이곳까지 올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전세기에서 내려 본 도심은 구시가지와 새로 지은 높은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댐에서 일하거나 관광과 관련된 일로 먹고 산다.

본격적인 일정은 이틀째부터 시작됐다. 갈주댐 부두에서 장강유람선을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양자강 주변에 살고 있는 토가족 마을에 도착한다. ‘삼협인가’라 불리는 곳이다. 토가족은 중국 10대 소수 민족에 속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양자강 이남 평야에 살았다.

‘파인’이라고도 불렸던 이 민족은 한때 황제를 초월할 정도로 세력이 컸다. 토가 왕궁 정문의 문턱은 다리를 쳐들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을 정도인데, 황제가 사는 궁궐의 그것보다 높았다고 한다. 결국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진나라에 의해 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자강 주변의 산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주로 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며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은 배 위에서 살았고 강 주변에 집을 지어놓고 살기도 했다.

지금은 토가족 마을에 사는 사람은 없지만 관광객을 위해 당시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다. 토가족은 사람이 죽으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웃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땐 울면서 태어났기에 수명을 다하고 죽으면 축하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집 갈 처녀는 함께 모여 온종일 울었다. 울음소리가 클수록 효녀라 여겼다. 처녀의 첫날밤은 토가왕과 먼저 동침하는 풍습 탓에, 첫째 자식에게는 애정을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자강이 보이는 곳에서 토가족이 운영하는 술집에 들어갔다. 옹기로 만든 조그마한 대접에 술을 따라 마시고 땅에 힘껏 던져 깨는 관습이 있다. 소수민족이 받는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푼다고 한다. 마신 술잔을 땅에 던져 깨트리니, 알 수 없는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술집에서 나와 파왕채라고 불리는 곳에 올라갔다. 계단으로 20분 정도 올라가니 양자강이 180도로 돌아가는 절경이 한 눈에 펼쳐졌다. 양자강은 길이가 6천300㎞에 달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자, 세계에서 셋째로 긴 강이다. 우리나라 강과는 다른, 어떤 장엄함이 있다. 뱀처럼 구부러진 강의 모양새를 보면서 한동안 말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흘간 은시투어…여행의 화룡점정

삼협인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은시로 이동했다. 5시간이 소요되는 길이다. 의창에서 은시로 가는 고속도로는 중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써서 만든 도로다. ㎞당 100억원이 들었다. 산골짜기에 교각을 세워 도로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곳을 달리면 마치 산과 산 사이를 통과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리 높이가 아파트 100층에 달하는 것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다. 달리는 버스 창문 밖으로 다리 아래 까마득한 계곡이 보였다. 어떻게 이런 높이에 도로를 지을 생각을 했는지 의아스러웠다.

중국은 대체적으로 교통질서가 좋지 않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빈번하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속도를 80㎞로 제한하고 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과 계곡들이 펼쳐졌다. 인간이 모르는 생명체가 살고 있을 듯도 하다. 멋진 풍광이 지루해질 때쯤, 은시에 도착했다.

4일째 아침, 청강 유람선을 타기 위해 분수하부두로 이동했다. 청강은 양자강 지류다. 강 한가운데는 수십m 이상의 수심을 자랑하는 강이다. 유람선을 타고 청강협곡 사이를 4시간가량 지난다. 배 위에서 기괴한 모습의 계곡과 함께 협곡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구경할 수 있다. 우기 때는 1천개가량 된다고 해서 천개폭포로 불릴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특히 나비 폭포는 압권이다. 거대한 석산이 나비 날개모양처럼 펼쳐져 있는데 날개 사이로 폭포가 흘러 강으로 떨어졌다.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를 만큼 청강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다. 유람선에서 내려 의창으로 이동하는 중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삼협댐을 지나갔다. 높이가 233m에 달하는데, 산과 산을 가로막아 수력발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중국 수력발전은 2010년에 이미 설비용량이 2억㎾가 넘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단일 설비용량이 50만㎾가 넘는 수력발전기 32기를 보유하고 있고, 현재 수십기가 건설 중에 있어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 국가라는 타이틀은 다른 나라가 쉽게 넘볼 수 없을 듯하다.

3일간의 은시투어를 끝내고 의창으로 돌아왔다. 5일째 되는 날은 버스로 1시간쯤 이동해 삼협대폭포에 도착했다. 높이는 100m, 폭은 80m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인데 우비를 입고 직접 폭포 사이를 지나갈 수도 있다. 삼협대폭포의 위용은 중국에서 본 많은 폭포 중 단연 최고였다. 엄청난 양의 폭포수에 우비가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얼얼했다. 신발은 젖었지만 꼭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기준으로 중국 10대 폭포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금사동에 도착했다. 금사동은 종유석 동굴인데 보라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꾸미는 건 사람인데, 이루는 건 하늘이로구나.” 제갈량이 숙적 사마의를 함정에 가뒀을 때, 소나기에 화약이 터지지 않아 놓친 것을 통탄하며 한 말이다. 이제는 이렇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모사재연 성사재연(謀事在然 成事在然).’ 꾸미는 것도 자연이고 이루는 것도 자연이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은 너무나 작았고, 결국 인간이 쌓은 사상적·물적 토대 역시 자연의 일부 속에 포함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김성현기자 ks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