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수천만원씩 기부…듣지 못하는 ‘구둣방 천사’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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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5 07:16  |  수정 2016-06-25 09:23  |  발행일 2016-06-25 제10면
[토요인물 - 이 세계] 예천 구두병원 아저씨 이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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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사무소 앞 9.9㎡ 남짓한 작은 조립식건물에서 이상청씨가 26년째 구두수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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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사무소 앞에서 26년 구두수선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 도와줘
청각장애로 감사인사해도‘싱긋’
“재산은 적어도 마음은 최고부자”

이 사람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다. 멋 부릴 줄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고 부른다. 예천읍사무소 앞 9.9㎡(3평) 남짓한 작은 조립식 건물 ‘구두병원’은 어려운 이웃과 독거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상청씨(54)의 일터다.

◆봉사는 돈이 있어야만 하는가요

예천군 하리면 농사꾼의 집에서 8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 이씨. 무슨 일을 하면 배를 곯지 않고 살아갈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구두수선을 접하게 됐다. 기술이 있으면 굶지 않는다는 주변의 얘기에 주저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으며 구두수선을 해온 지 벌써 26년째가 됐다. 그는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주위의 어려운 이웃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어렵게 자란 자신이기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에게 작은 정성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게 삶의 기쁨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자신도 청각장애인이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많게는 수천만원, 적게는 몇 십만원씩 모아 남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그의 미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의 반응은 ‘대단하다’와 ‘구둣방이 돈이 되는가보다’라는 두 가지로 갈렸다. 그에게도 이런 반응은 그대로 전달됐다.

자신을 향한 비난의 말은 어떻게 극복하냐고 묻자 그는 “구두를 수선하다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성격, 성품 등이 보입니다. 하지만 수선을 기다리는 고객과 대화하다 보면 고민상담도 하게 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그러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도 도움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명절이 다가올 때면 홀몸노인과 가난한 장기 투병자 등을 찾아 성금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이 전하는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상대방의 입 모양, 그리고 얼굴로 알아채고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면 가끔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떨칠 수 없는 열등감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방황하며 무능하게도 살았다. 그런데 우연히 시장에서 자신보다 더 불편해 보이는 한 중증 장애인이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막노동까지 해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잡았다. 그는 “ 이 직업을 한시라도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해 그것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구두 관리 방법에 대해 묻자 “사소한 것 같지만 자주 닦는 게 중요하다. 신지 않고 보관할 땐 신문지를 넣어 보관하고 가끔씩 바람과 햇볕을 쏘여주는 게 좋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긴다”라고 귀띔했다. 또한 “신발을 너무 안 신으면 이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가끔씩 신어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손님이 끊어진다”며 그만하자고 웃었다.

웃음이 채 가시기 전 중년의 여성 손님이 찾아왔다. 그녀는 이름은 물론 언제까지 해달라는 말도 없이 그냥 구두만 건네고 돌아갔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씨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가게를 하다 보니 단골이 많다. 저는 다 기억을 하지 못해도 손님들은 잊지 않고 있어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구두수선으로는 큰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기술을 인정해주고,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 만족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의 등 뒤에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던진다. “저는 모아둔 재산은 허름한 집과 이곳 구두병원밖에 없지만 마음만은 최고의 부자입니다.”

글·사진=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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