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국판 두테르테를 기다리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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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8   |  발행일 2016-07-08 제23면   |  수정 2016-07-08
[조정래 칼럼] 한국판 두테르테를 기다리며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의 칼춤이 종횡무진이다. 거침없는 하이킥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범죄와의 전쟁’, 지난달 30일 그의 취임 일성이자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준다. 취임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최소 45명의 마약범이 현장에서 사살됐다. 취임에 앞서 그가 마약 범죄자 즉결처분 의지를 밝히자마자 지레 겁먹고 오줌을 지린 마약상들의 자수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어 부패한 전·현직 경찰간부의 명단을 발표하고 자수와 사퇴를 종용하면서 정부 내 비리 척결에도 칼을 뽑아들었다. 인권침해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지만 어쨌든 그는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고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세계를 흥분과 열광, 의문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는 두테르테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그가 생산해내는 화젯거리만큼 뜨거운 관심사다. 법조인 출신으로 22년간 다바오 시장 재직시 이미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 ‘징벌자’란 악명을 얻었다. 범죄 소탕을 위해 자경단을 운영해 재판을 거치지 않고 1천명 이상의 범죄자를 처형했고, 자신이 3명의 성폭력범을 직접 권총으로 사살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그는 “대통령이 되면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마닐라만에 던져 물고기가 살찌게 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마피아 두목이나 할 법한 험악한 발언이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공언이었다. 잇단 막말은 그를 ‘필리핀의 트럼프’로 등극시켰다. 두테르테가 삼청교육대를 운용하고 언론 통폐합을 했던 전두환을 벤치마킹했다나. 믿거나 말거나.

이쯤에서 1971년 개봉해 5탄까지 이어지며 히트를 쳤던 미국 영화 ‘더티 하리’가 복기되는 건 자연스럽다. ‘더티 하리’와 두테르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샌프란시스코 강력계 형사 해리 캘러핸은 법망을 생쥐처럼 빠져 나가는 범죄자들을 즉결처분하는, 경찰이라기보다는 자경단원에 가깝다. 중학교 시절 몰래 도둑영화로 본 나는 무엇보다 악당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응징의 불을 시원하게 뿜어대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했던 기억이 새롭다. 법과 정의가 너무도 멀리, 거의 항상 저만큼 떨어져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는 요즘에도 가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더티 하리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범죄와 부패가 만연한 필리핀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사회지도층의 몰염치와 양심불량은 오히려 필리핀을 추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대표적인 게 법조비리다. ‘썰전’에서 유시민과 전원책은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 의혹 무혐의 판결을 두고 “로비를 하겠다고 해놓고 안 했으니 사기죄”라고 풍자했다. 이어 “검찰 조직이 원래 마피아 같은 속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수사 전부터 대충 결론이 정해져 있었을 것이고, 대충 집행유예가 선고되기 전까지 3개월 정도 수감되어 있다가 끝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연 그렇게 될 것인지, 지켜보기조차 두렵다. ‘실패한 로비’라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다시 한번 제 식구 감싸기이자 면죄부 주기다. 소가 하품할 일이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무소불위, 견제받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국가 폭력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인 법조가 부패로 휘청거리고, 최고의 정치지도자이자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은 염치없는 짓을 밥먹듯 하고, 우리사회 최고의 지성이어야 할 대학교수들은 표절과 복사의 달인으로 등극하고, 예술인은 유명세를 앞세워 무명 작가의 작품을 절취하고도 관행으로 넘겨버리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사회지도층의 양아치 시대를 우리는 보고 있다. 대한민국 상층부가 온통 똥걸레 천지다. 걸레는 제 몸에 오물을 덮어쓰지만 타자를 정화하니 소용에 닿고 빨아서 다시 쓸 수라도 있지, 똥걸레는 천하에 몹쓸 것이니 즉결 폐기처분의 대상이다.

인권과 민주라는 글로벌 기준까지 거스르며 분노의 역류를 뿜어내는 두테르테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두테르테의 실험과 그에 따른 대중의 열광 증후군이 1인 원맨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사회변혁 모델로 뿌리내릴 것인가. 우리가 감염될 수밖에 없는 두테르테 현상임에 틀림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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