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개 동굴엔 5억년 前 시간 고스란히…오징어물회로 더위 ‘싹’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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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2   |  발행일 2016-07-22 제35면   |  수정 2016-07-22
■ 2부 여름 이야기-강원도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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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헌화가’를 모티브로 조성된 수로부인 헌화공원 정상부에 있는 매머드 대리석으로 만든 수로부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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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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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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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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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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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닭갈비

수로부인공원·해신당 남근조각공원
설화 속 사랑 모티브로 한 장소 눈길
신기면 대이리는 한국 대표 동굴지대
대금굴은 모노레일 타고 140m 관람
태백서 전해온 ‘물닭갈비’ 별미 음식


삼척에 좀 의외다 싶은 네 캐릭터가 있다. 사자상·수로부인·남근조각상·공양왕이다.

사자상은 신라의 이사부(異斯夫) 장군 때문에 유명해진 삼척의 마스코트. 지증왕은 이사부를 실직(삼척)주 군주로 임명하며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을 복속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505년 삼척항 근처에서 출정한 이사부는 철옹성인 우산국을 함락시키기 위해 지략을 발휘한다. ‘항복을 안 하면 싣고 온 사자를 섬에 풀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나무사자가 진짜로 보였던지 우혜왕은 금세 백기투항을 한다. 그 스토리가 최근 ‘이사부 사자공원’으로 꽃을 피운다. 150여 마리의 독도수호 사자상도 공원 곳곳에 부적처럼 설치해놓았다. 삼척항 횟집거리 바로 옆에 이사부 광장이 있다. 거기 가면 전국 유일의 방파제 겸용 축구장 스탠드도 볼 수 있다. 그 벤치에서 마셔보는 호젓한 자판기 커피, 노을보다 더 울림이 있다.

원덕읍 임원항에 가니 엘리베이터가 눈길을 잡는다. 남화산 꼭대기에 조성한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통하는 길.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의 부인 수로에게 한 노인이 진달래를 꺾어 바쳤다는 헌화가(獻花歌) 설화를 삼척이 선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대숲길을 약 500m 걸으면 정상. 천연 오색 대리석으로 만든 부인상이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처럼 나타났다. 엄청 크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의 1.5배.

전국 최대규모의 ‘남근조각공원’인 신남항 옆 ‘해신당공원’은 좀 민망하게 손짓한다. 처녀 애랑과 총각 덕배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모티브. 물에 빠져 죽은 애랑을 위해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냈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전설을 기초해 조성한 일종의 ‘성(性) 민속박물관’이다. 애랑과 덕배의 집에만 ‘19금’ 안내판을 설치했다. 아이와 동행한다면 사전 동선 체크는 필수.

삼척은 고려 멸망과 조선 태동과 맞물려 있다.

고려 마지막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 교살된다. 고려의 국운도 삼척에서 종지부. 근덕면 궁촌리 공양왕릉에는 왕자 왕석과 왕우, 그리고 시녀의 무덤이 함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양왕과 그 추종자들이 살해된 곳이 ‘살해재’인데 한 달이 넘게 핏물이 흘렀단다. 단종복위 역모 때문에 금성대군과 함께 살육당한 민초들의 피가 살해재처럼 흘렀던 곳이 한 곳 더 있다. 영주시 안정면 동촌리 죽계천 옆 ‘피끝마을’이다.

이성계가 공양왕을 살해했지만 묘하게도 삼척은 조선 건국의 시발점. 왕실 최고 선대 묘인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가 미로면에 있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5대조이자 목조(穆祖) 이안사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 묘가 바로 준경묘. 영경묘는 양무 장군의 부인인 이씨 묘다. 준경묘는 울진군 북면 소광리 못잖은 금강송 군락지에 자리한다. 지름 60㎝급 3천여 그루가 포진해 있다. 전소된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소나무 20그루도 준경묘에서 벌채됐다.

그 금강송의 여운이 아쉽다면 38번 국도를 타고 신기면으로 내려가라. 한국 석회암 동굴의 백미를 볼 수 있다. 신기면 대이리는 한국 대표적 동굴지대(천연기념물 178호). 무려 55개의 동굴이 있다. 동굴 생성 시기는 고생대(5억3천여만 년 전). 그 가운데 대금굴과 환선굴이 먼저 개방됐다. 특히 대금굴은 국내 동굴 중 유일하게 모노레일을 타고 내부 140m 지점까지 들어가 관람할 수 있다. 전체 소요시간이 1시간20분 정도. 대금굴의 경우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하고 모노레일을 타야만 입장 가능.

◆삼척발 음식을 찾아서

▶꼼치국

삼척 음식? 솔직히 풍광에 비해 음식이 많이 밀린다. 특별한 메뉴가 없을 것 같았다. 수소문해 찾은 게 바로 삼척이 1번지인 ‘꼼치국’. 하절기보다 동절기로 갈수록 제맛이 나지만 관광객은 꼼치국에 최면이 걸려 목포의 민어탕처럼 팔리고 있다.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 삼척항 근처 ‘바다횟집’을 찾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이 북적댔다. 삼척으로 오던 중 영덕군 강구시장 안에 있는 ‘탐라횟집’에서 꼼치국 비슷한 물메기탕을 먹었다. 같은 줄 알았는데 둘은 다른 어종이었다. 다들 꼼치(쏨뱅이목 꼼치과)와 곰치가 같은 어종인 줄 안다. 꼼치의 강원도 방언은 ‘곰치’. 이 사실이 곰치와 꼼치를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꼼치는 커다란 머리와 길고 납작한 몸뚱이가 메기와 닮아 남해안에서는 ‘물메기’ ‘미거지’로도 불린다. 서해에서는 ‘(물)잠뱅이’라 한다. 하지만 곰치는 성질이 사납고 뱀장어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다.

곰치, 꼼치, 물메기는 다른 어종이다. ‘꼼치국’이라고 표기해야 될 텐데 삼척 식당 메뉴판에는 다들 곰치국으로 적어놓았다. 꼼치는 물메기보다 육질이 더 흐물흐물, 씹으면 살점보다 점액질이 더 많아 물커덩거린다. 꼭 풀려버린 해삼을 떠먹는 것 같다. 삼척의 꼼치국은 밥을 뺀 ‘생선갱시기’ 같다. 3년 이상 묵힌 묵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삼척 꼼치국’ 소릴 들을 수 있다.

꼼치는 고추가 약이 가장 많이 오르는 초여름에 가장 많이 잡힌다. 겨울이면 껍질을 벗겨 말려서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졸여 서해안 ‘우럭젓국’처럼 해 먹는다.

▶물닭갈비

강원도 광부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부대찌개 같은 ‘물닭갈비’다. 일명 ‘태백닭갈비’로 불린다. 물 없는 춘천닭갈비, 대구식 닭볶음탕 등과도 거리가 있다.

닭갈비의 일반적인 모습은 불판에 닭과 양념을 섞어 볶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태백닭갈비는 육수가 생명. 그래서 ‘물닭갈비’란 이름을 얻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닭샤부샤부’나 ‘닭전골’ 같다.

태백닭갈비는 태백에서 발흥해 삼척으로 퍼져갔다. 광부가 빛을 발하게 한 음식이다. 광부들은 삼겹살 못잖게 닭고기를 즐겨 먹었다. 처음엔 닭을 구워 먹거나 볶아 먹었다. 막장 일 직후 국물 없는 음식은 고문이었다. 닭갈비에 물을 붓고 면과 채소도 함께 넣었다. 채소와 면은 전채. 이어 닭을 먹고 남은 육수로는 볶음밥을 해주었다. 태백의 경우 황지동 여관 골목을 축으로 ‘송이분식’ ‘황가네’ ‘승소’ 등이 리드하다가 87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때 모두 사라진다. 지금은 ‘김서방네’ ‘태백닭갈비’ ‘김서방’ 등이 후발 주자로 명맥을 잇는다.

태백닭갈비는 10여년 전 삼척으로 넘어온다. 정상동의 ‘성원닭갈비’, 도계읍의 ‘텃밭을 나온 닭’ 등이 많이 거론된다. 성원닭갈비를 맛봤다. 강황에 버무려 닭에서 카레향이 풍긴다. 우동사리를 채소류와 함께 먹고 국물에 닭을 곁들여 먹은 뒤 밥을 볶아 먹었다. 1석4조 같은 1인분에 8천원. 가성비가 너무 좋아 관광객은 물론 토박이까지 몰린다. 식사시간을 피해 1시간 일찍, 1시간 늦게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막국수·오징어물회·감자송편

삼척 막국수. 삼척은 춘천, 봉평, 원주, 양양 등에 비해 막국수 내공이 다소 떨어진다. 그런 가운데 괜찮은 곳을 하나 발견했다. 원덕읍 기곡1리에 컨테이너처럼 무미건조하게 서 있는 ‘대영가든’이다. 동치미 육수와 편으로 썬 절임무가 별도 접시에 담겨 나온다. 비빔과 물을 절충한 막국수 같다. 종부의 포스로 맛을 내는 삼척표 촌막국수다.

삼척에서는 포항식 일반 물회는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한다. 울진 이후 강원도 동해안권은 오징어물회의 본거지라서 그렇다.

이 무렵 강원도 도로변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 하나. 옥수수와 감자송편만 파는 ‘원두막형 좌판상’의 행렬이다. 어디에 멈춰서도 일정 수준의 맛을 보여준다. 대다수 허름한 스티로폼 도시락에 송편을 담아준다. 웃으며 주인에게 옥수수 이파리를 몇 장 달라고 하라. 거봉 포도알만 하고 양갱 같은 식감을 주는 감자송편, 풋내가 풍겨나는 옥수수 껍질 위에 올려놓고 먹으면 더욱 ‘강원도스러움’을 맛볼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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