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말이 줄 수 없는 느낌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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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2 08:30  |  수정 2016-08-22 08:30  |  발행일 2016-08-22 제24면
[밥상과 책상사이] 말이 줄 수 없는 느낌과 감동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아들과 엄마가 상담하러 왔다. 입시전략이나 학습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투다가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없어 나를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하라고 하고, 아이는 절대로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누구 말이 옳은지 물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나는 상담 과정에서 내용보다도 모자 간의 대화 방식과 태도에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들이 “나는 한 번 안 한다고 하면 절대 안 하니 엄마가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라고 잘라 말하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네 아버지가 하는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는 네 태도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왜 너나 네 아버지는 한 번 생각도 안 해보고 딱 잘라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들의 말하는 방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에 몹시 분개했다.

아들은 엄마의 평소 어투를 문제 삼았다. “엄마는 내 말을 한 번도 진지하게 들어 준 적이 없어요. 난 엄마가 쉴 새 없이 빠르게 쏟아내는 말과 말투가 너무 싫어. 엄마의 모든 말은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거나,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고 판단하는 것뿐이잖아요. 난 엄마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어. 난 엄마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엄마는 “너도 내 말에 빠짐없이 대꾸하잖아. 네가 나의 말투를 싫어하듯이, 나도 네 말투가 싫어”라고 응수했다.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다. 엄마는 아이가 아빠와 자기 자신을 닮아 고집스러우면서도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나쁜 말투나 행동을 아이가 따라 하는 것을 보면 엄청 화를 낸다. 아이를 통해 보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지나치게 무례할 때는 조용히 지적하며 고치라고 했다. 엄마가 너무 흥분할 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하라고 중재했다. 그 무엇보다도 모자간의 갈등부터 해결해야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고 아이의 성적도 오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언어는 분류이며, 모든 분류는 억압이다. 자유는 언어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이다. 생각과 감정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만으로는 상대와 깊게 교감하며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때도 많다. 따뜻한 미소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냥 어깨를 툭 쳐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말보다는 손을 꼭 잡아주거나 안아줄 때 더 충만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낙조의 들길이나,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길을 걸어보자. 말없이 서로 밀어주거나 잡아당겨 보면 더 진한 가족애를 느끼게 될 것이다. 가다가 지치면 바위나 나무 그늘에 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과자나 김밥을 서로의 입에 넣어 주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어보자. 우리는 말이 없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동을 주기적으로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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