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왝더독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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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4   |  발행일 2016-08-24 제31면   |  수정 2016-08-24

‘꼬리가 개를 흔든다(The tail wags the dog)’란 서양 속담이 있다. 줄여서 ‘왝더독(Wag the dog)’이라고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가장 감칠맛 나게 비유한 용어일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면서 왝더독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비정상 상태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그게 원래 정상이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속성이 사람에겐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엉터리 같은 왝더독 현상도 요즘엔 별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경제 분야에서 왝더독은 증권시장의 꼬리에 해당하는 파생상품인 선물(先物)이 몸통인 현물(現物) 시장을 흔드는 현상을 뜻하지만 정치에선 의미가 좀 더 음험한 쪽으로 변형된다. 즉, 권력자나 권력 집단이 자신이 저지른 부정을 숨기거나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리는 술수가 왝더독의 전형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아마 정치에서 왝더독이 이런 함의를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이미지조작 정치를 풍자한 영화 ‘왝더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1997년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성 스캔들에 휘말려 낙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참모들이 영화 세트장에서 가짜 전쟁쇼를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결국 선거에 승리한다는 내용인데, 영화만큼은 아니겠지만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청와대도 왝더독 정치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14년 정윤회 관련 문건 유출 사건과 최근 우병우 감싸기가 대표적이다. 정윤회 사건의 경우 정씨를 비롯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사퇴 공작을 벌였다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어찌된 일인지 검찰 수사는 문건 유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진행됐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의 본질인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 여부는 베일에 가려지게 됐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사건을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을 유출한 국기문란 사건’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우병우와 이석수,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국기를 문란하게 했는지 두고 볼 일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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